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쌀쌀한 겨울날… 그리워라! 얼큰하고 시원한 그 맛, 생태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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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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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하하하/피가 되고 살이 되고/노래 되고 시가 되고/약이 되고 안주 되고/내가 되고 니가 되고/그댄 너무 아름다워요/그댄 너무 부드러워요/그댄 너무 맛있어요//감사합니데이//내장 창난젓 알은 명란젓 아가리로 만든 아가리젓 눈알은 구워서 술안주하고 괴기는 국을 끓여 먹고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명태!/그 기름으로는…또 약용으로도 쓰인데제이요’ <가수 강산에의 ‘명태’에서>

명태(明太·Walleye Pollock)는 찬물에서 사는 흰살 생선이다. 그 이름이 많다. 사람으로 치면 호(號), 자(字), 아호(雅號), 어릴 적 이름, 계절별 이름, 죽은 상태에 따른 이름 등 줄줄이사탕, 끝이 없다. 새끼명태는 노가리, 냉동하지 않은 싱싱한 것은 생태, 꾸덕꾸덕하게 반쯤 말린 것은 코다리, 완전하게 얼린 것은 동태, 두 달 정도 바짝 말린 것은 북어, 봄에 잡힌 춘태, 산란 후에 잡힌 꺽태, 작은 것은 막물태, 애기태 그리고 강태. 망태, 백태, 왜태, 조태, 진태….

그뿐인가. 황태덕장에서도 여러 이름이 있다. 덕장에서 머리가 떨어져 나간 것은 무두태, 몸이 부서진 것은 파태, 속이 붉고 딱딱한 놈은 골태, 검은빛을 띤 놈은 흑태…. 명태는 덕장에서 ‘사람 손이 수십 번 넘게 가야 황태’가 된다. 서너 달 동안 스무 번 이상 얼렸다 녹였다 해야 한다. 적당하게 춥고, 바람도 알맞게 불어줘야 한다. 결국 황태는 하늘이 만들어 준다. 황태는 속살이 노르스름하고 부드러워야 한다. 기계로 말린 것은 흰빛이 나며 딱딱하다.

날씨가 쌀쌀하다. 얼큰하고 시원한 생태찌개가 간절하다. 생태는 갓 잡아 올린 명태를 말한다. 생태찌개의 맛은 생태가 얼마나 싱싱 하느냐에 달려 있다. 두말할 것 없이 동해에서 갓 잡아 올려 끓인 것이 으뜸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동해에선 명태가 잡히지 않는다. 국내 명태는 대부분 오호츠크 해와 베링 해, 일본의 홋카이도 부근에서 잡아온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명태보다는 명태알(다라코)로 만든 명란젓을 더 좋아한다. 고기는 주로 어묵원료로나 쓴다.

생태는 얼리지 않고 급속냉장 상태에서 들여온 것이다. 얼린 상태로 들여온 것은 동태이다. 선박보다 항공기로 들여온 것이 40∼50% 비싸다. 그물로 잡은 그물태보다 낚시로 잡은 낚시태가 2배 이상 비싸다. 그물로 잡으면 서로 몸을 부대낄 수밖에 없다. 피멍이 들어 그만큼 신선도가 떨어진다.

생태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제철이다. 생태는 눈이 맑고 아가미가 선홍색이어야 신선하다. 비늘이 떨어지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생태는 신선할 것일수록 담백하다. 비린맛이 전혀 없다.

생태찌개에는 무와 두부가 필수다. 여기에 미나리 쑥갓 콩나물 모시조개 팽이버섯 애호박 등을 넣는다. 미나리 쑥갓은 다 끓은 뒤 맨 마지막에 넣어야 향이 사라지지 않는다. 장안의 내로라하는 집일수록 국물이 독특하다. 그 비법은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 멸치다시마 국물은 기본이다. 고추장보다는 고춧가루를 써야 제맛이 난다. 고추장을 쓰면 텁텁하다. 다진 마늘, 생강, 대파 등으로 양념하고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을 맞춘다. 거품은 수시로 걷어낸다.

생태찌개맛과 동태찌개맛은 차원이 다르다. 동태로는 차라리 동태전을 만들어 먹는 게 낫다. 아삭아삭한 열무김치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보글보글 끓는 생태찌개는 술꾼들의 해장에 그만이다. 수컷 명태의 정소인 고니는 고급안주로 쓰인다. 고소하다.

명태살은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다. 열량이 낮으면서도 영양은 많다. 담백하다. 칼슘 철 등이 골고루 들어있다. 나쁜 독도 풀어준다. 옛날 연탄가스중독 때 북어국물을 끓여먹으면 머리가 맑아졌다.

일본에도 생태찌개 비슷한 음식이 있다. 생태에 두부 채소 등을 넣고 끓인 ‘다라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고춧가루를 쓰지 않은 맑은 탕이다.

서울 장안엔 ‘생태찌개 3대 천왕’이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부근의 안성또순이(02-733-5830), 마포구 용강동 조박집골목의 진미생태찌개전문(02-701-3274), 용산구 삼각지 한강집(02-716-7452)이 그 주인공이다. 값이 조금 비싼 편이지만(소 2만4000∼3만2000원, 대 4만∼5만4000원) 그만큼 생선이 신선하고 좋다. 안성또순이의 ‘동그랑땡’이나 진미생태찌개전문의 밑반찬 ‘볶음김치두부’도 입맛을 당기게 한다.

이 밖에 관악구 봉천동 서울대입구역 부근의 갯바위(02-878-7728), 프라자호텔 뒤편 중구 북창동의 속초생태집(02-753-8944), 영등포구 여의도의 수정생태(02-784-4745), 강남구 논현동의 장성생태탕(02-3446-0037), 종로구 인사동 부산식당(02-733-5761), 송파구 잠실 알천생태찌개(02-2202-6633), 강남구 역삼역 부근의 맛있는 생태찌개(02-557-5530), 송파구 문정동 옥이생태찌개(02-400-0353)도 발길이 붐빈다.

명태의 ‘명’은 밝을 ‘明(명)’자이다. ‘눈 어둔 사람이 명태간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옛날 명태의 간 기름으로 등불을 밝혀서 그랬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인간을 이롭고 밝게 해주는 생선임에는 틀림없다.

도대체 그 많던 명태는 어디로 갔을까. 명태는 10년 넘게 사는 고기이다. 명태는 한번에 알을 수없이 낳는다. 그 알에서 헤아릴 수 없는 새끼(노가리)들이 구물구물 나온다. 오죽 하면 쓸데없는 말을 헤프게 많이 하는 사람을 ‘노가리 푼다(깐다)’고 했을까.

1970년대 우리 어민들은 그 노가리들을 닥치는 대로 잡았다. 그게 명태 새끼가 아니라 전혀 다른 생선인 줄 알고 잡아댔다. 이젠 그 흔하던 노가리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과연 노가리가 있기는 있는 걸까. 있다면 도대체 그 노가리들은 어디에서 크고 있을까.

‘동해 겨울바다에 그물을 던지면/알배기 명태 대신/멸치 오징어 고등어, 난류 고기떼들/열대해역의 독가시치들까지//꽃은 계절을 앞질러 피고/대설 지나고도 내릴 줄 모르는 첫눈//…//위험수위 넘어/수면 밖으로 머리를 뽑아들고/가쁜 숨 몰아쉬는//아아, 맑은 정신 산란해야 할/한류 물고기//명태의 바다는/어디인가’ <안영희의 ‘명태’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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