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현장 체험]아이들 최후의 보루라는 심정으로 경계 또 경계… ‘학교보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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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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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 번3동 오현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학교보안관 김순자 씨와 기자가 등교지도를 하고 있다. 김 씨는 “아이들이 앞만 보고 급하게 뛰어나갈 때 제일 아찔하다”고 말했다. 학교보안관의 근무 시간(2명이 교대로 일함)은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9시 반까지지만,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오현초등학교의 경우 많은 학생이 동시에 귀가하는 하교 시간대에 맞춰 2명이 함께 근무를 선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서울 강북구 번3동 오현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학교보안관 김순자 씨와 기자가 등교지도를 하고 있다. 김 씨는 “아이들이 앞만 보고 급하게 뛰어나갈 때 제일 아찔하다”고 말했다. 학교보안관의 근무 시간(2명이 교대로 일함)은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9시 반까지지만,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오현초등학교의 경우 많은 학생이 동시에 귀가하는 하교 시간대에 맞춰 2명이 함께 근무를 선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야.”

“….”

작은 야구 글러브를 자전거 손잡이에 끼우고 막 페달을 밟으려는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아이는 어색한 침묵만을 남겨둔 채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이제 집에 가는 거야?”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다 막 교문 앞을 나서려던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었다.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난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을 했지만 아이는 그냥 냉랭한 표정만을 지었다.

아침에 출근해 해가 학교 건물 뒤로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이들은 묻는 말에 짧게라도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곤 했다. 의아함을 뒤로한 채 교문 바로 앞에 있는 보안관실 문을 열었다. 의자에 걸려 있는, 등에 ‘학교보안관’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베이지색 점퍼가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더워서 잠깐 벗어놓은 것이었다.

‘그래, 점퍼가 없으면 난 그냥 이상한 아저씨였어.’

○ 횡단보도 앞에서 등교지도부터 시작

19일 오전 8시 10분. 교문 바로 앞에 위치한 횡단보도에서 이제 막 집을 나서는 차들을 멈춰 세우며 등교 지도가 시작됐다. 불과 20분 만에 경찰관들이 교통지도를 할 때 쓰는 빨간색 봉을 든 손 끝이 아려왔다.

“오늘은 일찍 오네.”

학교보안관 김순자 씨(65·여)가 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눈꺼풀 위에 무겁게 잠이 내려앉은 아이의 머리 위에 까치집이 얹혀 있었다. 멀리 쫓아냈던 잠이 다시금 몰려왔다. 아이가 고개를 숙여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자주 지각을 하던 아이인데, 요즘은 일찍 오더라고요. 기특해요.”

그녀는 일일이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었다.

“신기하죠? 2008년 8월까지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쳤으니까 아이들 이름 외우는 건 잘하지 않겠어요? 그렇다고 다 외우는 건 아니고요.(웃음) 정년퇴임하고 아이들하고 떨어져 지내니까 쓸쓸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예전처럼 아이들 속에서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좋아요.”

“예쁜이 선생님, 안녕하세요.”

작은 등을 가득 채운 책가방을 멘 여자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그녀에게 인사했다.

“안녕.”

쑥스러움을 뒤로하고 말을 걸어보았다.

“어, 보안관 바뀌었어요?”

“아니, 오늘만 하는 거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런데 횡단보도 앞에 이렇게 차를 세워놔도 되는 거예요?”

아스팔트 위에 그려진 횡단보도 위로 검은색 쏘나타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안 되죠. 전화해서 차 좀 옮겨 달라고 해야죠. 전화라도 받으면 다행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전화를 해도 안 받아요.”

○ 요주의 인물, 남자

1교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학교를 빙 둘러싸고 있는 담을 따라 순찰을 돌았다. 두 번째 순찰 길이었다. 7시 반부터 텅 빈 학교 건물 안과 학교 주변을 순찰하는 것이 학교보안관이 출근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적막함이 감돌던 첫 번째 순찰 길과 달리 곳곳에 생기가 넘쳤다.

