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훈의 클래식 패션 산책]<10·끝>이탈리아, 남성패션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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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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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패션은 과거도 현재도 단연 파리지만 남성복의 뿌리는 런던의 유서 깊은 맞춤복 거리인 새빌 로에 있다. 자유분방한 프랑스보단 전통과 공리를 중시하는 영국 귀족들의 정신이 투영된 정장과 스포츠 의류로부터 현대 패션의 기틀이 형성됐다.

하지만 항상 올곧은 원칙, 규정을 고집하는 영국인들에 비해 예술에 대한 탁월한 유산을 상속받고 일상적으로 패션을 즐기며 이성에게 관심이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오히려 영국에서 태동한 남성복의 자산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능수능란하게 풀어냈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영국을 넘어서는 남성복의 새로운 본류로서 전 세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물론 이탈리아는 중의적이다. 모든 국가의 역사 서적에 등장하는 로마제국의 역사를 상속받았으면서도, 현대에는 부패와 음모가 가득한 정치로 국가적 자산을 소모한다. 문화적 자부심이 남달랐던 도시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의 기운은 여전히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지는 수제 슈트에서 느껴진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가는 전 세계 관광객들 사이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당부가 생략되지 않을 만큼 ‘유럽 속의 중국’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전 세계 남성 패션에 기여한 업적은 남성의 옷차림이 클래식하면서도 동시에 섹시할 수 있다는 것을 일반 시민들이 직접 보여준 일이다. 잡지나 영화에 등장하는 멋진 배우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몸에 잘 맞는 블레이저에 다양한 색상의 면바지를 입고 다닐 뿐인데 그 스타일은 정말 예술적이다.

거리의 경찰들도 멋지고, 원숙한 나이의 노신사도 아름다운데 중요한 건 그 모습들이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피렌체와 로마, 밀라노와 베네치아든 이탈리아에는 각 도시의 역사만큼 다양하게 분화된 옷과 철학이 퍼져 있으며, 그것을 굳건하게 뒷받침하는 장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장인들은 모두 자신의 슈트나 구두가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제품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다양한 옷을 만들어내는 장인들과 그것을 즐기면서 입는 사람들의 드높은 자부심이 이탈리아를 남성복의 세계 최강대국으로 밀어 올린 힘이다.

우리가 그들을 따라할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이 입을 옷도 남이 골라주는 대로 입는 한국 남성들에게 오늘날 이탈리아인들이 주는 교훈은 이런 것이다. 남자의 스타일이란 본인이 직접 입어보고 그 용도를 생각하고 때로 실패하고 다시 교훈을 찾는 경험을 통해서만 진보한다는 심플한 역사.

남훈 제일모직 란스미어팀장

※ 남훈의 ‘클래식 패션 산책’은 이번 주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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