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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이달에 만나는 시]함께 있지만 하나될 수 없는 운명…

입력 2013-09-05 03:00업데이트 2013-09-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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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의 금융회사 밀집 구역에는 특이한 모양의 고층 빌딩이 있다. 두 개의 사각 기둥이 뻗어 올라가다 허리춤 정도 높이에서 한쪽 기둥이 휘어져 다른 쪽 기둥에 맞닿은 모양이라 지나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런 빌딩은 예외다. 하늘을 향해 함께이되 결코 만날 수는 없는 빌딩의 운명은 어쩌면 타인과 나의 관계를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로 ‘나’의 경계를 허물어 가깝게는 연인이나 지인, 멀게는 국가나 대의, 이념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때로는 그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고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냉정히 질문해 보자. 그것이 정말 가능한가?

이달에 만나는 시 9월 추천작으로 김언 시인(40·사진)의 ‘뼈와 살’을 선정했다. 우리 시단의 ‘미래파’로 불리는 김 시인이 4년 만에 펴낸 네 번째 시집 ‘모두가 움직인다’(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됐다. 추천에는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시인이 참여했다.

시 ‘뼈와 살’은 시인이 책에서 접한 프랑스 센 강에서 동반 자살한 연인의 이야기가 출발점이 됐다. 시인은 “동반 투신자살한 연인의 시신을 건져 보면 남녀 모두 손톱 밑이 피투성이라고 한다. 함께 죽음을 각오할 정도로 사랑했는데도 죽음의 문턱에서는 살기 위해 서로를 붙잡고 밀치고 하다 생긴 상처다. 나라는 존재는 늘 타인의 영향 속에서 살지만, 나를 포기하면서까지 밀접해질 수는 없음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목 ‘뼈와 살’도 밀접하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관계를 상징한다. 시에서 이 둘의 거리는 수직으로 뻗은 빌딩의 심상으로 구체화된다. 시인은 “쌍둥이처럼 닮은 빌딩도 결코 서로 기댈 수 없고 오직 평행하게 뻗을 수밖에 없는 그 평범한 진리가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보이려 했다”고 설명했다.

추천위원 장석주 시인은 “김언은 의미에 고착된 언어를 안쪽부터 허물고 고의로 방전시켜 감염 이전으로 언어를 되돌리는데, 그 지점이 김언 시의 낯섦이 폭발하는 발화점”이라고 평했다. 김요일 시인은 “김언은 탁월한 언어예술의 척후병이다. 끊임없이 없는 길을 찾아내고 예외 없이 새롭고 낯선 이미지를 풀어 놓는다”고 했다. 이원 시인은 “불일치로 어딘가에 꼭 오해를 만드는 그의 시는 진화하는 생물 언어가 존재한다는 증명이기도 하다”고 했다.





손택수 시인은 이영광의 시집 ‘나무가 간다’(창비)를 추천했다. 그는 “말과 삶의 극점까지 밀어붙여 터진 꽃향기가 뜨겁고도 서늘하다. 누군가 이 시대에 질투가 나는 시인이 있느냐고 물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영광을 들겠다”고 했다. 이건청 시인의 선택은 엄원태의 시집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창비)였다. 그는 “엄원태 시집은 고통과 슬픔의 풍경을 선연하게 담아 내 보여 준다. 힘든 투병 속에서 시인이 발견해 내는 소통의 말들이 참 곡진하게 울린다”고 평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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