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현장 체험]광양 이순신대교 건설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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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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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270m 상공서 일해보니… 세상 어떤 난관도 하찮게 보여

어디선가 바닷바람이 불어와 허공에 매달린 캣워크가 흔들렸다. 63빌딩(249m)의 전망대보다 더 높이 솟은 주탑을 향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광양=나성엽 기자 cpu@donga.com
어디선가 바닷바람이 불어와 허공에 매달린 캣워크가 흔들렸다. 63빌딩(249m)의 전망대보다 더 높이 솟은 주탑을 향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광양=나성엽 기자 cpu@donga.com
‘내려다보지 말아야지, 내려다보지 말아야지….’

수백 번 다짐했지만 결국은 호기심이 승리했다. 철조망으로 제작된 작업자 통로(캣워크)를 따라 걷던 나는 해발 200m 지점에서 그만 내려다보고 말았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아 손이 부서져라 안전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뻥 뚫린 바닥 아래로 펼쳐진 시커먼 바다. 손톱만 해 보이는 중장비와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알만큼 작게 보이는 사람들. 귓가에 부딪히는 바람소리. 파도가 아닌 바닷물의 큰 흐름, 해류가 보이는 높이에서 내 속도 바닷물처럼 울렁댔다.

7일 오전 전남 광양시 금호동과 여수시 묘도를 잇는 총길이 2260m의 이순신대교. 대림산업이 시공 중인 건설 현장에 1일 근로자로 취업한 기자는 작업 장소인 해발 270m 높이의 주탑까지 케이블을 따라 설치된 캣워크를 오르며 여기 온 걸 후회했다.

되돌아가자니 아래를 내려다보며 걸어야 하는 무서운 길, 계속 올라가자니 더욱더 높아지는 공포체험. 이를 악물고 그동안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 봤다. 그리고 결심했다.

‘오늘부터 새 사람이 되리라, 어떤 난관이 닥쳐도 모두 이겨내리라!’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떼기 위해 상체를 일으키려는 순간, 옆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보니 수건과 모자로 얼굴을 감싼 한 중년의 현장 근로자가 난간도 안 잡고 걸어내려 오면서 ‘얘 뭐하니?’ 하는 시선으로 기자를 힐끔 쳐다보고 지나갔다.

일일 멘터를 맡아 기자와 함께 걷던 대림산업 이순신대교 현장 고진우 기사(28)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가시죠. 12시까지는 주탑에 올라가야 돼요. 올라가서 밥 먹어야죠.”

“아, 네….”

○ 캣워크를 걸을 수 있는 자격

기자는 이날 주탑에 오르면서 후회했지만 이순신대교 주탑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토목공학과 교수나 관련 기관 관계자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주탑 케이블 캣워크는 개방하지 않았다.

현장 작업자들도 채용에 앞서 철저한 신체검사와 가정환경, 성향 조사를 통과한 뒤 안전교육을 받아야만 일할 자격이 주어진다. 기자도 이날 주탑에 오르기에 앞서 안전교육담당 양국섭 부장(54)의 ‘검증’을 받았다.

우선 바닷가 옆에 마련된 가건물의 책상에 앉아 ‘신규채용자 관리대장’을 작성했다. 이름과 주소, 혈액형까지 적어 넣고, ‘직종/경력’란에는 ‘보통 인부/없음’을 적었다.

그리고는 혈압을 잰 뒤 ‘121-72’ 정상인 것을 확인한 다음, 일과는 관계없는 것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하루에 담배는 얼마나 피우십니까? 술은요? 일주일에 몇 번이나 마셔요? 한 번 마실 때 소주로 환산하면 몇 병이나 마시죠? 수면 시간은 얼마나? 혹시 과거에 어디 아팠던 데는?”

양 부장이 ‘면담 내용’이라고 적힌 칸에 대답 내용을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독신인가요? 거주는 어떻게 하세요?”

건강검진이 끝났다 싶더니 ‘호구조사’가 이어졌다.

“동생이랑 같이 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동생 연락처가 필요합니다. 연락처가 어떻게 되나요?”

갑자기 양 부장이 휴대전화를 꺼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대림산업의 양국섭 부장입니다. 박희창 씨랑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이순신대교 현장에 왔는데, 형제가 맞는지 확인차 전화드렸습니다.”

이어 양 부장은 가건물 옆 철봉에서 기자에게 턱걸이를 시켰다.

그는 “허리가 아픈 사람들은 턱걸이를 못한다”며 “허리가 아픈데도 일하겠다고 오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절차”라고 소개했다.

마침내 양 부장의 ‘OK’ 사인이 떨어졌다. 그는 안전수칙을 다시 한 번 주지시킨 뒤 등판에 ‘신규 채용자’라는 문구가 인쇄된 노란색 조끼와 안전장구를 건넸다.

