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현장 체험]워터파크 남자 직원들 “눈 즐겁냐고? 한 곳을 뚫어지게 봤다간…”

  • Array
  • 입력 2012년 6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오션월드 파도풀 청소

살살 움직여야 한다. 안 그러면 밤새 바닥에 가라앉은 먼지가 다시 흩어져 버리고 만다. 비발디파크 오션월드의 파도풀 바닥을 본보 기자(왼쪽)와 이종호 안전요원이 함께 청소하고 있는 모습. 홍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살살 움직여야 한다. 안 그러면 밤새 바닥에 가라앉은 먼지가 다시 흩어져 버리고 만다. 비발디파크 오션월드의 파도풀 바닥을 본보 기자(왼쪽)와 이종호 안전요원이 함께 청소하고 있는 모습. 홍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네, 들어오세요!”

13일 오전 8시. 연면적 약 1만 m²의 파도풀을 ‘전세’낸 이종호 오션월드 안전요원(29)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그의 얼굴에 걸린 사람 좋은 웃음에 믿음이 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등 뒤에 둘러맨 공기통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대학 다닐 때 스킨스쿠버를 해본 적 있다”는 말 한마디가 그에게 과도한 믿음을 던져줬나 보다. 몸에 착 달라붙은 잠수복이 온몸을 더욱 바짝 조여 오는 듯했다.

왼손에 든 물안경을 물에 푹 담갔다 꺼내 썼다. 아, 맞다. 6년 전 아주 잠깐 배웠던 스킨스쿠버의 기본이 떠올랐다. 다시 물안경을 빼 안쪽에 침을 뱉은 후 문질렀다. 왜 그렇게 하라고 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분명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호흡기를 입에 물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침묵의 청소기 돌리기

허리에 찬 웨이트 벨트가 무색할 만큼, 몸이 계속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분명 물 밑으로 내려가는 방법이 있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아니,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했던가. 그저 아래를 향해 열심히 양팔을 저었다. 효과가 있다. 몸이 천천히 수심 2m의 바닥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간신히, 먼저 내려와 있던 이 씨가 붙잡고 있는 ‘클리너’를 붙잡았다. 비로소 본격적인 수영장 청소가 시작됐다.

클리너는 수중 청소기를 말한다. 거실 바닥에 쌓인 먼지를 청소기가 빨아들이듯이, 파도풀 바닥에 가라앉은 미세먼지들을 물과 함께 빨아들여 파도풀 밖 여과기로 보낸다. 청소기를 돌리는 방법도 똑같다. 사람이 직접 걸어 다니며 거실 바닥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듯이, 물 안에서도 16개의 바퀴가 달린 ‘흡입구’를 사람이 직접 밀며 파도풀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파도풀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파란색 비닐 한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빨릴까’라는 의심은 ‘흡입구’가 그 위를 지나가는 순간 말끔히 사라졌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있던 비닐이 길게 늘어진 호스를 따라 물 밖에 놓여 있던 여과장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갑자기 이 씨가 ‘흡입구’에 연결되어 있던 호스를 빼 물속을 휘저었다. 바닥이 아닌 물 위에 떠다니던, 아주 작은 나뭇잎 한 조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르바이트 경력까지 포함해 이곳에서 6년째 근무하고 있는 베테랑의 손놀림다웠다.

낯선 작업이 가져다주는 흥분이 사라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집에서 청소기를 돌릴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서서히 가슴속을 채웠다. 집과는 그 크기를 비교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한 번에 3000명에서 5000명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야외 파도풀의 규모가 아득하기만 했다. 더구나 이 씨에게 말을 건넬 수도 없다. 그저 그가 가는 대로 따라가 함께 파도풀 바닥을 쓸어댈 뿐이었다. 머리 위로 길게 늘어진 호스는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앞으로 뻗는 양손에 깃든 기운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집에서 청소기를 한 백 번쯤 연달아 돌린 것 같은 피로에 몸이 서서히 지쳐갔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피곤함이 전해진 것일까. 이 씨가 물 위로 올라가자는 사인을 보냈다. 내려온 속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물 위로 올라왔다. 입에 문 호흡기를 빼자 상쾌한 공기가 다시 입을 통해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고개만 내민 채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 안 나오세요?”

“일단 쉬고 계세요. 전 마저 더 해야 돼요.”

그가 다시 호흡기를 물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물속으로 향하는 계단 옆에 놓아뒀던 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고작 30분이 지나 있었다. 이 씨는 파도풀 개장 시간인 9시가 조금 넘어서야 물 밖으로 나왔다.

■매일 청소 안하면 바닥에 때끼어

“왜 스킨스쿠버 장비까지 착용하고 들어가는 거예요?”

물속에서부터 그에게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제일 깊은 곳은 수심이 2.4m까지 되잖아요. 숨 쉬려고 계속 파도풀 바닥과 물 위를 왔다 갔다 하면 아무래도 효율이 떨어지지 않겠어요? 체력적으로도 더 부담이 되고.”

