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천축을 넘어 페르시아-아랍까지… 실크로드 걷는 혜초의 설렘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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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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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여 년 전 봇짐 하나 메고 실크로드를 따라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던 서역인의 모습을 표현한 인형(왼쪽 사진)과 서역길을 개척한 장건의 여행길을 상징화한 서역 출사도(모사).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1300여 년 전 봇짐 하나 메고 실크로드를 따라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던 서역인의 모습을 표현한 인형(왼쪽 사진)과 서역길을 개척한 장건의 여행길을 상징화한 서역 출사도(모사).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맨발에 알몸이다. 외도(外道)는 옷을 입지 않는다….’ 남아있는 왕오천축국전 앞부분에 적힌 기록이다. 혜초는 폐사리국(바이샬리)에서 무소유의 이념으로 알몸으로 다니는 천의파(天衣派)를 만난 뒤 이렇게 적었다.

스승 금강지의 권유로 천축에 온 혜초는 먼저 동천축에 있는 불교 성지부터 찾았다. 부처의 열반지인 구시나국(쿠시나가라)에서는 황폐해진 성과 탑을 청소하는 선사의 모습을 담았고, 마게타국(마가다)의 4대 영탑인 마하보리사에선 기쁨을 표현한 오언시를 읊기도 했다.

중천축과 남천축, 서천축과 북천축을 순례하면서 ‘토지(기후)가 대단히 따뜻해 온갖 풀이 늘 푸르청청하며 서리나 눈은 내리지 않는다. 먹는 것은 멥쌀과 미숫가루, 빵, 유지방 식품, 젖, 치즈다. 장(醬)은 없고 소금은 있다’고 기후와 음식의 특색을 기록했다. 혜초의 눈에 비친 천축은 불교를 잘 믿는 곳이었다. ‘왕과 수령, 백성들이 삼보를 공경하여 절도 많고 승려도 많다’는 기록이 곳곳에 나온다.

혜초는 천축에서 여정을 끝내지 않았다. ‘순전히 얼어붙은 산’으로 이뤄진 토번국(티베트)과 ‘옷은 가죽 외투와 모직 웃옷, 가죽신, 바지를 입는’ 건타라국(간다라)을 지나 파사국(페르시아)으로 들어갔다.

‘여기 사람들은 교역을 좋아해 늘 서해에서 배를 타고 남해로 들어간다.’ 혜초가 볼 때 파사국은 사자국(스리랑카)과 당나라 광저우에서도 비단, 면 등을 수입하는 국제도시였다. 당시 파사국을 지배하던 대식국(아랍)도 들렀다. 중국인의 이슬람 제국 첫 견문기인 ‘경행기’에 아랍이 ‘대식’으로 언급된 것은 50년 뒤 일로, 혜초는 아랍을 처음으로 ‘대식’이라고 명명한 사람이었다.

혜초가 천축과 페르시아, 아랍을 방문하며 수없이 만났을 서역인들. 그들 역시 봇짐을 지고 세계 곳곳을 방문했다. ‘실크로드와 둔황’ 전시가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는 흙으로 빚은 서역인 인형이 있다. 짙은 눈썹과 깊은 눈, 높은 콧대와 웃음을 머금은 입, 턱에서 귀까지 수염이 수북하게 난 게 영락없는 서역인이다. 한 손에는 물통을 들고 한 손으로는 행낭을 추켜올리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인형의 모습에서 혜초가 느꼈을 고단함과 설렘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한나라 여행가로 서역으로의 길을 개척한 장건의 서역 출사 모습을 그린 ‘장건의 서역 출사도’(모사)도 눈길을 끈다. 오른쪽 윗부분에 한나라 무제가 부처에게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아랫부분에는 무제가 장건을 배웅하는 모습이 있고 왼쪽 윗부분에 장건이 서역의 성을 향해 하염없이 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혜초와 장건 모두 낯선 땅을 향해 모험을 감수한 셈이다. 관람객의 전시 설명을 돕는 한균옥 자원봉사자는 “혜초나 당대 여행객들이 혼자 다니지 않고 낙타나 말을 타고 무리지어 다니는 대상(隊商)들과 함께 다녔을 것이라고 설명한다”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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