[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LA에서 만난 ‘조지 벤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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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1일 수요일 맑음. 나성 음반. #208 George Benson ‘Weekend in LA’(1978년)

지난달 방문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중고 레코드 가게(위). 조지 벤슨의 음반에 그려진 캘리포니아의 야자수 깔린 길. 로스앤젤레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지난달 방문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중고 레코드 가게(위). 조지 벤슨의 음반에 그려진 캘리포니아의 야자수 깔린 길. 로스앤젤레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일요일 아침. 묵은 책 냄새 나는 LP레코드 한 장을 꺼냈다. 새로 발견한 못 견디게 좋은 커피 같은 그 음반.

기분 좋게 볕이 든 휴일 아침이면 난 이 음반을 틀고 싶다는 일념에 눈 비비며 비틀댈 테니까. 미국의 가수 겸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의 공연실황 음반 ‘Weekend in L.A.’(1978년). 턴테이블 위를 도는 동그란 레코드에 티스푼처럼 바늘을 얹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휴일이 실내에 융해돼 번진다.

얼마 전 묵은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숙소 옆에 마침 퍽 괜찮은 중고 레코드 가게가 있기에 들어갔다. 아아, 밭은 취재 일정만 아니었다면 난 거기서 완전히 시간을 잃었을 거다. 미 연방수사국(FBI) 본부에 잠입한 스파이처럼 30분간 급히 추린 10장 정도의 중고 레코드를 계산대에 올려놓자 주인장이 판을 한 장씩 넘기며 가격을 셈했다. 무뚝뚝하던 그 주인장의 입을 연 게 바로 그 판. “오…. ‘Weekend in L.A.’!”

그가 판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살폈다. “이 공연 녹음된 데가 바로 이 근처인 거 알아요? 록시 클럽. 죽이는 곳이지.” 내가 이걸 고른 건 그저 조지 벤슨이란 믿음직한 이름과 ‘LA의 주말’이란 낭만적인 제목, 저렴하다는 이유 정도인데. 횡재다. 주인장의 수다가 이어졌다. “열 몇 살 때 일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최신 록에 빠져서 웬만한 건 구닥다리 취급을 했지. 하루는 ‘아부지’ 차 타고 석양에 물든 해변도로를 달리는데, ‘아부지’가 글쎄 이 앨범을 튼 거야. 반했지. 아, 이렇게 멋진 구닥다리라니. 그때부터였어요. 옛날 재즈, 블루스 음반에 심취한 것이….”

두 장짜리 음반을 여는 연주곡 ‘Weekend in L.A.’ 바닷바람처럼 청명하다. ‘California P.M.’은 캘리포니아의 지글거리는 뙤약볕을 그려놓은 듯. 휘트니 휴스턴의 리메이크(1985년)로 더 유명한 발라드 ‘The Greatest Love of All’도 여기 벤슨의 비단결 목소리로 실렸다. 이 곡이 쓰인 영화 ‘The Greatest’가 이 음반이 녹음된 그해 개봉됐다. 작은 새처럼 지저귀는 기타 연주를 나머지 악기들이 숨죽이며 바라보는 듯한 ‘Ode to a Kudu’, 언젠가 나도 새처럼 날고 싶다고 노래하는 ‘Down Here on the Ground’…. 이 음반은 작은 천국이다. 주인장도 그날 ‘아부지’랑 그런 데 다녀왔는지 몰랐다.

“…어쩌면 그 순간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카운터 뒤에 있는 건지도 몰라요. 우리 가게, 맘에 들어요?” 그럼요. 당연하죠. 오브 코스. 솔직히 말해도 돼요?

여기 살고 싶어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조지 벤슨#george benson#weekend in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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