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8>‘루저’ 작가 주호민

동아닷컴 입력 2009-12-15 19:19수정 2010-04-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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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무한동력’ 한 장면

그는 '루저'(Loser)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루저라고 말한다.

대학 입시에서는 가, 나, 다, 라군 모두 불합격, 이어 전문대도 불합격했다. 재수를 한 뒤 다시 도전한 입시에서도 가 나 다 라 순서대로 다 떨어지고 전문대 역시 붙지 못했다.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담임선생님은 "서울에 있는 중위권 대학은 갈 만한 실력"이라고 원서를 써 주셨다. 그런데도 원서를 내는 족족 학교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호민아, 너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니까 직업 전문학교 가지 그러니."

주요기사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그가 입학한 곳은 A 전문학교 애니메이션과. 점수도 보지 않고 논술이나 면접도 없이 누구나 원서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학교였다.

수능 성적이 입학생들 사이에서는 높은 편이어서 장학금을 받게는 됐지만 남들처럼 '합격의 기쁨' 따위는 없었다.

● 20대의 '나락'

군대 만화 '짬'으로 인기 몰이를 시작해 최근에는 '무한동력'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는 웹툰 작가 주호민(29).

주 작가는 "내 20대 초중반 학창시절은 나락이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한다.

2001년 전문학교에 입학. 그래도 애니메이션 학과니까 그림이나 애니메이션 제작 기법, 창의력 관련 과목을 배울 줄 알았으나 그가 들어야 했던 강의 중 상당수는 전산수학, 여성학, 비주얼 베이직 등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드로잉, 데생, 포토샵 등 관련 과목의 강의 내용은 그야말로 '직업학교' 수준. 포토샵 시간에는 각 메뉴의 기능을 설명하는 데 그쳤고, 데생 시간에는 옆자리의 동료 학생이 머리는 동그랗고 몸은 줄로 찍찍 그은 유치원생 수준의 그림을 그리고 있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합격의 성취감도 없었지만, 그런 환경에 놓인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졸업 한 한기를 남겨두고 견디다 못해 2002년 10월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2004년 11월 제대를 한 뒤 복학을 하기 위해 학교를 찾아갔다가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애니메이션 학과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한 학기만 다니면 전문학사 학위는 나오니까 원하는 학과 아무데나 가라"고 했다.

"이것 갖고 뭐 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그만 뒀어요."

● 군 생활이 '생계'가 될 줄은…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한 대형 할인마트에 '알바'(아르바이트)로 들어갔다.

조그만 방에서 여성 동료 4명 틈에 앉아 일하는 자리였다. 매장에 진열할 물건을 파악해 하청업체에 주문서를 넣는 비교적 단순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동료 직원들이 그를 미치게 했다.

동료 4명은 한명만 자리를 비우면 나머지 3명이 자리 비운 한 명을 헐뜯었다.

가령 A가 자리를 비우면 B, C, D가 A를 씹었다. B가 없으면 A, C, D가 B를, C가 없으면 A, B, D가 C를 헐뜯는 구조였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는데 매번 동료들은 자신에게 동의를 구했다.

"A 주제에 무슨 명품백이야, 호민 씨 안 그래? 지 주제를 알아야지…."

"B 쟤는 메이크업이 저게 뭐니? 무슨 직업여성도 아니고, 호민 씨 보기엔 어때?"

주 작가는 할인마트 일도 그만 두었다.

"좋은 사람들과 성취감 느껴가며 땀 흘려 일해 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나한테는 허락되지 않는 걸까…."

일 없이 할인점에서 번 돈을 까먹으며 허송세월 하고 있을 때 한 포털 사이트에서 연락이 왔다.

군대에 가기 전 주 작가가 심심해서 연습장에 대충 그려 올린 만화를 한 만화 사이트에서 본 담당자가 연락을 해 온 것.

담당자는 "포털 사이트에 만화 게시판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작품을 올려 줬으면 좋겠다"고 제의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그려서 올리겠습니다. 그럼 혹시 원고료는…."

담당자는 말끝을 흐렸다.

"죄송합니다만 원고료는 없습니다. 아마추어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코너인지라…"

주 작가는 실망하지 않았다. '삼류인생', '루저'인 그에게 이만한 동기부여도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열심히, 정말 열심히 자신의 군 경험을 실화로 옮긴 '짬'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 그의 삶에도 빛이…

자유 게시판이나 다름없는 포털 사이트 만화 게시판에 '짬'을 7회쯤 올렸을 때 이번에는 한 스포츠 신문에서 연락이 왔다.

"지면에는 나가지 못하지만, 홈페이지에 작품을 연재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순간 기뻐서 방방 뛰었지만 다음 얘기를 듣고는 착지했다.

"원고료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좋았다.

열 군데 대학에 떨어지고, 군대 갔다 오니 학과가 없어지고, 학교 때려치우고 알바라고 얻은 임시 직장 분위기 역시 참기 힘들었던 그였다.

그런 주 작가는 유명 포털 사이트와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신문사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고, 그 사이트에 작품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 때 나이 스물 넷, 2005년 가을이었다.

