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연의 맛있는 유럽]<1>이탈리아 모데나 ‘지우스티’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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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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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 문 연 세계 최초 식료품점
파스타+닭무침 맛, 으스스한 분위기와 어울려

레스토랑 ‘지우스티’와 함께 있는 생햄 전문점 ‘살루메리아’ 내부. 위쪽으로 걸려있는 것은 ‘프로슈터-돼지 뒷다리 생햄을 뜻한다’ 김보연 씨 제공
레스토랑 ‘지우스티’와 함께 있는 생햄 전문점 ‘살루메리아’ 내부. 위쪽으로 걸려있는 것은 ‘프로슈터-돼지 뒷다리 생햄을 뜻한다’ 김보연 씨 제공
‘100년 역사’ 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밀 유럽이지만 ‘400년 역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탈리아 중부의 소도시 모데나에는 ‘세계 최초의 식료품점’으로 기록된 400년 역사의 ‘지우스티’라는 가게가 있다. 소금에 절여 숙성한 돼지 생햄을 기본으로 각종 식료품을 파는 이런 곳을 이탈리아에서는 살루메리아 라고 부른다. 1605년 문을 연 이곳은 여전히 영업을 하며 그 옆에는 작은 레스토랑이 있다.

처음 이곳을 찾아갈 때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워낙 조그만 동네라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지도를 보며 찾는데 좁고 컴컴한 골목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혹시나 싶으면 냅다 도망칠 요량으로 맘 졸이며 들어섰는데 점점 더 컴컴해 졌다. 돌아갈까 하던 찰나 골목 끝 집 문이 빼꼼 열려 있었다. 바로 그곳이었다.

‘지우스티’의 발사믹식초 조림양파를 곁들인 닭고기무침 요리. 김보연 씨 제공
‘지우스티’의 발사믹식초 조림양파를 곁들인 닭고기무침 요리. 김보연 씨 제공
단 4개의 테이블로 운영하는 조그만 곳이지만 이 레스토랑은 ‘미슐랭 1스타’를 받기도 한 명성 있는 곳이다. 하긴 400년 전통의 식료품점을 하는 곳이니. 일주일에 단 5일만, 그것도 점심에만 문을 여는 배짱(?) 좋은 곳이기도 하다.

메뉴는 의외로 단순했다. 발사믹식초, 탈리아텔레(이탈리아 파스타의 일종) 같은 이 지방 식재료들로 만든 기교부리지 않은 음식들이었다. 구안치알레(돼지볼살햄)가 들어간 라구소스 파스타와 발사믹식초 조림양파를 곁들인 닭고기무침을 주문했다. 생면이 틀림없는 탱탱한 탈리아텔레 면발은 유달리 쫄깃한 구안치알레와 잘 어울렸다. 이어 나오는 닭요리는 할머니가 토종닭 백숙을 손으로 찢어주던 그 맛과 비슷했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은근히 당기는 맛이랄까.


식사를 마치고선 식료품점에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천장에 커튼처럼 돼지 뒷다리가 드리워져 있고 직접 반죽해 만든 신선한 파스타도 볼 수 있었다. 불과 두 시간 전 부들부들 떨고 들어오던 골목을 이제는 당당히 걸어나갔다. 그리고 한참 후 나는 알게 됐다. 지우스티는 왜 하필 이런 음산한 곳에 있었는지를.

‘가축도살장!’

지금은 없어졌지만, 지우스티는 예전의 도살장 사이에 있었다. 어두컴컴한 골목의 양쪽 높은 벽은 사실 두 도살장의 경계였다. 이탈리아에서는 큰 도살장 옆에 이런 살루메리아가 있었다. 도살된 돼지고기를 바로 절여 햄으로 만들어 팔았던 것이다. 로마를 대표하는 테스타치오 시장 옆의 유명한 살루메리아 ‘볼페티’처럼 도살장 옆 살루메리아도 더할 나위 없는 조합이었다.

푸드칼럼니스트, ‘유럽맛보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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