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7>‘낢 이야기’의 서나래 작가

동아일보 입력 2009-12-09 15:33수정 2010-04-2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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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이 사는 이야기’로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서나래 작가.
- 생각보다 엄청나게 예쁘세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서나래 작가(26). '낢이 사는 이야기'로 네이버 만화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나 인터넷에는 오래되거나 팔로 얼굴을 가려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사진만 가끔씩 뜨는 인물이다.

- 이렇게 아름다우신데, 왜 얼굴 공개를 안 하세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면서 각자 머릿속에 그리는 '낢'이 있잖아요. 누구에게는 언니, 누군가에게는 여동생, 누군가에게는 '애인'? 각자의 '낢'이 다 다른데, 제가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의 즐거운 상상을 방해할 것 같아서요."

주요기사
'낢이 사는 이야기'는 서 작가의 데뷔작이자 줄잡아 매일 700만 명 이상이 감상한 대 히트작. 연세대 생활디자인과 3학년이던 2004년 5월 자신의 미니홈피에 "친구들 보여주기 위해" 올린 게 뜻하지 않게 세상에 알려져 유명세를 타고 네이버까지 진출했다.

●'낢', 서나래의 이야기

그의 작품의 주 소재는 '가족'이다. 당초 주위 사람들의 얘기를 모아 '생활 만화'를 그리려고 했으나 그리다 보니 가족 얘기가 대부분이어서 아예 방향을 가족으로 틀었다.

말실수 잦으시고 현실적이며 쾌활하신 엄마, 군 입대를 앞둔 '누나 눈에는' 귀여운 두 살 아래 남동생, 결혼을 앞둔 8살 위 언니. 주인공인 작가 '낢'이 이들과 고스톱 치고 TV 리모콘 채널 갖고 옥신각신하다가 동생이 입대한 뒤 허전해진 거실 소파에서 아무 말 없이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는 모습을 귀여운 '2등신' 캐릭터와 파스텔톤 그림으로 잔잔하게 담아냈다.

"내 핸드기 어디 있니?"(내 핸드폰 어디 있니)

"손에 가슴을 얹고 생각해 보시지!"(가슴에 손을 얹고…)

동글동글 파마머리의 엄마 캐릭터의 이런 말실수는 어딘지 낯설지 않다.

"다리 꼬고 앉아야지~"

"주머니에 손 넣어야지~"

"주머니에 손 넣고 다리 꼬고 앉아야지~"

군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와 해 맑은 표정으로 이렇게 흥얼대는 남동생 식이의 모습은 군대 갔다 온 모든 남성을 추억에 빠지게 한다.

- '낢'이 무슨 뜻이에요?

"지금도 만나는 친한 제 친구가 중학교 때 지어준 제 별명이에요."

서 작가에게 '낢'이라는 애칭을 지어준 사람은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 김경민 씨(26).

중학교 시절 서 작가와 단짝이었던 김 씨는 쪽지를 쓰거나 이름을 부를 때 '나래'라고 하지 않고 한 자로 줄여 나에 'ㄹ'과 'ㅇ' 받침을 붙였다. 하지만 워드프로세서로 이런 글자가 입력이 되지 않자 'ㅇ' 대신 'ㅁ'을 붙였다.

서 작가는 김씨에게 '겲'이라는 애칭으로 응수했다. '겨'에 'ㅇ'과 'ㅁ' 받침을 붙이려 했으나 역시 컴퓨터에서 입력이 안 돼 'ㅇ'을 'ㄹ'로 바꿔 부른 것.

"낢, 매점가자!"

"겲, 몇 개 틀렸어?"

두 사람은 요즘도 만나면 "낢", "겲" 이라고 서로를 부른다.

그런 겲이 요즘 평소 안 하던 얘기를 종종 한다.

"낢! 그거 내가 지어준 브랜드잖아. 저작권료 나한테 줘야 하는 거 아냐?"

"겲, 됐거든!"

●무서운 아버지

- 작품 속에 아버지는 어머니나 형제들만큼 자주 등장 안 하시던데….

"저에게 아빠가 무서운 존재였어요."

서 작가가 기억하는 어린시절 아빠는 정해진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크게 화를 내는 ‘완벽주의자’였다. “사업을 하시느라 신경이 늘 날카로우시구나” 마음속으로는 이해를 하려고 했지만 집안에서도 너무 엄해서 어리광 한번 제대로 피워볼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형제들은 이런 아빠와 멀어졌다.

아빠에게서 멀어진 거리만큼, 서 작가는 엄마와 가까워졌다.

