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씹을수록 깊은 맛 우러나는 바다의 종합영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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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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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


‘생선가게 얼음상자 속에 널브러진 아귀 한 마리/쓸 데 없이 입만 커서 온몸이 주둥이인/그래, 사람들은 너를 아귀라 부른다/주둥이뿐이라 하지만/작은 지느러미 하나 버릴 것 없어/술안주에 그만인 아귀찜과…/쓸데없이 ×만 큰/온 몸이 성기인 나를,/아귀는 나를 아귀, 아귀(餓鬼)라 부른다’ <복효근의 ‘아귀는 나를 아귀라 부른다’에서>

아귀는 ‘조사어(釣絲魚·자산어보)’로 불린다. ‘釣絲(조사)’는 낚싯줄을 뜻한다. ‘낚시하는 물고기(Angler Fish)’인 것이다. 물고기가 어떻게 낚시를 할까. 아귀 주둥이 끝에는 두개의 실 같은 것이 달려 있다. 이를 흔들면서 작은 물고기를 유인하여 잡아먹는다. 작은 물고기가 낚싯줄을 무는 순간, 아귀는 줄을 당겨 통째로 삼켜버린다. 아귀는 입이 함지박만큼 크다. 게다가 배불뚝이다. 이빨도 날카롭다. 삼박자가 딱 맞는다. 입이 크면 머리도 클 수밖에 없다. 머리가 크면 헤엄을 잘 치지 못한다. 느리다. 잽싼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려면 상대를 ‘꼬드겨 다가오게’ 하는 수밖에 없다.

아귀는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마산은 ‘아구’, 부산은 ‘물꽁’, 인천은 ‘물텀벙’이다. 인천 어부들은 아귀도 물메기와 마찬가지로 물텀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잡자마자 역시 물에 “텀벙” 버렸다는 뜻이다.

아귀의 가장 맛있는 부위는 내장이다. 결코 살도 껍질도 아니다. 내장 중에서도 간의 맛이 으뜸이다. 아귀는 내장의 절반이 위다. 위 못지않게 큰 게 간이다. 아귀의 간은 프랑스 사람들이 으뜸 요리로 치는 푸아그라를 능가한다. 푸아그라는 ‘거위 간’이다. 프랑스어로 ‘살찐 간(fat liver)’이란 뜻이다. 거위를 꼼짝 못하게 해놓고 고단백 고지방 사료를 먹여 키운다. 그러다 보면 거위 간이 잔뜩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간은 지방 함량이 높아 맛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푸아그라는 매우 비싼 요리이다.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 때나 먹는 음식이다.

아귀 간은 자연산이다. 인공사료를 먹여 억지로 키운 간이 아니다. 맛도 영양도 거위 간보다 좋다. 서양 사람들이 아귀를 왜 ‘거위 물고기(Goose Fish)’라고 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들에게 아귀는 ‘바다의 푸아그라’인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아귀찜을 즐긴다. 원조는 단연 마산이다. 마산아귀찜은 마른 아귀를 쓴다. 12∼2월에 잡은 아귀를 얼음물에 씻어 칼바람에 20∼30일간 말려 찜을 한다. 말린 아귀의 가시를 발라내고 부드럽게 펴 갖은 양념을 얹어 쪄낸다. 콩나물 미나리 대파 찹쌀가루 등이 들어간다. 말린 아귀는 맛이 쫄깃쫄깃하고 비린내가 없다.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멸치국물과 된장으로 감칠맛을 더한다. 미더덕은 쓰지 않는다. 아귀의 향이 덮이기 때문이다. 콩나물도 대가리는 따내고 줄기만 넣는다. 마른 아귀의 쫄깃쫄깃한 맛을 죽이기 때문이다.

부산아귀찜은 생아귀를 쓴다. 인천 군산도 마찬가지이다. 생아귀는 물컹하고 약간 푸석하다. 비린내가 많아 온갖 양념으로 이를 죽인다. 고춧가루는 물론 미더덕 마늘 후추 생강에 방아잎까지 총동원한다. 부산생아귀찜의 최대 장점은 아귀 내장의 쫀득쫀득한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른 아귀를 쓰는 마산아귀찜에선 기본적으로 내장 맛을 볼 수 없다. 별도로 아귀내장수육 같은 것을 시킬 수밖에 없다.

