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연의 맛있는 유럽]<5>로마 ‘이노첸티’ 과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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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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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생과자 가게 빼닮은 100년된 그 집

로마의 유명 과자점 ‘이노첸티’. 알록달록 과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잔뜩 고인다. 김보연 씨 제공
로마의 유명 과자점 ‘이노첸티’. 알록달록 과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잔뜩 고인다. 김보연 씨 제공
어릴 적 나를 홀렸던 생과자점이 생각난다. 혹시 그곳에 갈까 엄마가 시장에 갈 때면 항상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운 좋게 그 과자점에 들르는 날이면 생일이 따로 없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골라야 집에 돌아가서 후회하지 않을까. 뾰로통한 입 모양처럼 앙증맞은 상투과자, 따각따각 경쾌하게 씹히는 부채과자, 알록달록 삼색 젤리, 모두 먹어보고, 쓸어 담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항상 아쉬웠던 곳. 이제는 아련한 옛 추억이다.

처음 이곳을 발견할 때도 그랬다. 초등학교 때 쓰던 상처투성이 철 필통을 우연히 어느 구석에서 다시 발견한 것처럼 반가웠던 것이다. 로마시내에서 테레베 강을 지나면 나오는 ‘트라스테베레’ 구역은 이름난 유적지가 많지 않아 관광객들에게는 유명하지 않다. 하지만 로마 서민들의 오래된 주거구역이자 맛집이 모여 있는 재미난 동네다.

떠들썩한 먹자골목을 지나 이곳을 찾아 조용한 주택가로 들어왔다. 가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골목길을 따라갔다. 길을 잘못 든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한 순간 간판도 없는 투명한 유리문 앞에서 멈춰버렸다. 자석 모양의 초코과자, 뾰로통한 삿갓과자, 도톰한 설탕과자. 수십 가지의 알록달록, 올록볼록한 과자들. 간판도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내가 찾던 로마의 100년 된 과자점 ‘이노첸티’였다.

어쩜 그 시장통 생과자점과 이리 비슷할까. 가슴이 두근두근 설다. 은빛의 커다란 기계와 달콤한 설탕냄새에 벌써 침이 고였다. 230m²가 넘는 공간에서 하얀 모자를 쓴 아주머니가 바삐 움직이고 있다. 모두 다 먹어보고 싶다는 어렸을 적 욕심은 그대로였지만 어른스럽게 자제력을 발휘했다. 아주머니의 추천을 듣기로 했다. 그는 ‘맛있지만 못생긴’이라는 뜻의 ‘브루티 마 부오니 쿠키’를 가리켰다. 또한 이것저것 모두 담아가라고 했다. 저 예쁜 과자들의 이름은 다 무엇

일까 싶어 물어보니 그냥 ‘모둠 과자’란다. 1kg에 11유로(약 1만7000원)니 원하는 것을 모두 고르라고 한다. ‘무명’ 생과자들의 이름 없는 설움은 로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송한 하트모양 초코과자, 삿갓모양 과자, 모두 담아 종이봉지에 넣어 가슴팍에 안고 나왔다.

뿌듯한 마음에 가방 지퍼를 채우는 것도 잊고 과자를 입에 물었다.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달달하면서 투박한 맛. 맞다. 어릴 적 생과자도 이런 맛이었다.

푸드칼럼니스트 ‘유럽맛보기’ 저자

pvir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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