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관하여’ 20선]<10>법과 소통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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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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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과 소통의 정치/최진홍 지음/이학사

《“인심이 함께 옳다 하는 것을 공론(公論)이라 하며, 공론의 소재를 국시(國是)라 합니다. 국시란 한 나라의 사람이 의논하지 아니하고도 함께 옳다 하는 것이니 이익으로 유혹하는 것도 아니며, 위엄으로 무섭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삼척동자도 그 옳은 것을 아는 것이 곧 국시입니다.”(율곡이 대사간 직을 사양하며 선조에게 올린 상소 중)》

공론이 왜곡되면 소통이 안된다

성리학자 율곡 이이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가 정치가로서 율곡이 지닌 사상을 들여다봤다. 율곡의 이기론과 심성론 모두 자신의 위정관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이지 율곡이 애초 철학 이론을 체계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게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책은 율곡이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를 재해석하고 그가 올린 상소문, 17년 동안의 정치사를 담은 경연일기(經筵日記), 편지 등을 다뤘다.

정치가 율곡의 올바른 정치에 대한 고민은 ‘현실 정치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서 시작했다. 율곡은 국가 기강이 약화된 원인으로 잘못된 정치적 유산인 유폐(遺弊)를 지목했다. 앞 시대의 권관들이 남긴 채 사라지지 않은 폐법(弊法)이 민생(民生)을 처참하게 만들고, 폐법의 개혁을 폐정(弊政)이 막는다고 본 것이다.

폐정의 원인은 소통의 단절에 있었다. 율곡에게 정치는 곧 소통이었다. 폐정의 첫째는 잘못된 인사 문제였다. 백성들이 현실을 정치의 장에 전달하고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데, 매개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율곡은 능력 있는 자와 덕을 가진 자를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정은 왜곡된 공론 문제에서도 기인한다고 봤다. 율곡은 공론 정치에서 결론에 가까운 ‘논(論)’만 있지 여럿이 함께 의견을 조율하는 ‘의(議)’가 없다고 한탄했다.

율곡은 먼저 나라의 근본인 군주의 수신(修身)을 강조했다. 군주가 소통에 적극적이어야 백성과 나라가 안정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흥성했던 시기로 돌려놓겠다는 뜻을 세우고, 학문을 통해 뜻을 강하게 하고, 공정한 도량을 넓히고, 현명한 선비들로부터 훌륭한 조언을 받고, 신하가 임금께 말을 아뢸 때 시간에 구애되지 말고 직접 아뢰게 하시라”는 내용이 담긴 상소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선조에게 올리기도 했다.

수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안민(安民)이었다. 율곡은 법 집행자들이 과거의 폐법을 답습하고 백성을 약탈하는 점을 꼬집었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세운 선조들의 뜻은 그대로 받들되 경직된 법에서 벗어나 때에 맞춰 백성들의 생활을 돌아봐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율곡은 상소 만언봉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때에 알맞게 한다는 것은 때에 따라 변통을 하고 법을 마련해 백성을 구제하는 것을 말합니다.…대개 법이란 때에 따라 제정하는 것이니, 때가 바뀌면 법도 같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율곡전서’에 실린 상소문은 총 130편으로, 잘못된 법을 고치기 위해 율곡은 개혁안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민생이 생업을 즐기는 게 훌륭한 정치의 모습이라고 본 것이다. 군대의 경우 군 정예화, 고향과 가까운 곳 배치, 지원자에게 대가 제공 등의 안을 내놓았고 백성 수탈 수단으로 악용되던 조세 제도는 지역 조사를 새로 해 거품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바꾸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율곡에게 정치는 ‘정(政)을 행함으로써 치(治)를 이룩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소통’이 핵심이었다. 저자는 “율곡이 현실을 인식하고 행동한 바가 오늘날 정치에도 하나의 지침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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