그 뒤로 10여개월간 원고료 없는 연재가 계속됐다. 그 기간 남자를 군대에 보낸 여성독자, 군 입대를 앞두거나 예비역인 남성 독자를 중심으로 '짬'의 팬은 빠르게 늘어났다.

그가 본격적으로 '원고료 받는 작가' 대열에 올라선 것은 '짬'에 이어 후속편 격인 '짬 시즌2'를 마치고 '무한동력'을 야후에 연재하기 시작한 2008년 5월이었다.

야후에서는 무한동력을 연재하면서 이미 연재가 끝난 '짬'과 '짬 시즌2'를 재연재 하기로 하고 이른바 저작권료로 그에게 편당 4만원씩 약 600만원을 일시에 지급했다.

전시회 벽화 등을 제작하는 일에 종종 참여하면서 일시적인 수입이 있었지만 목돈을 만져본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그는 그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고 말했다.

그가 돈을 벌어도 '가난함'을 떨치니 못하는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 나이 40에 화가 데뷔

그의 아버지(70)는 미술계 쪽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화가다. 아버지가 미술계 쪽에서 인정받은 시기는 주 작가가 웹툰작가로서 알려지게 된 시기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1학년 1학기때 중퇴했다. 등록금을 낼 돈이 없어 젊은 나이에 잡상인, 경비원, 막노동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미술 관련 출판사에 입사해 안정을 찾고 어머니와 결혼했으나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나이 40이 됐을 때, 아버지는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화가로 입문했다.

주 작가가 태어난 시기도 그때였다.

주 작가가 자라면서 본 아버지는 출판사에 기고를 하고 친척들에게 돈을 꿔다가 생활비를 보태면서도 화가의 꿈을 접지 않는, 묵묵히 꿈을 향해 한 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거인의 모습이었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자식들과 별로 대화가 없었지만 주 작가는 20대의 나락에서 허덕일 때마다 꿈을 향해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었다.

그의 최신작 '무한동력'에는 한 고집스러운 하숙집 주인아저씨가 나온다.

에너지 투입 없이 한번 돌기 시작하면 영원히 도는 엔진 개발에 매달리는 극중 '아저씨'는 어쩌면 현실 속 그의 아버지의 투영이다.

"무한동력이란 물리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말하는 만화 속 학자들은 "꿈을 접고 현실에 순응해야 할 40세에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현대인과 닮았다.

학자나 주위 사람들의 눈총에 아랑곳하지 않고 착실히 무한동력 엔진을 업그레이드 시켜 나가는 만화 속 아저씨의 모습은, 남들은 꿈을 잃을 나이인 40에 그림을 시작해 60세에 처음 개인전을 연 아버지와 닮았다.

● "저는 '루저'입니다."

'꿈이란 이뤄지는 게 아니라, 영원히 꾸는 것'이란 생각이 몸에 밴 그는, 지금도 돈이 생겨도 제대로 쓰질 못한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지난 작품에 대한 반성과, 차기작 구상으로만 가득 차 있다. 20대의 낭만이나, 빠른 자동차, 이병헌 같은 헤어스타일, 멋진 옷과 액세서리를 생각할 틈이 없는 것.

지금 그가 입고 셔츠와 바지는 어머니가 얼마 전 '아름다운 가게'에서 남이 입다가 불우이웃돕기로 내놓은 중고품.

인터뷰 당일 그가 입고 온 패딩점퍼는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는 바람에 인터넷에서 대충 구입한 3만7000원짜리다.

"요즘 '루저'라는 표현을 쓰면 좀 그렇지만…"

이렇게 운을 뗀 그는 "계속 바닥 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 낮은 곳이 푸근하고 편해요. 앞으로 제가 하는 일이 잘 돼서 정말 부자가 될 지도 모르고, 혹은 잘 안 돼서 힘들 때도 있겠지만 전 언제나 이곳이 제 자리라고 생각하고 푸근하게 있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루저'입니다."

최근 일이다.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술에 얼큰하게 취해 집에 들어오셨다.

"아들아, 우리 2차 먹자"는 아버지는 마루에 상을 펴고 어머니에게 멸치볶음과 막걸리를 내오게 한 뒤 주 작가와 잔을 부딪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발음이 살짝 부정확했다.

"만화 재미있다."

한두 잔 더 하시고 취기가 돌자 평소보다 말씀이 많아졌다.

"네가 그리는 만화는 따뜻함이 있어. 시대가 변해 사람들이 인스턴트, 순간적인 재미를 찾지만 그런 건 변하는 거야. 따뜻함은 영원히 변치 않아. 너는 계속 이런 느낌으로 가야해."

다행히 그의 '루저' 기질은 태어나서부터 자라는 동안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어서, 어느날 갑자기 대 스타가 된다 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무리 인생의 나락에 빠져도, 꿈이 있으면 살만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어요. 꿈을 잃은 사람을 제가 비난할 자격은 없어요.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꿈 하나쯤 있는 게 참 좋을 것 같아요."

꿈 잃은 '위너'가 아닌 꿈꾸는 '루저', 주호민.

그는 '위너'였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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