이 씨가 예의 그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는 “원래 1시간 30분 정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왠지 기자가 그의 발목을 단단히 잡은 것 같다.

흔히 안전요원들이 ‘물을 잡는다’고 말하는 파도풀 청소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해야 한다. 파도풀에 배치된 안전요원들이 매일 아침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물론 수질관리를 담당하는 다른 팀도 있다. 하지만 파도풀 바닥 청소를 비롯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즉각적으로 수질을 관리하는 것은 안전요원들의 몫이다. 항상 파도풀에서 근무하는 만큼, 수질이 조금이라도 안 좋아지면 제일 먼저 그들이 눈치를 챈다.

“입장객들이 선크림이나 오일 등을 많이 바르시잖아요. 그런 것들이 계속 물에 씻겨 나가면, 물에 거품이 많이 생길 때가 있어요. 수질이 안 좋아졌다는 증거죠. 그러면 바로 수질관리팀과 협의를 해서 조치를 취하죠.”

그는 ‘자랑’을 한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선 강원도 홍천강의 1급수 강물을 사용해요.”

그런데 굳이 매일 파도풀 바닥 청소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물 위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미세먼지가 쌓이고 쌓이면 바닥에서 굳어 ‘때’가 된다. 그렇게 되면 제거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대충 해도 바로 표시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요령을 부릴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수심이 얕은 곳에선 긴 봉을 클리너에 연결해 물 위에서 청소를 한다.

“그래도 바닥 청소는 별로 안 힘든 거예요. 여름에는 바닥에서 이끼가 금방 자라거든요. 그러면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끼를 제거해야죠. 그게 젤 힘들어요.”

물속에서 청소기를 돌리는 일에도 노하우가 있다. 제일 중요한 건 살살 다녀야 한다는 것. 빗자루질을 세게 하면 먼지가 날리는 것처럼, 동작이 크면 클수록 밤새 가라앉은 미세먼지들이 다시 물 사이로 흩어져 버린다. 물살 때문에 작은 쓰레기들이 모이는 지점도 있다. 청소를 하다 그가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는 그 지점들은 총 7, 8곳. 입장객들이 잃어버린 분실물도 그곳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단 그런 지점들을 먼저 청소한다.

성수기에는 중간 중간 입장객들을 물 밖으로 내보내고, 또 물청소를 한다. 하루에 2회 정도 파도풀을 돌며 뜰채로 눈에 보이는 이물질들을 걷어낸다. 최성수기인 7월 말에서 8월 중순에는 2∼3시간에 한 번꼴로 그 작업을 한다.

개장 전, 물 위에서도 바닥을 물로 씻어내며 손님을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홍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개장 전, 물 위에서도 바닥을 물로 씻어내며 손님을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홍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물 밖에서는 안전요원

그새 구명조끼를 입은 남녀 10여 명이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싣고 있었다.

“곧 이 넓은 파도풀이 사람들로 빽빽하게 찰 거예요.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 모습을 보고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적응이 됐죠.”

파도풀 옆에 마련된, 본업인 안전요원 자리에 선 그가 말했다.

“물속에서 분실물도 자주 눈에 띄지 않나요?”

이 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간혹 반지 같은 것들을 잃어버리는 분이 있는데, 그리 많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것들은 한 번에 모아서 대여소 쪽으로 보내죠.”

분실물을 찾아줘도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5000원짜리 수영 모자에도 너무나 고마워하고, 비싸 보이는 반지를 찾아줘도 그저 시큰둥한 사람도 있다.

그에게 “그래도 눈이 즐겁겠다”며 농담을 건넸다.

“눈이야 즐겁죠.(웃음) 하지만 절대 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지 말라고 항상 교육을 받죠. 그리고 가끔 여성분들에게 의도적으로 신체 접촉을 하시는 남자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 보면 정말 화가 나죠.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남자들을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게 돼요.”

그리고 필요하면,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한다.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이 씨가 빠르게 소리가 난 곳을 찾았다. 지나가는 어린 남자 아이의 입에 호루라기가 하나 물려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만 들리면 무의식적으로 쳐다보게 돼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근무자들끼리 보통 호루라기로 신호를 주고받거든요. 제일 듣기 싫은 소리는 길게 3번 울리는 소리죠.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소리니까요. 물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저희들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세세하게 신경을 쓰고 있죠.”

그가 웃으며 한 마디 더 덧붙였다. “근무 시간이 끝난 후에는 따로 입장객들에게 선보일 다이빙이나 댄스도 연습해요.” 청소는 그저 그가 하는 수많은 일들 중 하나였다.

[채널A 영상]택시기사 체험 나선 기자 “이해 안가던 것들이…”

홍천=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오션월드#파도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