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4>‘영웅 강철남’의 현용민

동아닷컴 입력 2009-11-19 00:51수정 2010-04-27 17:48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꼬마야, 아무거나 그리고 싶은 거 하나 그려볼래? 잘 그리면 100원 줄게."

1981년 서울 상계동의 한 주택가 골목. 7살짜리 꼬마는 동네 아저씨의 제안에 가슴이 뛰었다.

꼬마는 굴러다니는 못을 하나 주워 들고 흙바닥에 '로봇 태권V'를 그리기 시작했다.

'다 그렸는데 100원 안 주면 어쩌지?' 100원을 못 받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손이 떨렸다.

주요기사
하지만 아저씨는 "잘 그렸다"며 꼬마의 손에 100원을 쥐어줬고, 꼬마는 그 길로 동네 가게로 달려가 과자를 한 봉지 샀다.

집에 돌아와 과자 봉지를 뜯은 꼬마는 먹는 내내 킥킥대면서 웃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웹툰 '영웅 강철남'과 '도대체 왜?인구단'의 현용민 작가(35)가 기억하는 '제대로 된' 성취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도대체 왜?인구단’의 현용민.
● 최고의 만화가가 되기 위한 일본행

만화가가 꿈이었지만 지금처럼 미대 학과가 세분화 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만화와 가장 가까운 분야'로 판단하고 1994년 서울 예술대학 시각디자인과에 들어갔다.

1998년 군대를 제대하고부터 본격적으로 만화가가 될 준비를 시작했다. 만화학원에 5개월간 다니며 연출, 글쓰기 등 만화 제작 테크닉을 익혔다.

공모전에 입상해 거창하게 데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라맨'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보기 좋게 떨어졌다.

공모전에서 떨어진 작품을 들고 잡지사들을 찾아다녀봤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요즘 독자들 얼마나 똑똑한 데 이 정도 내용으로 먹힐 것으로 보느냐."

"주인공 대사가 이게 뭐냐, 너무 유치하다."

'학대'를 넘어서 '천대' 수준의 대접을 받은 현 작가는 '일본에 가서 선진 만화를 배우겠다'고 그때 결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딱 한군데 만 더,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찾아간 곳이 시공사였다. 당시 만화잡지 '쎈'을 내고 있던 시공사 담당자는 그의 원고를 보자마자 "화제가 될 만한 작품이다. 당장 계약하자"고 나왔다.

'어? 이게 아닌데….'

현 작가는 당황했다. 일본행에 앞서 '확인 사살' 차원에서 싫은 소리 한 번 더 듣겠다고 찾아갔을 뿐인데….

"죄송한데요, 제가 연재는 할 수 없는데요."

이번엔 담당자가 당황했다.

"혹시, 그럼 뭐 하러 원고는 들고 오신건지…."

"연재해 달라"는 출판사와 "못한다"는 무명작가. 옥신각신 끝에 2002년 2월부터 5주간 5편 분량의 중편으로 연재하기로 합의했다.

연재를 마친 현 작가는 같은 해 4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드래곤볼 작가 같은 최고의 만화가가 되겠다.'

실력은 출중했고 꿈도 거창했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더 '추웠다'.

‘전공을 살려’ 공사현장에서 벽에 페인트를 칠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 돈으로 일본어 학원을 다니며 우선 6개월간 일본어를 익혔다.

그리고 만화 학원 수강시절 알게 된 일본 학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자리 알선을 부탁했다. 그리고 덜커덕, 한 중견 작가의 문하생으로 취직이 됐다.

'그래! 이제부터야, 난 선진 일본 만화 기법을 전수 받는 거야!'

작가가 가져야할 철학, 기획부터 실제 작품 제작까지의 선진화된 프로세스, 만화 작가와 출판사 간의 업무 협조 시스템, 인터넷 시대의 만화가 나아가야할 방향….

이런 거는 하나도 못 배웠다. 대신 현 작가는 그때부터 6개월간 흑백 종이 만화 배경을 그리거나 줄만 그어댔다.

뭐라도 하나 배워보려고 곁눈질을 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좌 우 앞을 막고 있는 자신의 키 보다 큰 파티션뿐이었다.

