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 교수의 패션 에세이]<19>용 문양에 담긴 벽사기복의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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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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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문양을 티셔츠에 옮긴 ‘존 리치몬드’의 2012년 봄여름 컬렉션. PFIN 퍼스트뷰코리아 제공
용 문양을 티셔츠에 옮긴 ‘존 리치몬드’의 2012년 봄여름 컬렉션. PFIN 퍼스트뷰코리아 제공
새해를 맞을 때마다 우리 선조들은 벽사기복((벽,피)邪祈福)의 염원을 빌었다. 벽사기복이란 사악함을 물리치고 복을 받을 것을 기원한다는 뜻이다.

벽사기복의 의미는 우리 선조들이 복식에 사용한 색깔에도 드러난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음양오행사상의 우주관에 근거해 오정색(五正色)과 오간색(五間色)을 기본으로 색을 사용했다.

남방에 적, 동방에 청, 중앙에 황, 북방에 흑, 서방에 백을 이룬다는 오방색은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개념으로 역시 벽사기복의 뜻을 담아 옷에 사용됐다. 또 문양으로는 동식물 같은 자연물, 글자 또는 도형, 상상속 동물 등의 다양한 형태가 옷 디자인에 담겼다. 역시 애틋한 기원의 뜻을 녹여낸 것이다. 예컨대 도끼 문양은 ‘액을 찍어낸다’는 벽사의 의미였고 물소뿔 모양의 문양은 복과 장수를 기원한다는 뜻이었다.

공직의 신하들은 공작 호랑이 곰 같은 좀 더 기품 있고 위엄 있는 실존 동물들을 문양으로 사용해 계급을 드러냈다. 특히 상상속 동물인 용은 오로지 왕만, 봉황은 왕비만 문양으로 쓸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상의 권위와 능력을 가진 존재였다. 그래서 용 문양이 왕궁의 처마며 현판에 자리했고 귀한 도자기의 안과 밖을 장식했던 것이다.

음력설도 지나 공식적으로 용의 해를 맞게 된 시점에서 잠시 우리나라 의복 역사 속 용의 의미를 살펴봤다. 하지만 용 문양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문화권에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사실 용은 일찌감치 동서양을 잇는 아름다움의 매개체였다.

1930년대 프랑스 고급 보석 브랜드 카르티에는 당시 서양문명의 집약체인 시계에 용 문양을 새겨 넣었다. 또 에르메스는 붉은 용을 은유화한 문양의 식기세트를 여전히 선보이고 있다. 1970년대에 활동했던 패션디자이너 이브 생로랑도 용의 비늘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이브닝드레스를 선보였다. 디자이너가 은퇴한 후 이 브랜드의 디렉터를 맡은 톰포드가 중국의 만다린 드레스를 재현한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올 들어 용 문양이 그려진 티셔츠 한 장이라도 자연스레 구입하게 됐다면 그건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다. 이는 내심 벽사기복을 바라는 우리의 소망이 자연스럽게 반영됐을 뿐 아니라 용 문양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우리의 본능적 심미안이 발현됐기 때문일 것이다.

패션디자이너·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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