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세계인의 술로]日수출 시작한 신현길 구암농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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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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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대추가 막걸리에 빠진 날… “어떻게 이런 맛이”

대추막걸리, 일본서 “기분좋게 취한다” 호평
맛의 비밀은 2시간 반 달인 대추액 6% 첨가
정부 - 貿協 도움으로 대량생산 - 수출길 열어

6월의 대추나무들은 연초록색 꽃망울을 피우며 가을 열매 맺을 준비에 한창이었다. 최근 ‘대추 막걸리’를 개발해 일본 첫 수출에 성공한 ‘구암농산’ 신현길 대표의 꿈도 그 꽃망울과 닮았다. 25일 대추 막걸리를 손에 들고 농장을 둘러보던 신 대표가 ‘대추 예찬론’을 펴고 있다. 청송=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6월의 대추나무들은 연초록색 꽃망울을 피우며 가을 열매 맺을 준비에 한창이었다. 최근 ‘대추 막걸리’를 개발해 일본 첫 수출에 성공한 ‘구암농산’ 신현길 대표의 꿈도 그 꽃망울과 닮았다. 25일 대추 막걸리를 손에 들고 농장을 둘러보던 신 대표가 ‘대추 예찬론’을 펴고 있다. 청송=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아, 이거 맛이 참 좋구먼. 무슨 막걸리입니까?” (사공일 한국무역협회 회장)

“경북 청송의 한 대추 농가가 개발한 ‘대추막걸리’입니다. 지난달 우리 협회가 지원해 일본 수출에 성공했는데 감사의 뜻으로 한 상자 보내와 오늘 자리에 내놨습니다.” (무협 수출지원 실무자)

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사공 회장 주재의 오찬간담회에서는 식전주로 나온 대추막걸리가 화제가 됐다. 해외 고급 과실주 못지않은 달콤하고 산뜻한 맛과 은은한 분홍빛이 참석자들의 혀와 눈을 사로잡은 것. 더군다나 유명 주가(酒家)가 아닌 대추 농가에서 만든 술이 일본에까지 수출됐다는 점에서 이 막걸리는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 25일 기자는 호기심을 안고 대추농장이 있다는 청송으로 향했다.

대추막걸리를 탄생시킨 대추 농가 ‘구암농산’은 대구에서 차를 타고 2시간은 족히 달려야 다다르는 청송군 부남면의 깊은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개울물이 흐르고 뒤로는 병풍 같은 산이 감싸는 아름다운 곳. 바로 이곳에서 구암농산 신현길 대표(69)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소개를 받아 농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사방에 끝도 없이 펼쳐진 대추나무 밭이 눈에 들어왔다. 23만 m²(7만 평) 대지에 심어진 대추나무는 2만여 그루. 전국 최대 규모의 대추농장이라고 했다.

신 대표가 이 농장과 연을 맺은 건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경북 구미에서 기계·섬유 공장을 운영하던 그는 우연히 청송을 지나다 이곳의 풍광에 반해 ‘덜컥’ 땅을 샀다. 그리고 당시 지역의 대표 작물이던 대추농사에 나섰다.

“정말 우연이었지예. 기계로 하는 사업만 하던 내가 대추농사를 짓게 될 거라꼬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데 그때 지나가매 본 풍경이 우찌나 좋던지…. 겁도 없이 홀린 것처럼 시작했다 아입니꺼.”

하지만 처음 해보는 농사일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그는 “해가 뜨면 밭에서 살고 해가 지면 대추에 관한 책을 읽으며 농사를 배웠다”며 “그렇게 읽은 대추 관련 책만 100권이 넘는다”고 전했다. 그래도 그만둘 수 없었던 건 가을에 누리는 ‘수확의 기쁨’ 때문이었다.

“대추가 주렁주렁 열리면 그거 따는 즐거움은 그 어떤 재미하고도 비교할 수 없었지요. 요즘 제일 잘 자란 나무 같으면 한 그루에서 100kg 가깝게 대추가 나온다 아입니꺼.”

실제 구암농산에서 수확하는 대추량은 연간 4000∼5000상자(생대추 25kg 기준) 규모. 신 대표는 “이 나무들이 다 새끼손가락보다 가느다랄 때 심었는데 이제는 가로수만 하게 컸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 사이 신 대표도 ‘대추 박사’가 다 됐다. 그는 “대추는 예로부터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아서 나무 중에 최고로 쳤다”며 “청송은 특히 땅과 물이 좋아서 다른 지역 대추보다 40∼100% 이상 당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 대추막걸리 개발

하지만 대추에 대해 알면 알수록 신 대표의 안타까움은 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추의 활용 범위가 너무나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대추가 참 좋은 식품인데 먹는 방식이 너무 취약한 깁니더. 우리는 대추를 식품으로 가공하는 연구를 아무도 안 해서 기껏해야 말려 묵고 달여 묵고 나면 끝인기라. 그런데 일본은 벌써 100년도 전부터 저거들 농산물을 이래저래 가공해서 대추를 조미료로까지 만들어 먹는다꼬.”

