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혀끝에 감치는 그 맛··· 이름만 들어도 침이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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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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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


‘끝내 입을 열지 않는 홍합이 있어/칼을 들이댄다.//끓여도 끓여도 열리지 않는 문/죽어서도 몸을 열지 못하는/그 안에 무슨 비밀 잠겼을까?/남의 속은 풀어주면서/제 속 풀지 못하는 홍합의 눈물/그토록 깊어 단단했구나.//들이댄 칼로 내 속을 찔리고 마는/죽어서도 못 열 비밀 하나쯤/간직하고 사는 붉은 니 마음/내 알리/알리’

<권천학의 ‘홍합’에서>

홍합(mussel)은 악착같다. 덕지덕지 바위에 떼로 붙어산다. 행여 떨어질세라 지악스럽게 붙어 있다. 태산 같은 파도가 등짝을 후려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홍합 껍데기는 울퉁불퉁 5각형이다. 우둘투둘한 바위와 아귀가 맞을 리 없다. 도대체 어떻게 바위에 딱 붙어 있을까. 그것은 ‘실 같은 발(족사·足絲)’ 덕분이다. 더부룩한 그 ‘털 다발’로 바위에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 홍합의 쇠고집은 그 섬유다발에서 나온다.

홍합은 속살이 붉거나 희다. 붉은 것은 암컷이고, 흰 것이 수컷이다. 맛에 큰 차이는 없다. 홍합은 ‘붉은 조개(紅蛤)’라는 뜻이다. 암컷의 붉은 속살을 빗대 부르는 이름이다. 담채(淡菜)라고도 한다. ‘담백한 바다풀 맛’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다의 모든 것이 짜지만 홍합만 싱겁기 때문에 담채라고 한다(규합총서)’는 것이다.

바다에 사는데 어떻게 짜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은 홍합이 가지고 있는 칼륨 덕분이다. 칼륨은 홍합 속에 축적된 나트륨을 제거한다. 자연정화장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부들은 보통 담치(참담치)라고 부른다.

홍합은 우리나라 전 해안에서 산다. 요즘은 양식이 대부분이다. 영남지방에서는 ‘합자나 열합’, 양양이나 강릉 속초 등에서는 ‘섭’ ‘섭조개’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본초강목에서는 ‘동해부인(東海夫人)’이라고 표시했다. ‘부인(夫人)’은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거나, 자기 아내를 이르는 말’이다. 왜 ‘부인’으로 표시했을까. 그것은 홍합이 여자의 생식기를 닮았다는 뜻이다. 아울러 ‘은근한 존중’을 나타낸다.

홍합에선 ‘감칠맛(umami)’이 난다. 감칠맛은 ‘제5의 맛’이다. ‘혀 끝에 오래도록 남아 맴도는 맛’ ‘돌아서면 뭔가 아쉬움이 남는 맛’이 바로 그것이다. 갓난아이가 맨 먼저 느끼는 맛도 감칠맛이다. 엄마 젖에 우마미 성분이 있기 때문이다. 감칠맛이 나면 입 안에 흥건히 침이 고인다. 위 속에선 소화액이 솔솔 나온다.

감칠맛을 내는 것들은 멸치(이노신산+글루탐산), 다시마, 양파, 김(이상 글루탐산), 토마토(글루탐산+아스파라긴산), 양파(프로필메르캅탄), 가쓰오부시(이노신산), 마른 표고버섯(구아닐산), 마른 새우(아데닐산), 조개(글루탐산+아데닐산+호박산) 등이다.

홍합은 글루탐산 글리신 알라닌 같은 아미노산과 젖산 성분이 듬뿍 들어 있다. 감칠맛을 내는 천연조미료인 셈이다. 다른 음식을 빛나게 해주는 데 으뜸이다. 탕이나 미역국에 넣으면 음식 맛이 확 달라진다. 실제 바닷가에서는 홍합 삶은 물을 농축해 천연조미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선 해물요리에 약방의 감초처럼 쓴다. 홍합수프도 즐겨 먹는다. 홍합은 프랑스어로 물(moule)이다. 물처럼 잘 먹지만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든다. 비싸다.

