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23>‘삼봉이발소’ 하일권

동아일보 입력 2010-03-30 10:45수정 2010-04-2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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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 해야 한다."
"강해져야 한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어린 시절 아버지 말씀은 대부분 '~해야 한다'로 끝나곤 했다. 그 중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너는 커서 사업을 해야 한다'. 주류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는 외동아들이 사업을 물려받길 원했다.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은 아버지 말씀을 곧잘 따랐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미술학원에 다니게 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입학 원서를 쓰며 가 나 다 라 군에 모두 미술 관련 학과를 지원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던 '사업을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바람을 저버렸다.

아버지는 미술에 관련된 직업을 가지면 '배곯는다'고 생각했지만 웹툰작가 하일권(28)에게는 '기회의 땅'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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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할 때만 해도 각광받던 애니메이션, 복학하고 보니…

2000년 전후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부흥기였다. 디자인학과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사이에서 고민하던 하 작가는 애니메이션을 선택.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00학번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하 작가가 군생활을 하는 동안 상황은 바뀌었다.

"군대에서 애니메이션영화 '원더풀 데이즈'를 봤어요. 극장에서 개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금세 비디오로 나오더군요. 이후로 한국 애니메이션 신작은 못 본 것 같아요."

제대 후 보니 학과 선배들은 게임회사나 다른 곳에 취직해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애니메이션 회사들도 망한 곳이 많았다.

"애니메이션의 미래가 어두워 보였어요. 복학은 하기 싫고, 친척 분이 사는 말레이시아로 떠났죠. 당시만 해도 말레이시아는 무엇을 해도 성공할 수 있는 곳이었거든요. 호텔관광 쪽으로 전공을 바꾸고 다시 시작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학교도 마치지 않고 다른 길을 찾는 아들이 못마땅했다. 결국 하 작가는 한국으로 돌아와 복학. 그러나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애니메이션을 계속 전공할 수는 없었다. 마침 웹툰의 태동기. 그는 애니메이션에서 만화로 전공을 바꿨다.

●"1주일 안에 연락오지 않으면 웹툰 접겠다"

복학 후 그는 과제로 26쪽짜리 단편 '삼봉이발소'를 제출했다. 외모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이 '외모 바이러스'에 걸려 발작을 일으키면 이발사 삼봉이 대화를 통해 이들을 치료한다는 내용.

만화를 본 한 후배가 '장편으로 만들어도 되겠다'고 조언. 이 말에 힘입어 장편으로 재기획했다. 그리고 1회를 포털사이트 파란과 다음의 신인만화가 게시판에 올리고 웹툰 담당자의 연락을 기다렸다.

"제 성격이 급하거든요. 딱 1주일만 기다려보자 마음먹었어요. 1주일 안에 연락이 오지 않으면 접으려고 했어요. 하하하"

다행히 파란에서 연재를 제의했다. 그렇게 웹툰작가로 데뷔했다.

졸업도 하기 전에 데뷔하고 유명세를 탔지만 교수님들은 '취업 특혜'를 주지 않았다. 시험이나 과제, 작품전 등 어느 곳에서도 '특혜'는 없었다.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며 '삼봉이발소' 연재를 끝낸 하 작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조직폭력배 두목 아버지의 부성애를 그린 '보스의 순정', 로봇과 왕따 학생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3단합체 김창남'을 잇따라 연재했다.
'삼봉이발소'의 주인공 장미(위)와 '3단합체 김창남'의 호구(아래)


●만화가 반대하시던 아버지 데뷔하자 '장하다' 댓글 응원

하 작가가 서둘러 데뷔하고 바쁘게 작품활동을 한 이유는 아버지였다.

"고집부려서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 들어가더니 말레이시아에서 새출발하겠다고 하고… 아버지가 저를 한심하게 보셨어요. 만화를 하겠다고 설득해 봤지만 아버지는 계속 반대하셨죠. 결국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면 데뷔해서 보여드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어요."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사업을 물려받으라는 말씀을 거두지 않던 아버지는 아들이 웹툰 연재를 시작하자 누그러졌다.

