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한류를 이끄는 학자들]<2> 인도 출신 판카즈 모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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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불교에 끌려… 한국학과 36년째 열애중

한국에 10년 넘게 거주한 판카즈 모한 교수는 한국어가 매우 유창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근처 한식당에서 점심상을 마주했을 때도 “어떻게, 입에는 좀 맞으십니까? 반찬이 많아 진수성찬이지요?”라며 구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성남=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한국에 10년 넘게 거주한 판카즈 모한 교수는 한국어가 매우 유창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근처 한식당에서 점심상을 마주했을 때도 “어떻게, 입에는 좀 맞으십니까? 반찬이 많아 진수성찬이지요?”라며 구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성남=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한국 불교를 이해하는 인도인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은 14세기 고려에 온 인도인 지공 스님 이후 제가 유일할걸요. 허허.”

판카즈 모한 교수(57)는 인도인으로선 드문 한국학자다. 한국 고대사를 전공한 그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제한국학부의 학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동아시아 국가 간의 사상·문화교류사와 한국근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학부 시절 영문학과 인도사, 철학을 공부하다 불교가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한국∼일본으로 전래된 것에 주목해 동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76년 고 서경수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가 인도 네루대에 교환교수로 부임해 최초로 한국어 강좌를 만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 그는 대학을 옮겨 네루대에서 2년간 풀타임 코스로 한국어를 공부한 뒤 중문학·중국학으로 학사·석사과정을 마쳤다. 영문학을 그만두고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자 주위에선 “미쳤다”며 말렸다.

“여인과 사랑에 빠질 때 이유가 없듯이 한국이란 나라도 그저 운명이라 생각하고 빠져들었어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실에서 만난 모한 교수는 “한국이 웃으면 저도 웃고 한국이 울면 저도 운다”는 말로 그 인연을 표현했다.

1980년대 중반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바로 박사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석사과정을 택했다. 학위보다 한국학 자체에 관심이 있었기에 한국사를 기초부터 공부하고 싶었다. 인도처럼 근대에 식민지 지배를 당한 조선의 변화 과정, 민족주의 및 독립운동의 전개 과정을 공부했다. 최병헌 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의 지도로 신라 진흥왕 시대에 인도 전륜성왕의 불교적 개념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한 석사 논문을 썼다. 이어 호주국립대에서 논문 ‘신라 초기 불교와 국가’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에서 한국 문화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한국어만으론 부족했다. 서울 신림동에서 하숙하던 시절 매일 아침 일본어 학원을 다녔고 1992년 박사과정 도중 교환연구원으로 중국 베이징대에서 중국어를 마스터했다. 불교 경전을 읽으려고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도 배웠다.

모한 교수는 “언어가 다르니 공부는 어려웠지만 교수로 임용되기는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러 언어에 능통하고 한국학과 인도학 중국학 일본학까지 섭렵한 그를 부르는 대학이 많았다. 1980년대 한국경제가 급성장할 때 한국의 대기업이 인도에 진출하면서 한국어가 유창한 그에게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하려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그는 “굶어죽더라도 공부만 하고 싶었다”고 했다.

호주 시드니대 한국학과에서 종신교수로 지내던 그는 2009년 연봉의 절반을 포기하고 65세 정년제인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에서 국비장학생으로 공부했으니 세금을 낸 한국인들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 한국에서 일하기로 했어요. 이곳이 대학원 중심 기관이라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 인재들을 키우는 보람도 있고요.”

외국인 학자로서 그는 “민족주의사관이나 식민사관에서 거리를 두고 한국사를 객관적이고 범아시아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며 “인도 문헌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 유리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주로 영어와 한국어로 논문을 쓰지만 힌디어와 중국어로도 논문을 발표해 세계에 한국을 알린다.

요즘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인과 일본인들이 한국고대사를 어떻게 연구했는지 연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을 방문한 인도인들이 남긴 기록도 찾아 분석 중이다. 1926년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던 인촌 김성수가 인도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에게 보낸 편지를 2010년 인도 국가기록원을 통해 찾아내기도 했다.

모한 교수의 꿈은 나중에 모국으로 돌아가 신라 때 인도를 여행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 스님의 이름을 따서 ‘혜초한국연구소’를 세우는 것이다. “최근 인도에선 삼성 LG 등 한국 기업에 취직하고 싶어 한국어를 배우는 젊은이가 늘고 있어요. 하지만 한국의 문화와 전통사상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죠. 연구소에서 한국문학과 한국사 서적을 번역하고 힌디어로 직접 책을 집필하면서 인도 대중에게 한국을 알리고 싶습니다.”

성남=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 판카즈 모한 교수는 ::

△1955년 인도 비하르 주에서 출생 △인도 네루대 학·석사(중문학·중국학) △서울대 석사(한국 고대사·근대사) △호주국립대 박사(동아시아학) △1997∼1999년, 2002∼2009년 호주 시드니대 한국학과 교수 △1999∼2002년 덴마크 코펜하겐대 한국학과 교수 △2009년∼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제한국학부 교수 겸 학부장 △2010년 서울시 명예시민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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