벌써 10년도 더 전부터 이 같은 문제에 답답함을 느껴오던 신 대표는 2007년 우연히 청송군 관계자와의 만남에서 그 답을 찾았다.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있으니 대추를 활용한 식품을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것. 신 대표는 경북대 농대와 대구보건대 식품 분야 교수들과 함께 1년여에 걸쳐 대추를 활용한 식품 개발에 고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려 대상 중 하나였던 대추막걸리 개발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2008년 15억 원가량을 투자해 구암농산 안에 막걸리 연구 설비와 하루 2만 병 생산이 가능한 설비를 갖췄다. 투자금의 절반은 정부가 지원했다.

“막걸리를 옛날같이 집에서 만들어 먹는 술로 생각하면 안 됩니더. 막걸리는 살아있는 발효식품이고, 이걸 대량생산해서 수출까지 하려면 맛의 균일화는 필수지예. 그러려면 모든 생산 공정을 철저히 기계로 통제해야 합니데이.”

실제 신 대표의 막걸리 공장은 밥 짓기부터 발효, 혼합, 살균, 포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이 기계로 관리되고 있었다. 특히 발효 단계에서는 작은 차이가 민감한 맛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첨단 센서로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그 덕분에 공장 직원은 5명에 불과하다. 신 대표는 “공장을 짓기 위해 전국에 안 가본 막걸리 공장이 없을 정도”라며 “과거 기계공장을 운영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1년 넘게 제품 연구개발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올 3월 시장에 선보일 대추막걸리가 완성됐다. 100% 국산 쌀과 청송대추로 만들어지는 이 막걸리에는 121도에서 2시간 반가량 달여 뽑아낸 대추 농축액이 6% 들어간다. 신 대표는 “최적의 맛과 향을 내는 이 농도를 찾는 데만 3개월 이상이 걸렸다”며 “관련 기술은 특허도 받았다”고 말했다.

○ 무협과 함께 해외시장 개척

이쯤 되면 맛에는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판로였다.

“대추막걸리 개발에 도전할 때부터 내 꿈은 해외에 이 막걸리를 내놓는 것이었지요. 건강에 좋으면서도 맛 좋은 대추가 들어갔으이 일본 시장에서 인기를 얻을 자신이 있었심더. 또 중국은 남자들이나 마실 독주가 대부분인 만큼 여성들을 공략하면 승산이 있겠다 싶었지예.”

제품 개발 완료를 눈앞에 둔 올해 초 신 대표는 수출 상담을 위해 무협 대구경북지역본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무협이 중소기업 수출 지원을 위해 운영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했다. 신 대표는 “제품 마케팅 컨설팅부터 수출에 필요한 전시회 참가, 서류 번역, 인증 취득, 계약서 작성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조언을 받았다”며 “수출 초보인 내게는 굉장한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이런 준비를 거쳐 그는 올 4월 무협이 주최한 도쿄 한국상품 전시 상담회에 나갔다. 해외 시장에 대추막걸리를 처음 선보이는 자리였다. 이 현장에서 그는 한 일본 바이어와 연 수출 60만 달러(약 7억3000만 원)를 목표로 첫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무협 대구경북지역본부 권오영 과장은 “현지 시음회에서 ‘부드럽다’, ‘요구르트처럼 맛이 좋다’, ‘기분 좋게 취한다’ 같은 호평이 이어졌다”며 “지난달 처음 수출된 물량은 젊은 고객과 여성들 사이에서 특히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신 대표는 현재 3, 4곳의 일본 업체와도 추가 계약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 수출에 성공한 이후 신 대표는 국내 최대 대형할인마트인 이마트로부터도 납품 제의를 받았다. 이마트 공급은 다음 달부터 이뤄진다.

“이마트 납품이 시작되면 일본 수출에도 더 힘을 받게 되겠지예. 이참에 해외에 우리 대추막걸리 맛을 확실하게 보여줄랍니더.”

청송=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신현길 대표
―1941년 대구 출생
―1970∼84년 경북 구미에서 기계, 섬유공장 운영
―1981년 구암농원 설립, 대추농사 시작
―2010년 3월 대추 막걸리 생산·출하, 4월 도쿄 한국상품 전시
상담회 참가, 5월 일본 수출 시작, 7월 이마트 납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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