'낢이 사는 이야기'에서 엄마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그 만큼 엄마와 같이 지내며 친구처럼 수다 떨고 사소한 일로 언니 동생처럼 싸우는 시간이 많기 때문.

엄마는 서 작가의 작품을 빠지지 않고 본다. 어디 가서 자신도 모르게 남이 들으면 웃길만한 말실수를 하면 그 자리에서 메모해서 서 작가에게 '제보' 하기도 한다.

한동안 작품에 '엄마'가 등장하지 않으면 "이제 엄마 그릴 때 되지 않았니?" 은근히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아빠는 서 작가의 작품을 보지 않는다.

"그래도 딸이 그리는 건데 좀 봐줘요."

엄마의 고집에 못 이겨 어쩌다 한번 보면,

"이게 뭐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구먼."

퉁명스럽게 한마디 툭 던지고 만다.

‘낢’이 그린 ‘인터뷰 당하던 날’.
말 없는 아빠.

서 작가의 작품 속 아빠는 이런 모습이다.

동생 식이가 군대 간 뒤. 어느 날 아빠는 텅 빈 식이 방문을 열고 물끄러미 침대로 보고 서 있는다. 거실 조명으로 인해 어두운 방으로 길게 늘어선 아빠의 그림자도 쓸쓸한 모습.

식이 면회 가는 날. 특급 호텔 케이터링 수준으로 바리바리 장만해 간 음식을 엄마, '낢', 언니가 식이와 수다를 떨며 먹는 동안 아빠는 그저 조용히 옆에 앉아 있다.

"아빠가 미웠어요. '난 커서 아빠처럼 되지 말아야지'라는 게 제 인생 목표의 하나였어요."

그런 서 작가가 섬뜩할 때가 있었다.

작업실에서 우유팩, 빈병, 페트병 등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면서 우유팩은 하나하나 펴서 포개놓고, 빈병은 국군의 날 시가행진하는 군인들 수준으로 줄 세워 놓으면서 그는 깜짝 놀랐다.

'이거, 아빠 습관이잖아!'

그리고는 당장 정리를 멈추고 털썩 침대에 걸터앉고는 이렇게 내뱉었다.

"우씨!"

●변화

"이제부터 우리 아이들 하루 한번씩 안아줘야 되겠다."

그러던 아빠가 어느 날 대학생이 된 다 큰 딸을 꼭 안아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갑자기 왜 이러시지?'

애써 뿌리치지는 않았지만 무서운 아빠의 포옹에 서 작가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어제 지하철에서 봤는데, 아이들이 아빠한테 반말 하면서 친구처럼 대화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더구나…."

아빠가 사업을 정리하고 은퇴한 뒤였다.

서 작가는 엄마의 행동에 묘한 변화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뭔지 모를 서류 뭉치를 갖고 뒤적이더니, 어딘가에서 전화가 오면 화들짝 놀라 방으로 들어가 문 꼭 닫고 통화를 했다.

하루 종일 어딘가 돌아다니고 집에 와서는 어디 갔다 왔는지 딸에게는 말을 안 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온 집안이 떠나가게 거실에서 통화하고, 소파에 앉아 보고 있던 TV 채널을 딸이 돌리면 "잘 보고 있는데 왜 돌리니" 협박조로 얘기하고 미주알고주알 밖에서 있었던 얘기를 늘어놓던 엄마였다.

'무슨 일이 있나?'

서 작가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나.'

●수술

한 달 뒤. 엄마가 서 작가를 조용히 불렀다.

평소 말괄량이 같았던 엄마의 표정이 진지했다.

"아빠 수술해야 돼. 초기 암이래. 심각하지는 않지만 너희들이 놀랄까봐 그동안 말 안 했던 거야."

서 작가는 머리속이 바쁘게 움직였다.

비디오테이프를 빠르게 되감는 것처럼 순식간에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초등학교때 아빠가 짜증을 내고 고함지르며 집안 분위기 험악하게 만들었을 때.

그때마다 아빠 주변에는 일이 있었다. 아빠 친동생인 삼촌이 돌아가시고, 회사 채무 때문에 고민하고, 어머니인 할머니가 편찮으셨다.

할머니 병 수발할 사람이 없었던 데다 동생 식이를 임신한 엄마는 겸사겸사 탄탄한 교직생활을 그만둬야 했다.

'나라도 짜증을 냈을 텐데….'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 감정도 되돌릴 수 없었다. 아빠와 멀어진 채 보낸 어린시절. 성인이 된 이제 와서 하루아침에 애교덩어리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이사

지난해 3월. 아빠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의사는 "초기 암이어서 수술이 잘 됐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절대로 술을 입에 대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무서운 아빠는 수술 뒤 더욱 부드러워졌다.

