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Wisdom]구한말 조선을 바라본 ‘긍정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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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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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데일리메일 특파원 프레드릭 매킨지 “강인한 정신력 갖춘 한민족, 잠재력 무섭다”

영국 신문기자 매킨지의 책에 실린 구한말 의병들. 매킨지는 열등한 민족(일본)이 우월한 민족(한국)을 잠시 지배할 수는 있으나 동화시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동아일보 DB
영국 신문기자 매킨지의 책에 실린 구한말 의병들. 매킨지는 열등한 민족(일본)이 우월한 민족(한국)을 잠시 지배할 수는 있으나 동화시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동아일보 DB
“한국의 민족성에는 무서운 잠재력이 있다.”

영국인 신문기자 프레드릭 매킨지만큼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한국의 잠재력을 확신했던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1900년대 초반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의 특파원으로 두 차례 한국에 와서 러일전쟁과 3·1운동을 취재한 뒤 ‘대한제국의 비극’(1908년)과 ‘한국의 독립운동’(1920년) 등의 책을 남겼다.

○ ‘주체적 존재, 한국인’

매킨지는 ‘대한제국의 비극’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짧은 기간 한국을 돌아본 사람들은 사회적인 모순만을 보게 돼 반감과 공포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을 좀 더 알게 되면 그들이야말로 친절하고 악의를 모르며, 천진난만하고 진리를 탐구하며, 또 매우 사랑스럽고도 정을 느끼게 하는 성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내 생생한 경험담이다. (중략) 나보다도 한국인을 더 잘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 생각이 조금도 틀림없다는 걸 알게 된다. 한국인은 기회만 주어지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의 책에는 사동(使童·잔심부름 하는 아이)과 의병, 개화파 지식인과 보수적인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 한국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망국의 유민으로 살기보다는 차라리 자유민으로 죽는 게 낫다”고 외치는 의병들,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를 토론했던 독립협회의 젊은이들. 이들은 서구인과 동등하게 인류의 가치와 진보에 대해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할 줄 아는 주체적 존재였다.

매킨지는 잠재력이 무한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가자 참을 수가 없었다.

“일본은 애초부터 한국인을 경멸했다. 나무꾼이나 지게꾼으로 밖에는 쓸모가 없는 사람들로 만들려고 했다. 한국인의 민족적 이상을 말살시켜 일본인으로 만들되 지배계급과는 다른 열등한 일본인으로 만들려고 했다.”

1910∼1919년 일본의 제국주의 통치는 무자비했다. 이 시기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는 “한국인은 집어삼켜 씨를 말려야 할 민족”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일본은 유럽과 미국에서 자신의 명분을 옹호해 줄 ‘박수부대’를 끌어 모았다. 일제 통치에 항거하는 한국 의병은 ‘폭도’로 몰아갔다. 한국을 찾는 서양 언론인들은 일본에 매수돼 본국으로 돌아가면 일본을 칭송하고 한국을 경멸하는 기사를 쓰기 일쑤였다.

국제사회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 대해 큰 호감을 가졌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을사조약의 강제성을 잘 알았지만 “일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고, 교묘히 한국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거부”하며 ‘한국은 자치가 부적절한 민족’이라고 확신했다. 영국도 일본에 동조했다. 영국 정부는 각국 통신원들에게 친일적 태도를 견지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 때문에 매킨지가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쓴 한국 의병 종군기도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

○ 강인한 기질과 정신

필자는 한 약소민족에게 가해지는 세계의 ‘폭력’에 대해 제3국의 시민이 이렇게 분노에 찬 목소리로 저항하는 글은 읽어 본 적이 없다. 매킨지의 글에서는 압제에 고통 받는 식민지인의 피와 목소리가 생생히 흘러나온다. 그는 강자끼리 뭉쳐 자신의 이익에 따라 약자를 무시하는 세계 권력의 메커니즘에 분노했다.

매킨지가 한국인에게 무서운 잠재력이 있다고 본 것은 군사력이나 근대적 과학기술 같은 물질의 측면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인의 기질과 강인한 정신이었다.

“일본인은 한국인의 성격이 예상하지 못한 정도로 끈질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한국인의 무표정한 얼굴 밑바닥에는 그들만의 어떤 단호한 정신력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일본인은 한국인을 동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인의 민족성을 되살리는 데 성공한 셈이다.”

매킨지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피압박 민족(한국)보다 더 열등한 민족(일본)이 4000년 역사를 가진 민족을 동화시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일본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한국인은 과소평가한다.”

박수영 작가·스웨덴 웁살라대학교 역사학석사 feenpark@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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