홍합은 센 불로 빨리 조리해야 한다. 약한 불에서 너무 오래 끓이면 향이 사라져 버린다. 강한 양념을 넣어도 홍합향이 죽는다. 홍합탕은 청주 반 숟갈 넣고 끓이면 비린 맛이 가신다. 홍합껍데기까지 넣어 같이 끓여야 깊은 맛이 우러난다. 국물이 시원하고 담백하다.

홍합은 겨울이 제철이다. 늦봄에서 여름까지는 산란기여서 식중독 위험이 있다. 홍합은 고단백 저지방 다이어트 식품이다. 간을 해독해주는 타우린이 풍부하다. 비타민C가 많은 콩나물과 같이 먹으면 지끈거리는 머릿속이 맑아진다. 빈혈, 현기증, 식은땀 나는 약골들에게도 그만이다.

술꾼들은 홍합탕에 열광한다. 뽀얀 국물에 청양고추 어슷하게 썰어 넣은 홍합탕. 생각만 해도 쓰린 배 속이 시원해진다. 양푼홍합탕으로 이름난 서울 홍익대 앞 홍가홍가(02-3143-0104), 부추 미나리 양파 마늘 된장 등을 풀어 끓여내는 양양군청 앞 섭국집 담치마을(033-673-0012), 홍합찹쌀죽으로 이름난 서울 대학로의 ‘張’(장, 02-742-4788) 등이 붐빈다.

홍합요리는 많다. 홍합찜, 홍합짬뽕, 홍합볶음, 홍합스파게티(사진), 홍합조림, 홍합버섯무침, 홍합두부된장찌개…. 그뿐인가. 홍합을 쇠고기와 조린 홍합초(골다공증 예방), 쇠고기 전복 찹쌀과 푹 끓여 후루룩 마시는 삼합미음은 또 어떤가.

울릉도에 가면 홍합밥집이 널려있다. 홍당무와 각종 채소를 넣어 짓는다. 양념장에 김가루 섞어 비빈 밥에 울릉도 특산인 명이나물(산마늘) 하나 얹어 먹는다.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다. 앗, 잠깐! 홍합밥은 홍합껍데기로 떠먹어야 안성맞춤이다. 그렇다. 홍합밥엔 숟가락이 필요 없다.

양식과 자연산 홍합은 하늘과 땅 차이다. 자연산 홍합은 껍데기가 흑진주처럼 반들거린다. 보랏빛이 살짝 감돈다. ‘찰브락 찰브락 일렁이는 물살에 검고 윤나고 걀쭉’(조재도 시인)하다. 양식보다 2, 3배 크고 또 그만큼 비싸다. 수염이 부얼부얼하다. 입은 꽉 앙다물고 있다. 껍데기가 매끈하지 않고 우둘투둘하다. 속초 강릉 등지에서 해녀들이 딴다. 홍합은 오래두면 껍질 안쪽에서 끈적끈적한 것이 흘러나온다. 신선하지 않다. 만져봐서 끈적이는 것은 사지 말아야 한다.

시장이나 포장마차 홍합탕은 대부분 양식이다. 향이 덜 난다. 국물 맛도 약간 밍밍하다. 하지만 그런 게 뭐 대수인가. 포장마차 밖으로 새 나오는 홍합탕 냄새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흠흠 들큼하고 엇구수하고 구뜰한 그 냄새. 가슴속이 얼부푼다. 땅거미 어둑어둑 내릴 무렵이면 더욱 그렇다. 포장마차 홍합탕은 꼭 월급쟁이를 닮았다. 간 쓸개 다 빼놓고 다니는 싱겁기 짝이 없는 사람들. 가도 가도 굽이굽이 아리랑길. 그렇다. 이 또한 언젠가 지나가리라!

‘출근길 밥상에/달랑 홍합국 한 그릇./양념하나 넣지 않고/급하게 물만 부어 끓였다는데/간도 적당하고/담백하니 참 시원하다.//마주 앉은 아내/화장기 하나 없이/반짝이는 물빛 얼굴로/미안한 듯 나를 바라보는데/절로 우러나는 웃음살이/그대로 홍합국 국물 맛이다.’<한승수의 ‘홍합국’에서>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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