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잊을 수 없는 ‘그날’]<3>오영찬 학예관의 ‘외규장각 도서 귀환’ 5월 26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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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서 트집잡아 안보내줄까 조마조마
마지막 4차분 비행기 실리자 ‘휴∼’

국립중앙박물관 오영찬 학예연구관은 5월 26일 오후 7시 외규장각 도서의 마지막 4차분이 비행기에 실렸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고백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국립중앙박물관 오영찬 학예연구관은 5월 26일 오후 7시 외규장각 도서의 마지막 4차분이 비행기에 실렸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고백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외규장각 도서 마지막 4차분 도착 예정일 하루 전인 2011년 5월 26일.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도서 도착과 이후 일정에 대한 문의가 밀려들었다. ‘145년 만의 귀향’ ‘약탈문화재 반환의 새로운 역사’와 같은 표현들이 쏟아졌다. “왜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아야 하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찌 됐든 모두 들떠 있는 건 분명했다. 4월 14일 1차분이 반환된 데 이어 4월 29일, 5월 12일 차례로 2, 3차분이 돌아왔기에 들뜬 건 어쩌면 당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속은 바싹바싹 탔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만에 하나 저쪽에서 무슨 트집이라도 잡는다면….’ 그동안 하루하루가 조심스러웠던 시간이었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실무를 맡았던 국립중앙박물관의 오영찬 학예연구관(42). 그는 그날도 내내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준비와 걱정으로 하루 일과가 휙 지나갔다. 오후 7시, 오 연구관은 프랑스로 국제전화를 걸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다. ‘혹시 별일은 없을까.’ 다시 시계를 보았다. 프랑스 시간으로는 낮 12시.

“여보세요.”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연구관은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방금 상자가 잘 올라갔습니다. 이제 비행기가 뜨기만 하면 됩니다.”

마지막 4차분 73책이 파리 드골공항 대한항공 화물기에 무사히 적재됐다는 소식이었다. “휴.” 그는 안도의 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정말로 돌아오는구나.’

1866년 프랑스군에 약탈당한 뒤 프랑스국립도서관이 145년 동안 보관해온 외규장각 도서. 그 도서들이 3차에 걸쳐 들어온 마당에 4차분을 놓고 웬 걱정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오 연구관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두 달 전인 3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 도서 환수 협정서를 체결할 때의 분위기를 떠올렸다.

“분위기가 냉랭했습니다. 프랑스국립도서관과 관계없이 양국 정상이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도서관 측은 돌려주기 싫어했습니다. 분위기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죠. 협정서를 체결하고서 사진 촬영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에 하나 돌발 변수라도 터진다면 곧바로 돌려주지 않겠다고 나설 것 같았어요. 그러니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국립도서관 측에서 뭔가 구실을 붙여 언제라도 뒤집을 가능성이 있다는 걱정이었다.

그렇기에 5월 26일 마지막 4차분이 비행기에 실리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몇 달 동안 계속돼 온 긴장이 눈 녹듯 풀리던 그날 5월 26일 저녁, 퇴근길의 경쾌한 발걸음을 오 연구관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그는 마음이 다시 편치 않아졌다. 의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줄어든 것 같기 때문이다.

“비록 대여 형식이지만 우리가 일단 가져왔으니 프랑스가 다시 가져갈 수는 없겠죠. 그러나 보관 장소만 옮겨왔다고 우리 것이 되는 게 아닙니다. 진정으로 우리 것이 되려면 가장 중요한 일이 연구와 활용이죠.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가져와야 된다고 하더니 막상 가져오고 나니 그다지 연구도 하지 않고….”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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