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한류를 이끄는 학자들]<9> 도널드 베이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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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세계화 시대의 방향 제시

도널드 베이커 교수가 서울 청계천 산책로의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 앞에 섰다. 요즘 그는 다산 정약용이 정조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쓴 ‘중용 강의보’를 영어로 번역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도널드 베이커 교수가 서울 청계천 산책로의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 앞에 섰다. 요즘 그는 다산 정약용이 정조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쓴 ‘중용 강의보’를 영어로 번역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다산 정약용은 세계화 시대에 주목해야 할 인물입니다. 오늘날 세계화 시대는 서양의 개인주의와 동양 유교문화의 집단주의가 조화를 이루길 요구하지요. 유교와 서학의 영향을 모두 받은 다산은 개인이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을 제시합니다.”

외국인으론 유일하게 다산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도널드 베이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아시아학과 교수(67). 그는 다산(1762∼1836)의 사상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한다. 그는 2008년 외국인 최초로 다산학술문화재단이 수여하는 다산학술상 학술대상을 수상했다. 다산 탄생 250주년을 맞아 다음 달 5∼7일 서울에서 열리는 다산학 국제학술회의 참석차 방한한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의 카페에서 만났다.

베이커 교수는 1971∼74년 평화봉사단원으로 광주에 머물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광주 동신중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전남도 교육청에서 영어 교사들에게 교수법을 가르치며 봉사하다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매력에 빠졌다. “원래 중국학을 공부하려고 한국학을 시작했어요. 중국학자는 중국만 알고 일본학자는 일본만 아는데 한국학자는 한중일 모두를 꿰뚫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었죠.”

미국 워싱턴대 대학원 시절 미국 내 한국학의 대부로 꼽히는 고 제임스 팔레 교수 밑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한국학에 매진하게 됐다. ‘조선후기 천주교와 유교의 대립’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다 자연스럽게 다산에 관심이 생겼다. 이 논문은 1997년 일조각에서 한국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됐다.

“다산이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자신을 수양하고 좋은 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 전통 유교에선 인간 본성이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고 한 것과 달리 다산은 인간에게 도덕적 약점이 있는 만큼 스스로 노력해야 선해질 수 있다고 봤어요.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한 현실적 발상이죠. 다산은 우리가 어떻게 선해질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해외에서 다산은 한국학 학자들에게만 일부 알려졌을 뿐이다. 그는 “다산 사상의 세계화를 위해 주요 저작의 번역이 필수”라며 “특히 외국의 대중도 다산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다산의 삶과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편지와 수필 번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다산이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의 사상과 문화가 중국이나 일본 못지않게 풍요롭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습니다.”

베이커 교수는 다산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해 왔다. 다산의 ‘중용강의보(中庸講義補)’를 영어로 옮기고 있으며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도 번역할 예정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다룬 책도 쓰고 있다.

광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그에게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기억을 물으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시 서울에 머물던 그는 광주에서 난리가 났다는 소문을 듣고 열흘 뒤 전남 해남군으로 내려갔다. 해남에서 버스를 타고 광주 근처 한 마을에 내린 뒤 군인들의 눈을 피해 산을 넘어 광주로 걸어 들어갔다. 평화봉사단 시절 가족과도 같았던 하숙집 식구들과 친구들이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산을 넘다가 시체를 보기도 하고 광주 시내에서 피의 흔적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못 잊을 처참한 현장을 보았기에 한국 현대사 연구는 하지 않기로 했어요. 마음이 아파 객관적 시각으로 연구할 자신이 없거든요.”

베이커 교수는 “최근 해외에서 젊은이들이 어려운 한문을 배우려 하지 않아 전근대 이전의 한국사 연구자가 점점 줄고 있어 걱정”이라며 학계와 정부의 관심을 부탁했다.

[채널A 영상] 다산 정약용, 200년 전에 이미 ‘엑셀’ 원리 이용했다?

: : 도널드 베이커 교수 : :

△1945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서 출생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학사(철학)
△미국 워싱턴대 석사·박사(조선후기사상문화사)
△1987년∼현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아시아학과 교수
△2008년 제9회 다산학술상 학술대상 수상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한국학 한류를 이끄는 학자들#도널드 베이커#중용강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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