순찰을 마치고 보안관실로 들어섰다. 그녀가 앞 유리창에 ‘순찰 중’이라고 적혀 있는 푯말을 떼고, ‘외부인 출입 및 보안관 근무 일지’를 꺼내 ‘이상 없음’이라고 적어 넣었다.

“이제부터는 들어오는 사람들을 잘 지켜보세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청년이 교문 안으로 들어섰다. 보안관실을 쓱 한 번 쳐다보고는 학교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학생, 학생!”

그가 걸음을 멈추고 보안관실 쪽으로 걸어왔다.

“어디 가세요?” “행정실요.”

“왜요?” “재학증명서 떼려고요.”

“이 일지에다 이름이랑 전화번호 적고 들어가셔야 돼요. 방문증은 여기 있으니까 교내에서는 꼭 목에 걸고 다니시고요.”

그가 순순히 시키는 대로 따랐다.

“아버지들은 이제 알아서 와서 이름 적고 방문증 받아서 가요. 초기에는 이것 때문에 몇 번 마찰이 있었죠. 내 아이 학교 왔는데 왜 그러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고요. 방문증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경우도 많고….”

그녀는 올해 3월 학교보안관이 시행될 때부터 이 초등학교에서 근무해 오고 있다. 이날은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하고 다른 근무자와 교대를 한다고 했다.

“솔직히 남자들이 문제잖아요. 남자는 특히 주의해서 지켜보세요.”

그녀의 말에 남자로서 항변할 말을 찾았지만, 마땅히 떠오르지가 않았다. 지난해 6월 9세 여자 아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성폭행한 사람을 비롯해 학교 주변에서 일어나는 강력 사건의 범인 대부분이 남자이지 않은가.

그녀가 자신에게 따지던 한 학부형의 이야기를 해줬다. 한창 이야기에 빠져 있는데, 행정실을 찾아갔던 그 청년이 성큼성큼 교문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 보였다. 창문을 열고 몇 번이나 불러보았지만, 청년이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기자가 재빨리 뛰어나가 이미 교문 밖 횡단보도까지 걸어간 청년의 가방을 붙잡았다. 그제야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을 빼냈다.

“방문증은요?”

“행정실에 두고 왔는데요. 죄송합니다.”

터덜터덜 다시 보안관실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말을 전했다.

“선생님들은 당연히 우리가 확인했다고 생각하시니까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돼요. 조금만 딴 데로 눈길을 두고 있으면 순간적으로 사람을 놓쳐요.”

중학생 한 명이 ‘교사 체험’을 하기로 했다며 또다시 교문을 넘어섰다. 그녀가 몇 학년 몇 반 선생님과 연락을 했는지 등 꼼꼼히 질문을 던졌다.

○ 단축번호 7번

그녀의 단축번호 7번은 학교 바로 옆에 붙어있는 지구대 전화번호였다. 지난여름 남자 두 명이 학교 화장실을 이용하겠다며 들어왔다 시비가 붙었다. 벌건 대낮인데도 두 사람은 술에 취해 있었다. 시비 끝에 경찰을 부르기 위해 보안관실로 달려 들어와 수화기를 들었는데, 한 남자가 보안관실까지 따라 들어와 수화기를 내동댕이쳤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까 학교 안에 계시던 선생님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나오시더라고요. 선생님들 보고 막 뛰어 도망갔죠. 폐쇄회로(CC)TV까지 확인해 봤는데 결국 못 잡았어요.”

틈틈이 그녀의 ‘무용담’이 이어졌다. 다행히 학교보안관 제도가 시행되면서 그런 사람들이 점점 줄고 있다고 한다.

“하는 일이 경비와 비슷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경비라고 많이들 생각하세요. 그런데 경비는 아니죠. 우리는 애들을 보살피려고 와 있는 거니까요.”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우르르 운동장으로 몰려나왔다. 그녀는 운동장 한쪽에 서서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 아이가 교문 밖에 나가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돌아왔다.

“뭐 하려고?”

“흙 팔 때 쓰려고요.”

“조심해서 놀아. 다치지 않게.”

“네.”

오후 3시까지 그녀의 눈길은 아이들을 졸졸 따라다녔다. ‘놀토’인 이번 주 토요일에도 그녀 혼자 텅 빈 학교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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