마산아귀찜은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한다. 그 깊은 맛 때문이다. 부산 생아귀찜은 젊은층들이 즐긴다. 싱싱한 맛 때문이다. 요즘은 한 집에서 마른아귀찜 생아귀찜을 동시에 취급한다. 최고 별미인 아귀 간은 별도로 빼내 따로 파는 집이 대부분이다. 아귀불고기도 일품이다. 생아귀 살을 발라내 포를 뜬 뒤 양념에 재웠다가 굽는다.

아귀찜은 누가 뭐래도 마산오동동 아귀찜골목이 으뜸이다. ‘원조’ ‘진짜진짜’ ‘원조본가’ 등 원조 논쟁에 눈이 어지럽다. 오동동진짜초가집(055-246-0427), 구강할매아구찜(055-246-0492), 오동동아구할매집(055-246-3075)이 붐빈다. 부산에선 물꽁식당(051-257-3230), 인천에선 성진물텀벙(032-883-1771), 서울에선 강남구 신사동 아귀찜골목이 이름났다. 상호가 역시 마산 일색이다. 원조마산일번지, 참마산, 신마산아구, 신마산아구찜본점, 마산방박사아구찜…. 마산아구찜(02-544-4304), 마산집(02-544-7207) 부산집(02-546-9947)에 사람이 많다. 낙원상가 아귀찜골목의 마산아구찜(02-763-7494), 옛날집낙원아구찜(02-763-8558)과 방배동 카페골목의 반월아구찜(02-532-9675)도 술꾼들이 자주 찾는다.

아귀는 가축사료나 퇴비용으로 썼던 생선이다. 하지만 아귀는 영양덩어리이다. 바다의 종합영양제이다. 버릴 것 하나 없는 ‘바다의 호박’이다. 고단백에 칼슘 비타민A, E가 풍부하다. 뼈에 좋고 노화방지와 눈 피로에 효과가 있다.

아귀는 등이 검고 배가 흰 아귀가 맛있다. 배와 등 모두 검은 것은 맛이 덜하다. 너무 작은 것도 맛이 떨어진다. 적어도 3kg 이상은 돼야 먹을 만하다. 그 정도는 돼야 내장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중국산도 맛이 좀 그렇다. 내장이 붙어있는 것이면 대충 국산이라고 보면 된다. 내장을 뺀 것은 중국산이거나 냉동인 것이 많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아귀를 찜이나 탕으로 먹는다. 아삭아삭 콩나물에 향긋한 미나리를 섞는다. 불나게 매운 고춧가루는 기본이다. 여기에 생강, 다진 마늘을 넣어 ‘천불나게 맵도록’ 만든다. 술꾼들은 미친다. 온몸에 우우 소름이 끼친다. 비 오듯 땀을 뻘뻘 흘린다. 머리에 주뼛주뼛 쥐가 난다. 지난밤 퍼마셨던 독주가 땀구멍을 타고 방울방울 맺힌다. 땀 한 말 쏟는 것은 금방이다.

시름시름 감기에 걸린 사람도 아귀찜을 먹고 나면 힘이 불끈 솟는다. 입덧하는 임신부들도 그렇다. 한 손은 연방 손부채질 하면서, 한 손의 젓가락은 아귀찜을 향한다. 동치미 국물을 자꾸만 들이키면서도, 아귀아귀 잘도 먹는다.

요즘 제대로 된 아귀찜 먹기가 쉽지 않다. 아귀는 거의 보이지 않고 콩나물과 미나리 더미만 쌓인다. 하기야 아귀 같은 세상,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음식이 어디 쉬운가? 아귀가 맞지 않으니 아귀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자꾸만 손아귀의 힘을 빈다. 뚜두둑! 손가락 마디를 풀어댄다.

‘아구는 거의 없고 뼈만 씹히고/양념이 산더미 같은 아구찜,/버얼건 양념을 먹으세요, 매운 양념을,/아구라는 놈은 대가리가 크고 넓적해도/살은 몇 점 안 되니까.//아구찜인지 아귀찜인지/이 아귀세상/온갖 양념이 당신을 요리하는 세상이니/아구찜을 먹으세요, 입 큰 고기/아귀처럼 아귀아귀 먹으세요/당신도 매운 사람이 되세요’

<최승호의 ‘아구찜 요리’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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