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핫 피플]위르겐 클리스만 미국 축구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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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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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문화 담긴 축구팀 조련… 야심 이뤄낼까

미국 월드컵 당시인 1994년 6월 28일 텍사스 주 댈러스 코튼볼 경기장. 전반전 11분 36초, 상대팀 페널티구역 중앙에서 패스를 받은 그가 오른 발등으로 공을 살짝 튀겨 올렸다. 공은 골문을 등진 그의 허리 높이로 솟았다. 그는 발레리노처럼 오른발로 중심을 잡아 몸을 시계방향으로 회전시켰고 그의 왼다리는 태권도 가위차기를 하듯 잽싸면서도 매끈하게 허공을 갈랐다. 11분 37초, 왼발을 떠난 공은 골문 왼쪽 구석을 정확하게 찔렀다. 그를 에워쌌던 수비수 3명은 머쓱하게 서로를 쳐다봤다. 독일 축구 대표팀 스트라이커 위르겐 클린스만. 상대팀은 한국이었다.

2006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팀을 독일 월드컵 3위로 이끌며 ‘클린스만 지도력’ 열풍을 일으켰던 그는 대회 직후 감독직을 내려놨다. 199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클린스만이 지난달 30일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그는 11일 멕시코와 1-1로 비기며 감독 데뷔 경기를 무난히 치렀다.

‘금발의 폭격기(Golden Bomber)’라 불리며 선수 시절 통산 280골(642경기·클린스만 공식 홈페이지 www.klinsmann.com참고)을 기록한 위대한 공격수. 이 중에는 독일(서독 시절 포함) 국가대표로 치른 A매치 108경기에서 넣은 47골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태클하는 수비수의 발이 몸에 닿지도 않았는데 몸을 날리며 쓰러지는 할리우드액션에 능하다고 해서 ‘다이버(Diver)’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붙기도 했었다.

하지만 클린스만이 클린스만인 진짜 이유는 한순간도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지 않은 데 있다. 1980년대 프로 초년병 시절 그는 순간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감독의 눈을 피해 육상 전문코치에게서 주법을 배웠다. 100m를 11.7초에 뛰던 그가 11.0초에 주파할 수 있게 됐다. 발끝으로 질풍같이 내달리는 그를 막지 못해 허덕이던 상대 수비수들은 팔꿈치로, 또는 스파이크 바닥을 드러낸 발로 격렬하게 부딪혀 왔다. 클린스만은 생각했다. ‘내가 쓰러지면 너 또한 쓰러진다.’ 그가 이탈리아 프로리그에서 뛸 때, 당대 이탈리아 국가대표 최고의 빗장수비수이자 거친 몸싸움으로 이름이 높았던 프랑코 바레시의 어깨뼈를 부러뜨린 것도 이 다짐에서 연유했다. 또 그는 다른 선수라면 발을 내밀 위치에 머리를 내던지는 용기도 갖췄다.

그는 혁신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이 보지 않거나 못하는 곳도 쳐다보려는 의지가 투철했다. 전인미답의 길을 가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2004년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자마자 독일축구협회의 꼭두각시 노릇은 그만두겠다고 결심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체력, 심리, 골키퍼 등으로 분야를 세분해 그 자리에 미국인, 스위스인을 비롯해 ‘변방’의 인물들을 코치로 선임해 독일축구협회와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2006년 월드컵에서 독일 팬의 온갖 찬사를 이끌어내자 그를 멸시하던 ‘축구황제’ 프란츠 베켄바워조차 그를 찬양했다.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서 클린스만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듯하다. 그는 감독 부임 기자회견에서 “축구는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브라질의 ‘조가 보니토(아름다운 경기)’,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 스페인의 ‘패스게임’처럼 미국만의 문화를 축구에서 스타일로 구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뉴욕타임스는 “미국은 스타일이 아니라 본질(승리)을 선호한다”며 “그냥 이겨”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멋진 외모가 열정과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선수를 그만둔 뒤에도 하루 2시간씩의 체력단련으로 47세의 나이가 무색한 몸매를 갖고 있다. 그의 카리스마가 미국 대표팀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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