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만화]<8>웹툰 ‘… 질풍기획!’ 연재 이현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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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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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 배꼽 잡는 에피소드 광고사 8년근무 경험 녹였죠”

웹툰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으로 인기 몰이 중인 이현민 작가는 “많은 사람의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는 편안한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웹툰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으로 인기 몰이 중인 이현민 작가는 “많은 사람의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는 편안한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때문에 모처럼 새벽같이 일어난 날, 깜빡 다시 잠이 들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빠듯한 출근시간 버스 정류장에 운 좋게 일등으로 줄을 섰는데 만원 버스는 정류장에 100m도 못 미쳐 정차하고, 전력질주를 해보지만 결국 버스를 놓친다. 회의시간에 간신히 맞춰 도착한 회의장,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USB를 꽂는데 대형 스크린엔 뜻밖의 메시지가 뜬다. ‘파일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한 번쯤 겪어 봤을 법한 이 ‘대략난감’한 상황들은 웹툰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평범한 광고회사의 기획3팀인 ‘질풍기획팀’의 일상을 익살맞게 그려내는 이현민 작가(31)는 9년차 광고제작사 직원‘이었’다. 기자와 만난 6일 마침 회사를 그만두고 짐을 싸서 나오는 참이었다. “회사에서 일도 하고 만화도 그렸는데, 오늘 짐 싸고 나와 지금은 작업장이 없네요.” 코까지 내려온 안경 뒤로 겸연쩍게 웃는 동안의 작가. 질풍기획팀의 익살스럽지만 소심한 박 차장이 웹툰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이 작가는 네이버의 ‘도전! 만화가’로 지난해 9월 데뷔해 11월부터 만화를 연재한 신예다. 마감이 무서워 12회 치를 미리 그려놓는 ‘범생이’이며 한국콘텐츠진흥회의 ‘만화캐릭터매니지먼트 원고료 지원’에 데뷔한 지 한 달 만에 당선된 실력파다. 웹툰을 연재한 지 5개월 남짓밖에 안 됐지만 팬클럽 회원은 1600명을 넘어섰다.

웹툰 ‘질풍기획’이 인기를 끄는 것은 8년간의 직장생활에서 우러나는 에피소드가 이야기를 탄탄하게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저는 질풍기획 같은 광고 기획사가 아니라 제작사에 다녔거든요. 기획사가 갑이라면 제작사는 늘 을이었죠.”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악랄한 송 대리에게 복수하고자 믹스커피에 티도 안 나게 ‘당뇨나 걸려라’ 하며 설탕 반 스푼을 넣곤 쾌재를 부르는 소심한 병철 역시 작가 본인의 모습이었다. 상사의 의자에 압핀 하나를 몰래 놓고 소심하게 방석 세 개를 덮어놓으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병철의 캐릭터에 많은 직장인이 공감한다. “회사원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많이 보내주세요. 제 만화를 읽고 배꼽 빠진다고요. 다들 상사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봐요.”

‘질풍기획’에는 한바탕 웃고 넘기면 그만인 코믹한 요소만 있는 건 아니다. “조금 촌스럽지만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정의, 낭만 같은 이야기들이에요. 손 대리는 사람들을 구해주고 다니면서도 만날 욕만 먹죠. 어찌 보면 바보 같지만 이런 사람이 꼭 사회에 필요하단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정의와 낭만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듯하다가는 곧바로 어디선가 주인공을 향해 드롭킥이 날아오며 웃음이 빵 터진다.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질풍기획’의 매력이다.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해 달라고 주문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입만 웃고 눈은 그대로인 만화 속 박 차장의 어색한 미소가 나왔다. 선배 만화가 강풀을 가장 좋아한다며 그의 ‘편안함의 저력’을 닮고 싶다고 했지만 사진 속 이 작가의 표정은 편안하지 않아 사진기자의 속을 태웠다. 결국 아기 돌사진을 찍을 때처럼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서야 촬영을 마쳤다.

앞으로 ‘질풍기획’은 어떻게 될까. 이 작가는 박 차장의 러브라인이 곧 등장한다고 귀띔했다. “출근할 때 겪는 에피소드나 야유회에서 벌어질 법한 사건처럼 절반은 모든 직장인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그릴 겁니다. 나머지 절반은 광고대행사만이 겪을 수 있는 이야기로 채울 생각이에요.” ‘질풍기획’은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다. 언제 어떻게 끝날지도 미정이다. “모든 직장인이 웃을 때까지 질풍기획을 해봐야죠.” 그 만화에 그 만화가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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