결국 공사판에서 페인트칠 하는 기술을 익힌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이 27세.

● 아, 성공해야 하는데…

2001년 4월 한국에 돌아오자 아버지가 암에 걸려 있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운전, 건어물 장사, 만화가게 안 해본 고생이 없는 아버지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만화가 하면 밥 굶는다"고 어머니가 말릴 때도 "꼭 만화가로 성공하라"며 힘을 보태 주시던 아버지였다.

2001년 한국 만화계에서 현 작가가 발붙일 곳이란 없었다.

출판 만화는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웹 만화는 태동 전이었다. 인터넷 열풍으로 기존 만화 독자들은 만화는 보지 않고 인터넷 검색에 빠져 있었다.

작품을 들고 출판사 잡지사 인터넷업체를 찾아다녀봤지만 상황은 일본 갔다 오기 전 보다 훨씬 안 좋았다.

오래 살지 못하실 것 같은 아버지. 꼭 성공한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만화가 아니어도 좋다. 만화 비슷한 일자리라도 좋다. 찾아 헤맨 끝에 그는 영화 컨셉트 디자인 전문 업체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나 소품을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만화를 사랑하고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심지어 벽에 페인트칠도 잘하는 현 작가에게 적격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랑했다.

"아버지, 내츄럴 시티, 아 유 레디?, 도둑맞곤 못살아에 제가 디자인한 소품이 나와요!"

"어, 그래, 장하다…. 근데 그거 할리우드 영화니?"

아버지는 겉으로는 기뻐했지만 현 작가의 꿈이 그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 작가가 영화관련 일을 하는 동안에도 수시로 "어서 저놈이 자리를 잡아야 할 텐데, 어서 만화가가 돼야 할 텐데" 하며 아들 몰래 한숨을 쉬었다.

영화가 뜨지 못하자 디자인 업체도 문을 닫아야 했다.

2002년 여름. 그는 다시 무직자가 됐다. 그리고 아버지의 간암이 본격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2003년 1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 아버지, 안녕히.

현 작가는 마음이 가벼웠다. 아버지가 더 이상 병마와 싸우며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 또 아버지에게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서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느긋하게 작품을 구상할 정신적인 여유가 생기자 그는 '만화의 미래'에 대해 차근차근 고민했다.

'그래, 인터넷은 멀티미디어야. 플래시 애니메이션, 컬러 만화가 뜰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컬러 만화와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인터넷에 띄웠다. 생계는 기업체 사보에 그림을 그리거나 CF 컨셉아트 작업 등으로 버는 돈으로 근근이 이어갔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만화의 미래'는 부업이 되고 아르바이트가 본업으로 바뀌었다. 한달에 단 한 푼도 못 벌 때도 있었고,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1000만원을 벌 때도 있었다.

매달 버는 수익에 따라 그의 기분도 춤을 췄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에서 제작하는 중고등학생용 교양서적에 삽화를 그리고 1000만원을 받았을 때는 '그래, 나도 이제 유명 작가야!' 기분이 심하게 '업'(up) 됐다가도 이후 몇 달씩 한 푼도 벌지 못할 때는 '내가 노숙자와 다를 게 뭔가' 한없이 '다운'(down)됐다.

그러던 그에게 자동차 튜닝업체 '메이크업카'에서 "스토리를 줄 테니 그림을 그려 달라"라는 연재 제의가 들어왔다.

자동차 전문가들이 정해준 이야기를 웹툰 형식으로 그리는 작업을 하면서 비로소 그의 심리상태는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연재를 계속하면서 일도 손에 익어 연재 만화가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2004년 가을. 그는 자신만의 작품 '무식아'를 만들어 다시 신문사와 인터넷업체를 찾아 다녔다.

온갖 군데에서 퇴짜를 맞고 다니던 중 한 잡지에서 "연재 하자"고 제의가 왔다.

'고진감래, 고생 끝에 드디어 내가 연재 만화가로 자리를 잡는….'

말도 끝나기 전에 잡지사가 망했다. 1, 2회 연재 한 만화는 안 한거나 마찬가지가 됐다.

