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핫 피플]최악과 최선 넘나든 빈라덴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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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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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2일 미군에게 사살된 국제적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은 서방세계와 이슬람세계에서 상반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한쪽에선 무고한 인명을 대량 살상한 테러범이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슬람교를 통해 외세의 영향력을 몰아내려는 수호자이기도 했다. 이런 모순은 양 진영에서 쓰이는 암호명이나 가명처럼 빈라덴을 달리 부르는 이름에서도 잘 드러난다.

○ 제로니모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이번 작전에서 서부시대 원주민 아파치족의 추장 제로니모를 빈라덴의 암호명으로 사용했다. 빈라덴을 제로니모라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 9·11테러 직후 CIA 관계자는 “빈라덴은 미국의 서부라고 봐도 무방한 아프가니스탄 북부 황량한 산악지역 어딘가에서 미군의 추적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21세기의 제로니모”라고 말했다. 제로니모는 19세기 후반 뉴멕시코 산악지역에서 그를 쫓는 미 기병대 수천 명을 조롱하며 피해 다녔다. 하지만 빈라덴과는 달리 그는 말년에 기독교로 개종했다.

○ 엘비스

CIA가 팝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름을 따서 빈라덴에게 붙인 별명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77년 숨졌지만 그가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으며 심지어 그를 봤다는 주장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나온다. 마찬가지로 2001년 이후 잠적한 빈라덴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는데 그를 목격했다는 소문만 무성했기 때문에 CIA가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예 ‘빈라덴은 이미 죽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우리나라라면 1990년대 후반 희대의 탈주범이었던 ‘신창원’이라고 별명을 붙이지 않았을까.

○ 북극성

전직 CIA 간부가 빈라덴을 지칭했던 단어다. 길 잃은 길손이 방향을 다시 가늠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북극성처럼, 빈라덴은 세계의 테러집단에 미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빈라덴이 만든 알카에다는 지구 전역에서 활동하던 이질적인 과격 이슬람 단체를 한데 아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서방세계에서 빈라덴을 칭하는 이름들은 다소 부정적인 느낌을 담고 있으며 인물을 희화화한다는 인상을 준다. 반면 이슬람권에서 빈라덴의 별칭은 완연히 다른 의미다. 주로 이슬람 전사(戰士)와 현자(賢者)의 뉘앙스를 지닌다. 말하자면 문무(文武)를 겸비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 이미르(Emir)

이슬람 세계에서 장군, 혹은 군주(prince)를 뜻한다. 빈라덴은 이슬람 세계를 이슬람교 아래 통합하려는 극단적인 꿈을 갖고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를 이슬람 제국의 휘하에 두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 제국의 군주는 바로 자신이라는 꿈 또한 있었을 것이다.

○ 무자히드(Mujahid)

성전(聖戰·지하드)을 치르는 이슬람교도라는 뜻이다. 빈라덴은 1979년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이에 맞서 싸우는 무자헤딘(이슬람 무장전사 단체)에 가담해 싸웠다. 비록 총격전은 한 차례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의 테러 행위가 성전으로 치부된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 샤이크(Shaykh)

아랍어로 원로(元老)라는 뜻이다. 존경받는 현자를 공경의 뜻으로 칭하는 말이다. 빈라덴은 중학교 시절 이집트에서 축출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 온 이슬람 근본주의자 교사에게서 극단적 이슬람주의를 배웠다. 그의 강경하고 과격한 외세 배격 태도가 일부 이슬람 세계에서는 현명함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 하지(Hajj)


이슬람교도 가운데 성지 메카를 순례한 사람에게 주는 칭호. 성지 순례 자체를 하지라고도 한다. 꾸란(코란)을 암송하는 등 장기간의 고난이 따르는 순례이기 때문에 하지를 완수한 사람은 고향에 돌아가서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신실한 이슬람교도라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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