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폴로스틱 든 흙인형-고분 조각 격구가 서역서 왔음을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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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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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투루판에서 출토된 흙인형(7∼10세기)과 경북 경주의 통일신라 고분 모서리기둥의 서역인 조각(9세기).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중국 투루판에서 출토된 흙인형(7∼10세기)과 경북 경주의 통일신라 고분 모서리기둥의 서역인 조각(9세기).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8세기 초 실크로드를 걸었던 신라의 젊은 승려 혜초. 세계문명전 ‘실크로드와 둔황’은 혜초가 여행했던 길을 따라 파미르 고원 동쪽의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꾸몄다.

전시 유물 가운데 두 건의 조각 유물을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중국 신장위구르지역의 투루판에서 출토된 흙인형(7∼10세기)과 경북 경주시 구정동고분의 모서리 기둥 조각(통일신라 9세기경). 흙인형을 보니 말을 탄 남자가 방망이를 쥐고 힘차게 공을 치려 하고 있다. 모서리 기둥엔 방망이를 어깨에 걸친 무인(武人) 한 명이 조각되어 있다. 신라땅의 무덤을 지키는 이 사람은 서역인이다. 그가 들고 있는 방망이는 끝이 살짝 휘어졌다.

이들이 들고 있는 건 폴로 스틱이다. 폴로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격구(擊毬)다. 두 유물 모두 주인공의 동적인 자세가 인상적이다. 흙인형은 말 탄 서역인의 팔놀림과 말의 움직임이 역동적이고 경주 땅의 서역인은 한쪽 다리를 약간 들고 동적(動的)인 포즈를 취했다.

두 유물은 격구가 서역에서 전파되어 왔음을 암시한다.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유행했던 격구는 실크로드와 중국 당(唐)을 거쳐 통일신라 당시 한반도에 상륙했다. 서역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던 투루판 아스타나고분에선 격구를 즐기는 귀족 조각상이 다수 발굴됐다. 이 흙인형도 그 가운데 하나다. 중국 장안(지금의 시안)의 장회태자묘(당 고종의 둘째 아들 이현의 묘) 벽화에도 격구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당나라 때 장안에서는 여성들까지도 말을 타고 격구를 즐겼다. 당나라 왕족과 티베트 선수 사이에 국제 경기가 열렸을 정도였다.

이런 격구 열풍이 신라땅에 상륙한 것이다. 무덤을 지키는 조각상에 격구 방망이가 등장하는 것을 보니 당시 신라인들은 외국에서 들어온 신종 스포츠에 열광했음이 틀림없다. 물론 그 향유층은 아무래도 상류층이었을 것이다. 격구는 경주를 거쳐 일본으로 넘어갔다. 일본에서도 격구 장면을 그린 그림이 적잖이 전해온다.

서아시아에서 출발해 실크로드와 중원을 거쳐 한반도를 지나 일본 열도까지, 당시 격구의 위세는 대단했다.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던 격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 가면 1000여 년 전 실크로드에 불었던 격구의 열풍을 만날 수 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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