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을 여는 젊은 국악인들]<9>거문고 앙상블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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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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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의 소리’ 찾아나선
‘최고’들의 유쾌한 반란

《“연극이 나타내는 다채로운 상황을 거문고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면 이 악기가 가진 다양한 개성을 찾아내게 됩니다. 날마다 새로운 발견이죠.”(김준영 씨) 거문고앙상블 ‘수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거문고 연주자 4명이 2006년 팀을 이뤘다. 국립국악고의 한두 해 차 선후배로 거문고에서는 기량을 자랑하는 젊은 명인들이었다.》
○ 국악합주 활용도 낮다는 고민서 의기투합

“2100년의 지구는 기온이 올라가서 눈이 내리지 않아요. 응? 그런데 ‘눈’이 뭐지?”

1월 서울 강남구 개포동 M극장. 무대에 선 소녀 ‘송이’의 독백에 이어 무대 뒤편에 반원형으로 펼쳐 앉은 네 사람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퉁∼. 나지막하면서도 깊은 거문고 가락은 흩날리는 눈송이를 묘사하듯 춤췄고 때로는 강물처럼 넘실거렸다. 어린이를 위한 환경음악극 ‘송이송이 눈송이’. 무대 위의 네 연주자는 국립국악원 창작연주단 소속의 젊은 거문고 명인들이었다.

거문고 앙상블 ‘수다’ 단원들은 민요나 정악을 바탕으로 한 창작곡을 연주하지만 옛 시대의 정감을 재현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이 시대의 음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은수 서정곤 김준영 주은혜 씨. 전영한 기자
거문고 앙상블 ‘수다’ 단원들은 민요나 정악을 바탕으로 한 창작곡을 연주하지만 옛 시대의 정감을 재현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이 시대의 음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은수 서정곤 김준영 주은혜 씨. 전영한 기자
김준영 씨는 2004년 전국국악경연대회 대상(대통령상)을 받았다. 서정곤 씨는 2000년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대상을 수상했다. 주은혜 씨도 2001년 동아국악콩쿠르 거문고 부문 금상 수상자. 김은수 씨는 서울대 국악과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문사과정에서 실기와 이론을 연마했다. 그러나 이 ‘최고’들이 뭉친 데는 썩 즐겁지만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국악기 하면 거문고 가야금을 먼저 연상하죠. 그렇지만 국악합주에서 거문고의 활용도는 높지 않아요. 뜯는 악기인데 음역이 낮아서 두드러지지도 않고 술대(연주에 쓰는 짧은 막대)로 내리치는 특유의 음색이 국악관현악 합주에서는 이질적으로 들리는 면도 있기 때문이죠.”(김은수 씨)

묵향(墨香) 가득 풍기는 선비의 악기요 국악기의 대명사인 거문고가 합주에서는 뒤에 물러앉기 십상이라는 고민이 네 사람을 의기투합하게 했다. ‘빼어난 거문고 연주자들이 모여(수다·秀多) 좋은 수를 많이 만들어서(수다·手多) 거문고로 한바탕 수다를 떨어보자’는 뜻으로 ‘수다’라는 이름을 지었다. 창립 초기는 국가대표 국악기관의 소속원들답게 치열한 탐구와 연구의 시간이었다. 국립국악원 연수관에서 일곱 차례나 ‘관현악에서 거문고의 역할’ ‘현대음악에서 거문고의 쓰임새’ ‘컴퓨터를 이용한 거문고 음량 변화’ 등을 주제로 워크숍을 열어 거문고의 새로운 가능성을 토의했다.

2007년 9월 첫 공연인 음악극 ‘수다로 잊자? 있자!’를 서울 나루아트센터 무대에 올렸다. 옛 연인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펼쳐내고, 그 사연에 어울리는 거문고 음악을 배경에 펼쳐낸다는 독특한 형식이 눈길을 끌었다. 이는 2008년 7월 북촌창우극장에서 공연한 음악극 ‘잊자모 회원 모집’으로 이어졌다. 두 공연이 거문고의 서정적인 음색으로 ‘사랑’의 기억을 되살리는 공연이었던 한편 올해 1월 공연한 ‘송이송이 눈송이’는 거문고의 깊은 음색으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어린이들에게 다가가려는 시도였다.

○ “새로운 형식의 실내악 앙상블 개발할 것”

네 사람은 “음악극을 고집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거문고 앙상블의 다양한 표현이 가진 가능성을 타진하는 데 음악극이라는 장르를 첫 번째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앞으로는 새로운 형식의 국악 실내악 앙상블 개발에 초점을 맞춰볼 생각입니다. 해금 대금 등 다양한 악기와 같이 호흡을 맞춰보는 것도 앞으로의 실험에 들어가겠죠.”(서정곤 씨) “어떤 형식이 되든 거문고가 ‘들러리’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천 가지 표현의 가능성을 지닌 거문고는 어떤 무대에서든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거든요.”(주은혜 씨)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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