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만화]<5>포털 연재 ‘지킬박사는 하이드씨’ 이충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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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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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통해 소통 갈증 시원하게 풀지요”

《“저 지 작가한테 관심 없어요! 그리고 저 쉬운 여자 아니에요!” 출판사 ‘마녀도서관’에 다니는 한그루 부장은 지난달 25일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름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듯 한 부장은 만화 주인공이다. 마녀도서관 역시 만화 속 출판사다. 그러나 한그루의 트위터는 실제 계정(@hangeuru)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 속 캐릭터에게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런 재미있는 발상을 한 사람은 이충호 작가(44). ‘마이 러브’ ‘까꿍’ ‘무림수사대’ ‘이스크라’ 등으로 폭넓은 고정 팬을 갖고 있는 만화가다. 한창 트위터에 맛을 들인 그는 지난달 22일 새 웹툰 ‘지킬박사는 하이드씨’를 다음에 연재하면서 한그루 트위터를 만들었다. 가상의 만화 속 주인공의 트위터를 독자들이 직접 찾아 팔로하는 데서 이 작가의 인기를 엿볼 수 있다.》

‘마이러브’ 주인공 캐릭터
‘마이러브’ 주인공 캐릭터
이번 작품은 한그루가 ‘하이두’라는 인격을 동시에 지닌 작가 ‘지길’과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중인격자와의 삼각관계’라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힘겨운 선택을 하는 인물의 모습을 통해 웃음과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이 작가는 “그루는 세상이 정해 놓은 규칙이 아니라 자기만의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이야기가 본격 진행되지 않은 연재 초반인데도 반응은 뜨겁다. ‘마이 러브’와 ‘까꿍’으로 국내 만화 시장에서 드물게 100만 부 이상의 단행본 판매를 기록했던 이 작가의 명성을 확인시켜준다.

이 작가는 오프라인에 이어 온라인에서도 성공을 거둔 드문 케이스로 늘 거론돼 왔다. 2001년 만화잡지 기가스에 연재했던 ‘블라인드 피쉬’를 끝으로 이 작가의 작품은 잡지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2005년부터 소설가 황석영 씨의 원작을 만화로 옮긴 ‘황석영 이충호 만화 삼국지’를 집필하며 창작 만화와는 멀어진 것 아니냐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웹툰으로 무대를 옮겨 2007년 ‘무림수사대’, 2009년 ‘이스크라’를 내놓으면서 건재를 알렸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특유의 이야기와 그림 솜씨는 웹툰의 형식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글과 그림의 디테일은 컷마다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무협 만화 ‘무림수사대’는 2010년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 만화부문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이 작가는 “‘무림수사대’ 연재를 시작하자 학습만화를 그리다 순수 창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벽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그림 잘 그리네, 이 신인 작가 누구야’라는 말도 했다. 그래서 무엇이든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을 더 가졌다”고 말했다.

이충호 작가에게 높은 인기를 안겨줬던 ‘까꿍’은 1부 13권으로 연재가 중단된 상태다. 그는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 사정이 겹쳐 작품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는데 반드시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이충호 작가에게 높은 인기를 안겨줬던 ‘까꿍’은 1부 13권으로 연재가 중단된 상태다. 그는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 사정이 겹쳐 작품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는데 반드시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출판 만화 작가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던 그가 ‘무림수사대’를 시작으로 웹툰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가 가지는 가장 큰 욕망은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출판 만화 시장이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했고 작품을 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웹툰은 가장 격렬하게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잖아요. 이제는 소통에 대한 갈증이 도가 지나칠 정도로 해소됐습니다.(웃음)”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애니메이션이나 판타지 영화의 장면이 저절로 떠오른다. 만화계 일부에서 만화가 영화나 드라마의 하위 콘텐츠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불만 섞인 소리가 나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한발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결국 만화가들이 이야기의 원천 소스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괜찮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테니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 보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을 다 섭렵한 작가답게 만화 산업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그는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예전에는 원고료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단행본을 통해 어느 정도 수입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만화가들이 너무 가난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만화 속 정제된 대사를 보는 것처럼 매번 똑 떨어졌다. 인터뷰에서 빠질 수 없는 질문 하나. ‘이충호에게 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예전에는 나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체 게바라 평전’을 읽으며 나도 만화를 통해 세상에 무엇인가를 던져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나이를 먹으며 연륜도 쌓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바뀐 만큼, 이제는 내 만화가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작은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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