“노란색 조끼는 ‘나는 초보다’라는 뜻으로 신규 채용자는 10일간 무조건 착용해야 합니다. 이 옷을 입고 있으면 현장 숙련공들이 잘 챙겨줄 겁니다.”

○ 다르지만 같은 패션쇼와 공사장의 ‘캣워크’

“보기에는 간단해 보여도 이 일도 숙련도가 필요하거든요. 지금은 시간과의 싸움이에요. 한 명이 실수하면 공사기간이 그만큼 길어져요. 그러니까 옆에서 보기만 하세요.”

막상 작업에 투입됐지만 워낙 어려운 공사여서 기자가 기여할 부분이 많지 않았다.

이날 작업은 케이블카처럼 작동하는 ‘스피닝 휠’이 다리를 왕복하며 현수교의 핵심 부품인 초고강도 강선을 운반할 때 강선이 놓여야 할 제 위치를 잡아주는 일이었다. 스피닝 휠은 1시간에 한 번꼴로 다니기 때문에 잠시 위치를 잡아준 뒤 1시간은 대기하며 쉴 수 있었지만 순간 강선의 위치를 잘못 잡을 경우 부실공사로 이어질 수도 있는 중요한 일이었다. 기자는 스피닝 휠을 기다리는 동안 안전 손잡이를 점검하거나 주변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고 기사는 “강선은 직경 5.35mm에 불과하지만 한 가닥이 견딜 수 있는 하중이 4t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이순신대교에 쓰이는 강선은 모두 1만2800가닥. 이 케이블이 왕복 4차로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현수교를 지탱하는 것이었다.

거대한 철근과 콘크리트 덩어리로만 생각했던 현수교는 알고 보면 대한민국 토목공사 장인이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꿰어 만드는 명품 의류와 같았다. 그리고 이순신대교 공사 현장은 하나의 패션쇼 장이었다.

형형색색의 조명 아래 아름다운 남녀 모델들이 화려한 ‘워킹’을 선보이는 ‘캣워크’와 같은 이름을 지닌 곳. 그러나 그곳에는 화려한 조명 대신 따가운 햇볕만이 쏟아져 내렸고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옷차림도 없었다. 손목까지 내려오는 긴 상의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작업자들이 그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두려움이 밀려오고 어지러운 그곳에서 바라본 땀에 흠뻑 젖은 그들의 모습은 그 어느 패션모델보다 아름다웠다.

“그런데 화장실 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큰 일’은 주탑까지 올라가야죠. ‘작은 일’은 현장에서 해결해요. 그 높이에서는 그냥 공기 중에 수증기로 사라져요. 그런데 가끔 맑은 날 가랑비 같은 게 떨어질 때는 ‘아, 위에서 누가 볼일 봤구나’ 하고 말아요.”

물통으로 향하던 손을 조용히 거두어들였다.

케이블이 지상에 고정된 부분인 ‘앵커리지’에서 주탑까지 캣워크의 직선거리는 357.5m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날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발걸음을 옮긴 기자는 주탑까지 꼬박 1시간 반을 걸었다.

하늘에서의 식사, 그리고 “살려주세요”

점심시간이 되자 작업자들이 주탑으로 모였다.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담긴 점심 식사가 공사용 간이 엘리베이터(호이스트)로 배달돼 왔다. 상을 펴고 바닥에 앉았다. 감자조림과 오징어젓갈, 제육볶음과 상추가 푸짐하게 차려졌다. 밥공기는 보통 가정에서 쓰는 것보다 약 1.5배가량 컸다.

“어때요? 할 만해요?”

고 기사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밥은 맛있죠?”

“네.”

270m 높이에서 남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먹는 새하얀 쌀밥이 그리 달 수가 없었다. 함께 식사를 하며 현장에 온 지 한 달 된 이재영 기사(26)에게 물었다.

“신입사원 교육 받으러 왔을 때는 한 발짝도 못 걸었다면서요?”

“예. 그때는 119를 부르려고 했어요. 진짜 불렀으면 ‘공사장에서 119 부른 대림맨’이라는 오명을 얻을 뻔했죠. 그런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웃음)”

식사를 마치자 고 기사가 “자, 또 가시지요”라며 발길을 재촉했다. 1545m 떨어진 묘도 쪽 주탑에 이어진 캣워크에서도 같은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걸으며 인생관을 바꾼 거리의 4배. ‘살고 보자’는 생각에 결국 고 기사에게 고백했다.

“도저히 더는 못 갈 것 같아요. 오후 작업은 지상에서 하는 일로 시켜주시면 안 될까요?”

주탑에서 호이스트를 타고 내려오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리가 완공되면 현장에서 2년 넘게 일한 사람들의 이름은 따로 현판에 새겨두는 게 전통이에요. 100년 이상 견디도록 설계된 다리니까 내 손자들이 와서 할아버지 이름을 볼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절로 기운이 나요.”

환하게 웃으며 건넨 고 기사의 말 한마디가 현장을 떠날 때까지 내내 귓가에 머물렀다.

광양=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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