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9>똥꽃

  • 입력 2009년 1월 6일 03시 00분


《“줄곧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 너랑 어머니랑 바꿔서 살아볼래?’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옷에 똥을 누는 사람보다 그 똥을 치울 수 있는 사람이 몇 배는 행복한 줄 알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똥을 쌌는지 된장이 끓는지도 모르는 사람보다 아직은 멀리서도 똥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잊지 말라고도 했다.”》

치매 어머니를 바꾼 시골생활

귀농한 농부인 아들은 어느 날부터 가족 형제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전북 완주군의 시골에 집을 구했다. 서울에 사는 치매 걸린 어머니와 함께 살 집이었다. 아들은 평생을 시골에서 사신 어머니의 정서에 맞는 집을 찾았다.

그는 귀도 멀고 대소변도 잘 못 가리는 여든여섯 어머니가 계실 곳은 사시사철 밥도 받아먹고 대소변도 해결하는 두 평 남짓한 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시게 하는 건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가두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책은 그렇게 해서 2006년 시작된 아들과 치매 걸린 어머니의 생활기다.

저자는 오래된 빈집을 구해 지붕을 일으켜 세우고 화장실도 새로 만들었다. 자연과 순환하는 집을 짓되 집의 구조는 전적으로 늙으신 어머니가 기준이 됐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파란 하늘도 보여주고 바위와 나무, 비와 눈, 구름도 보여드리고 싶었다. 철따라 피고 지는 꽃과 시시각각 달라지는 계곡의 바람결도 느끼시게 하고 싶었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어머니는 대소변을 못 가릴 정도로 위축돼서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요양보호사 전문강사인 이진희 씨가 ‘차라리 시설 좋고 숙련된 의료진과 간병 인력이 있는 노인병원이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았다. 얼굴이 환해지고 기억력이 또렷해졌다. 일상 활동도 나아졌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3월, 펄펄 눈이 오는 밖을 내다보다가 어머니가 하는 말. “저기 눈 아이가? 눈이 다 내리네. 이기 몇 년 마이고. 눈 맞네. 세상 참 좋아졌네.” 아들은 “여러 해를 햇볕 한 줄기 들어오지 않고 잿빛 하늘을 손바닥만 한 창문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도시의 방 안에서 형광등 불빛만 의지해 사셨던 어머니 생각을 하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고 말한다.

날씨가 풀리면 어머니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봄나물을 옛말과 사투리로 일일이 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평생 시골에서 사신 어머니에게 시골의 모든 것은 가장 자신 있고 친숙했다. 도시의 세련된 집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는 혼자 마음대로 돌아다니다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해 식구들을 안타깝게 만드는 치매 노인들을 일주일에 몇 번씩 식구들이 모시고 나들이를 시켜주면 그런 증세가 없어질 것이라 말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대소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멀쩡한 사람을 감금해 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 집을 못 찾는 치매 노인의 심리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집안일도 하고 배추도 심고 수제비로 아들의 밥상을 차린다. 그러고는 “요즘 나 밥값 하제?”라고 묻기까지 한다. 배추 심으러 갔다가 어머니 바지가 축축해서 “어머니 오줌 누셨네요” 했더니 “뭐 어때. 어차피 집에 가서 씻을 낀데” 하는 여유도 되찾는다.

아들은 일부러 양말을 찢어 방에 누운 어머니 쪽으로 발을 살그머니 밀어놓기도 한다. 그걸 본 어머니는 “양말 그거 벗어 이리 줘라. 누가 보믄 지 에미도 없는 줄 알겄다”라며 양말을 깁는다. 어머니를 환자가 아니라 어머니로 대하는 아들의 정성이 아름답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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