얼마 있지 않아 이번에는 한 무가지에서 연락이 왔다. 적지 않은 원고료 등에 합의하고 2005년 1월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이후 7개월간은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의 만화를 보기 위해 출근길에 누가 나눠주기 전에 해당 무가지를 집어 드는 독자가 늘어갔다.

'이번에야 말로, 내가 연재 만화가로 자리를 잡습니다. 아버지!'

그 무가지의 형편이 어려워져 연재가 중단된 것은 현 작가가 막 유명해 지려는 찰나였다.

그 뒤로 또 3개월 여간 백수생활.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에는 만화 전문 무가지에서 연락이 왔다.

"무식아 너무 아깝지 않아요? 우리 신문에 연재 합시다."

'하늘은 무심하지 않으시군요,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2개월 뒤인 2005년 12월, 만화 무가지도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무식아의 연재는 또 다시 중단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무가지 1위업체인 M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무식아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안타깝습니다. 저희랑 같이 하시죠.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하더니,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

●'나는 왜 이러지'

'다른 작품을 준비해야겠구나.'

화제작 '영웅 강철남'을 구상한 것은 그때였다. '무식아'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여기 저기 옮겨가면서 연재된 무식아는 이미 누더기가 된 상태. 깔끔하게 새 출발할 아이템이 필요했다.

현 작가와 비슷하게 생긴 얼굴을 한 한 백수(강철남)가 밑도 끝도 없이 '슈퍼맨, 배트맨 처럼 영웅이 되자'고 결심, 이후 기막힌 좌충우돌 끝에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스토리의 이 작품은 연재 종료 후 책으로 출판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연재 과정은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2006년 7월부터 생긴지 얼마 안 되는 스포츠 전문지에 약 3개월 여간 연재했으나 이번에도 해당 신문사의 재정이 악화돼 연재를 그만둬야 했다.

이후 '코믹타운', '아이쿠키' 등 만화 등 콘텐츠 사이트에 연재를 하다가 또 다시 회사 사정이 안 좋아져서 연재 중단, 곧이어 또 다른 스포츠 신문 인터넷에 연재….

한 업체로부터는 받아야할 원고료 400여만 원 중 60만원밖에 못 받기도 했고 마지막 회까지 연재한 신문사 사이트에서는 "원고료를 안 받아도 좋으니 제발 작품만 종료하게 해 달라"고 통 사정해 겨우 겨우 강철남을 마칠 수 있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러나 싶었어요.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구나…."

그런 현 작가는 모르고 있었다. 그가 받을 돈 못 받고 스스로 고료 깎으면서 '무식아'를 살리고 '강철남'을 띄우려고 악전고투 하는 동안 팬들은 하나 둘 늘어 어느 새 수십만 단위가 돼 있었다는 사실을. 어제까지 A사이트에서 연재되던 작품이 오늘부터 B사이트로 옮겨도 그의 팬들은 귀신같이 B사이트를 찾아낸다는 사실도.

영웅 강철남까지 산전, 수전, 공중전에 수중전까지 경험한 현 작가는 지난해 10월부터 그나마 안정을 찾았다. 강철남의 후속작이자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도대체 왜?인구단'은 엔크린닷컴(www.enclean.com)이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났다.

1970~80년대 국내 만화계의 인기 캐릭터였던 까치와 둘리, 하니 등을 패러디해 축구선수로 등장시키는 '도대체 왜?인구단'에 와서야 현 작가는 비로서 작가답게 작품을 만들고 있다.

네이버 다음 등 유명 포털에 단 한번도 연재한 적이 없는 현작가가 성공한 것에 대해 만화가들은 "기적"이라고 한다.

현 작가는 그러나 "아직 성공은 멀었다"고 말했다.

"제 고생은 계속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다행이에요. 바닥에 있으면 올라갈 일만 있잖아요. 만약 제가 넘버원이었으면 앞으로는 내려가는 일 만 남은 거잖아요."

최고의 인기작가가 되고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 되는 게 꿈이지만 그는 당분간 이 꿈은 꾸지 않기로 했다.

"아직 저는 '100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태권V를 그리고 받았던 100원, 그 100원을 다시 받는 날이 제 꿈이 이뤄지는 날입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