하루는 외출하고 돌아온 서 작가의 책상 위에 잘 오려진 신문 기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서나래 작가의 노트.
만화계 동향에 대한 신문 기사를 오려 본문 군데군데 밑줄을 그어 놓은 것이었다.

"나래 핸드폰 건전지가 다 됐나보구나, 건전지가 건전하지 않네, 허허"

아무도 웃지 않을 썰렁한 농담도 던지더니,

'우리는 지금 명동, 날이 춥다.'

엄마와 외출 중에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도 보내왔다.

올해 5월.

서 작가 가족은 서울 잠실에서 용인으로 집을 옮겼다.

"공기 좋은 곳에서 건강 유지 하시라고 이사 가는 거야."

엄마는 이렇게 얘기했지만 서 작가는 알고 있었다.

병세가 진정되자 아빠는 가끔씩 “술이 그립다”고 말했다. 이런 아빠가 불안해 엄마는 친구들이 불러도 못 나가게 서울에서 멀리 멀리 떨어진 곳을 찾은 것이었다.

하지만 서 작가와 군 복무를 마치고 내년 3월 복학을 앞두고 계절 학기를 들어야 하는 동생 식이에게 용인은 너무 멀었다. 9월 언니가 시집간 뒤 집안이 썰렁해 엄마 아빠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약속장소까지 2시간 반이 걸렸지만 아빠는 여전히 밤에 친구들을 만났다.

결국 서 작가는 동생과 함께 지난달 말 잠실에 자취방을 얻어 다시 서울에 둥지를 텄다.

이사하는 날.

엄마는 자취방에 와서 청소를 해주고 밑반찬을 만들어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잠실에서 잠시 친구들을 만나고 "남편 저녁 차려줘야 한다"며 서둘러 용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저 왔어요."

●아빠…

현관문을 연 순간, 엄마는 깜짝 놀랐다.

엄마 아빠 없이 혼자 집을 지키는 5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아빠는 그렇게 부엌 식탁에 앉아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저 왔어요” 이 말에 갑자기 꿈에서 깬 듯 천천히 엄마를 바라봤다.

“쓸쓸하다…, 그치?”

엄마는 가슴이 미어졌다.

“그런 말 말아요. 아이들이랑 친해도 당신보단 내가 더 친했어요. 당신 건강만 아니었어도, 이런 날 우리 둘이 술 한 잔 하면 좋을 텐데…, 그죠?”

엄마에게 이 얘기를 전해들은 서 작가는 가슴이 미어졌다.

"아빠는 영원히 늙지 않으실 줄 알았어요. 무서운 성격 영원히 안 변하는 줄 알았어요.”

덤덤하게 말했지만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감추지 못했다. 인터뷰 중 자꾸만 입술을 깨물었다.

풋풋한 여대생의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 엄마와 언니와 동생과, 때로는 무뚝뚝한 아빠와 화목한 일상으로 가득 찬 '낢이 사는 이야기'는 네이버에서 220회로 연재가 끝났다. 하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서 작가는 현재 분위기가 많이 바뀐 또 다른 '낢의 사는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동생과 살게 됐어요. 동생도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나이가 됐고, 언니는 시집가서 다른 집 가족이 됐잖아요. 대학생 시절 낢 이야기는 더 이상 불가능해요."

삶이 곧 작품이고 작품이 곧 삶인 서 작가는 앞으로의 낢이 사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애인이 생기면 애인 얘기를 쓰고, 결혼하게 되면 결혼 얘기를 쓸 거예요. 아이가 생기면 육아일기 쓰죠. 아이가 크면 교육 얘기도 쓰고. 대학 때부터 함께 한 독자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고 싶고, 저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독자 여러분이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빠 얘기도 많이 하고 싶어요. 아빠에 대해서는 웃기는 얘기 말고 진짜 얘기를 하고 싶은데, 아빠 생각만 하면 제가 감정적으로 되는 것 같아요. 아빠도 제 3자의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엄마 언니 동생은 그게 되는데, 아빠는 그게 잘 안돼요."

- 아빠 얘기는 하고 싶고, 잘 되지는 않고, 그럼 어쩌죠?

"노력해야죠. 노력."

●에필로그

아빠는 얼마 전 서 작가의 작품 등장인물이 인쇄된 캐릭터 상품인 부직포 백을 20개 구입했다. 아빠는 부직포 백들을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딸 자랑을 했다.

아빠는 또 얼마 전 '낢이 사는 이야기' 단행본 20권을 구입했다. 아빠는 그 책을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딸 자랑을 했다.

"나 서나래 아빠야."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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