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가인열전]<11>이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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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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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셀러 시대 연 순정의 발라드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작곡가 이영훈과 작업한 첫 앨범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내기 전까지 이문세는 가수보다는 라디오 DJ로 더 알려졌다. 동아일보DB
작곡가 이영훈과 작업한 첫 앨범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내기 전까지 이문세는 가수보다는 라디오 DJ로 더 알려졌다. 동아일보DB

1982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문세의 데뷔 앨범엔 ‘가는 사람 갈지라도’와 ‘그날처럼’이라는 두 곡의 자작곡이 실려 있었다. 1970년대 한국을 수놓았던 통기타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품은 이 청년의 이상은 같은 해 발표된 조용필의 ‘비련’과 이용의 ‘잊혀진 계절’ 같은 위대한 러브 발라드에 묻혀 버렸다. 이듬해 신중현의 프로듀스로 ‘아름다운 강산’까지 리메이크하는 열정을 보였지만 역시 아무런 반향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는 그저 라디오의 유능한 디스크자키 혹은 브라운관의 재기 넘치는 MC로 자리 잡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 신예 작곡가와의 운명적 조우가 노래를 향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던 이 청년의 삶을 바꾼다. 1930년대 남인수 박시춘으로 묶인 짝 이래 남성 이인삼각 경주로서 최고의 편성인 이문세 이영훈 콤비는 1985년 공식적으로는 세 번째, 사실상 네 번째인 앨범의 머리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로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주도권을 확보해 가고 있던 하이틴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낸다. 그 지지의 이름은 바로 ‘밀리언셀러’였다.

이어 그의 최대 성공작인 네 번째 앨범은 20년이 넘도록 러브 발라드의 고전으로 읊어지는 ‘사랑이 지나가면’과 미디엄 템포의 클라이맥스를 지닌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수미쌍관을 이루며 주류 언어로서의 발라드를 이 땅에 정립한다. 이 앨범 전곡의 작사, 작곡을 담당한 이영훈은 편곡을 맡은 김명곤(1970년대 말의 혜성과도 같은 밴드 ‘사랑과 평화’의 키보드 주자)의 도움으로 서구 대중음악의 세례를 받은 어린 수용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핵심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구애와 이별 사이를 가로지르는 뜨거움과 허전함을 형상화하는 보편적이고 감상적인 선율을, 하나의 노래나 한 장의 앨범 전체를 통해서 ‘밀도’ 있게 조직하는 것이다. 이 앨범은 10대의 수용자가 어떠한 폭발력을 가졌는지 거의 처음으로 증명한 기념비적 앨범이다. 자신의 감수성을 대변하고 나선 이 앨범에 이 땅의 10대는 흔쾌히 표를 몰아주었으며 이 동력은 이문세가 30, 40대가 되어서도 동반해 ‘늙어가는’ 의리를 보인다.

이들의 성공은 ‘시를 위한 시’를 간판으로 하고 ‘광화문 연가’로 강한 인상을 남긴 다섯 번째 앨범에서도 경이적이었고, 연속한 이 석 장의 밀리언 앨범은 1988년 발라드의 주류화에 쐐기를 박는 변진섭의 첫 두 앨범에 음악사적 전제가 된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을 석권했던 발라드가 이후 춤과 패션, 그리고 숨 돌릴 틈 없이 잘게 나뉜 화면의 편집 등 시각적 요소로 무장한 댄스뮤직 앞에 속절없이 자신의 권좌를 내주고 발라드의 젊은 영웅들은 추풍낙엽처럼 사라져 갈 때 (그 유일한 예외는 신승훈이다) 이문세와 그의 파트너는 1990년대를 막 넘어선 1991년에 의심할 바 없는 이들의 최대 걸작이자 나이 먹어가는 자신의 세대에 걸맞은 성인 취향의 일곱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 이전과 같은 소녀들의 환호성은 없었다. 그러나 세션계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유영선과 연석원이 합류해 이루어낸 이 앨범의 A면엔 너무나 소중한 아름다움이 켜켜이 흐르고 있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현악 합주와 피아노, 그리고 알맞게 배치된 관악기의 후원을 받으며 전개되는 첫째 면의 머리곡 ‘가을이 가도’와 ‘사랑이라는 게 지겨울 때가 있지…’ 하며 허허롭게 20대의 열정의 비망록을 넘겨 버리는 다음 면의 머리곡 ‘옛사랑’은 다양한 스타일의 울림을 지닌 이 앨범의 백미다.

이 7집부터 2002년 14집 ‘빨간 내복’에 이르기까지 이문세는 성숙하고도 재기발랄한 ‘이문세적인 것’을 앨범에서나 ‘독창회’라는 타이틀로 명품 브랜드가 된 무대 모두에서 유감없이 펼쳐 보인다. 그것은 말하자면 이를 데 없이 섬세하거나 흔들림 없는 견고한 것이 아닌, 아직 가득 채워지지 않은 넉넉함과 세련됨이 묘하게 만난, 그러나 신비로움을 품은 친근함과 소박함이라는 한국 대중음악의 또 하나의 미학이다.

앨범은 극히 소수인 싱어송라이터나 밴드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문세는 주류 엔터테이너로서 히트곡이 아닌 종합적인 앨범 완성도의 시대를 열었고 그것은 한국 대중음악의 의미심장한 인프라가 되었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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