"'삼봉이발소'에 달린 댓글을 보고 있는데 절 아는 사람이 쓴 듯한 댓글이 있었어요. '장하다.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알고보니 아버지께서 남기신 댓글이더군요. 그 이후로는 아버지가 많이 응원해 주세요."

만화가가 된 아들은 아버지의 바람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언젠가 만화와 관련된 콘텐츠 관련 사업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 독특한 설정일 뿐

그의 작품 특징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주인공이라는 것. '삼봉이발소'의 장미는 외모 콤플렉스, '3단합체 김창남'의 호구는 왕따, '두근두근두근거려'의 수구는 수영복에 도착증을 가지고 있다. 혹시 작가의 경험이 바탕이 되진 않았을까.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으신가요?"
"학창시절 왕따를 당했던 적은…"
"혹시 특정 물건에 집착하시지는 않는지…"

말끝을 흐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까 표정을 살폈더니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변한 하 작가 '으하하하하' 시원한 웃음을 터뜨린다.

"작품 때문에 그런 질문들 정말 많이 받아요. 제 경험은 아니고요.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 아닌가요. '삼봉이발소'의 장미처럼 다들 외모에 자신없는 부분이 있고 '3단합체 김창남'의 호구처럼 외로움을 느끼죠. '두근두근두근거려'의 수구처럼 특정 물건에 집착하기도 하고요. 캐릭터화하면서 극단적으로 설정한 것뿐이에요."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가 많은 것은 "평균 이하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웹툰이 없어서 블루오션이라고 판단해 독특한 설정을 한 것" 이라고.

● 쉽게 싫증내는 성격, 연재에도 영향 줘

하일권 작가는 하루 14시간을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생활한다.
올 초 '두근두근두근거려' 연재를 마친 하 작가는 6월 차기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데뷔 5년차.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그림과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담아 '제2의 강풀'이라고 불리며 주목받는 그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제가 확 꽂혔다 금방 싫증내는 타이프거든요. 만화 그릴 때도 똑같더라고요. 스토리 구상을 끝내고 연재를 시작하는데 저로서는 이미 구상하면서 재미를 다 느낀 뒤에 연재하는 거잖아요. 그러다보니 애정이 식고 다른 작품 구상하고 싶어져요. '삼봉이발소' 연재할 때는 중반부쯤 싫증이 나더니 '3단합체 김창남' 연재할 때는 초기부터 싫증이 났어요. 차기작은 아직 연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렇고요."

고민보단 투정에 가까운 얘기지만 정작 본인은 '큰 일'이라며 심각한 표정이다. 고민이 깊었는지 대안도 마련해놨단다. 작품 연재 기간을 짧게 잡거나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는 것. 스토리 작가는 콘티 구도짜는 것까지만 관여하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시간만큼 다른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

'확 꽂히는' 성격은 데뷔한 뒤로 하 작가를 만화에만 전념하게 했다. 좋아하는 여행도, 친구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고. 그는 "체력관리를 위해 운동을 해봤지만 운동 후에 몸이 피곤해서 작업을 할 수 없었다"며 "3개월 넘게 운동해 본 적이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5년 동안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달리다' 보니 최근에는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내가 만화를 좋아하나 자문하게 되요. 제 삶이 없거든요. 하지만 '싫다싫다' 하면서도 어느 순간 스토리 생각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면 좋아하는 것 같긴 하네요. 만화가는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에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화가가 된 하 작가. 그의 아들이 만화가가 되겠다면 흔쾌히 허락할까.


"저 이상으로 만화를 좋아하면 말리지 않을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면 해도 안 될 게 뻔하니 반대할 거구요. 만화가 아니더라도 그만큼의 열정이 있다면 무엇이든 잘 해내지 않을까요."

김아연 기자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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