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연의 맛있는 유럽]<7>이탈리아 시골식당 ‘일구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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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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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가정식 그리워 다시 찾았건만…

이탈리아 맛집들은 엄마 손 맛을 내세워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피렌체에서 아르노 강을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레스토랑 ‘일구치오’에서 맛본 가정식 요리는 아직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김보연 씨 제공
이탈리아 맛집들은 엄마 손 맛을 내세워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피렌체에서 아르노 강을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레스토랑 ‘일구치오’에서 맛본 가정식 요리는 아직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김보연 씨 제공
유럽의 맛집들을 돌아다니다 그 주인들과 안면을 트면서 슬금슬금 그 주방을 기웃거렸다. 아니 대놓고 보여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꽤 많은 주방을 엿보게 됐다. 그런데 이탈리아, 특히 지방의 경우 그 색깔이 확실했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 많다는 점이다. 수십 명이 움직이는 고급 레스토랑은 예외이지만 그 외의 곳들에서는 많이들 이러했다. 특히 시골로 갈수록 더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노모가 전쟁터 같은 주방을 이끌어나가고, 말쑥한 아들들이 날렵한 뒤태를 뽐내며 홀에서 주문을 받는다. 빤질빤질한 아들 얼굴과 깊게 주름진 노모 얼굴이 어찌나 대조적인지, 노동력 착취(!)가 떠오를 때도 있었다. 우리네 시골의 ‘○○할머니 밥집’과 어찌도 이리 비슷할꼬. 어쨌든 그런 곳들은 최소한 중간 이상의 맛을 보장했다.

피렌체에서 아르노 강을 넘어 ‘일구치오’란 레스토랑을 지나게 됐다. 원래 저녁에만 운영하는 곳으로 알았는데, 낮에도 문을 연 것이 아닌가. 꼬장꼬장한 할머니 한 분이 주방을 드나드는 모습이 보였다. 어둑한 실내로 들어갔는데 예상외로 썰렁한 실내에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다시 나가긴 이미 힘들어 별 기대 없이 종이 한 장짜리 간이 메뉴판에서 토마토와 계란을 볶은 간단한 이탈리아 가정식 요리를 주문했다.

서둘러 먹고 일어나자고 다짐하며 한 숟가락을 떠 입에 넣었는데 그 맛은 마약을 탄 듯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마치 유럽 한복판에서 울 엄마표 음식을 먹은 기분이었다. 평범한 재료로 만든 볼품없는 음식이지만 표현하지 못할 울림이 있었다. 그 단순한 음식은 유럽에서 먹은 수백 가지 화려한 음식 중 가장 잊히지 않는다.

나중에 일구치오를 다시 가서 50유로도 넘는 저녁을 먹었는데 여전히 맛이 있었지만 왠지 그 맛이 아니었다. 주인에게 물으니 전문 요리사를 두고 더는 점심 영업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할머니 손맛이 어찌나 아쉽던지. 역시 어느 나라나 가정식 요리의 최고봉은 솜씨 좋은 엄마들인가 보다. 이탈리아 시골에서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먹었을 때 왠지 가슴이 뜨뜻해지며 엄마 밥이 생각나는 것은 다 그런 이유 때문일 테지.

김보연 푸드칼럼니스트 ‘유럽맛보기’ 저자 pvir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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