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1>붉은 벨벳 앨범 속의 여인들

  • 입력 2008년 12월 24일 02시 59분


◇ 붉은 벨벳 앨범 속의 여인들/김애령/원미혜 엮음

《“성매매집결지 여성들과의 만남은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선정적이거나 단편적이라는 반성적 질문에서 출발했다. ‘성매매 근절’이라는 당위는 확고해 보이지만, 그것이 대상으로 하는 그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공간’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추상적이며, ‘합법화’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이 한편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그 공간을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색안경 벗고 본 성매매여성들

이 책은 서울 용산역 주변 성매매집결지에서 삶을 꾸려 온 아홉 명의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 가는 ‘아가씨’와 호객행위를 해 손님들을 데려오는 ‘펨푸’, 그들을 관리하는 업주들…. 이곳을 삶의 터전이자 근거지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삶의 내력을 털어놓는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연구자와 인터뷰 대상자의 두세 차례에 걸친 만남(인터뷰)을 바탕으로 정리된 글은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그들이 성매매업소에 오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나름의 삶의 방식을 살펴본다

위법 혹은 타락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살피면 이들 역시 끈끈한 인간애와 정이 넘치는 평범한 인간이자 열악한 환경을 감수하고 억척같이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기 위해 애쓴 주변의 이웃들이기도 하다.

일을 처음 시작하고 난 뒤 아이들을 성매매집결지에서 키워야 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는 업주는 데리고 있던 ‘아가씨’들과 마주쳤던 이들을 통해 이곳 역시 어떻게든 삶을 꾸려 가려는 이들이 모인 공간임을 알려준다. 데리고 있던 아가씨에게 ‘다시는 이런 곳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말해 주는 업주, 성매매업소를 소개해 준 친구를 원망하기보다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준 것뿐’이라고 담담히 말하며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이들이 이곳에서 하루를 꾸리며 살고 있다.

성매매공간은 이들에겐 삶의 터전이자 직장이기도 하다. 어떤 여성들은 그 일을 엄연한 노동의 일종으로 받아들이고 생활을 이어 간다. 성매매 단속이 심해지고 집결지가 폐쇄돼 이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들에게 ‘직장의 파산’과도 같다. 이곳밖에는 일할 수 있는 곳이 없는 여성들도 있다. 배우지도 못했고 아는 것도 없기 때문에 한번 발 들인 곳으로 계속 가게 됐던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체념하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고민하거나 주어진 일상생활 속에서 활발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통념을 깨기도 한다.

수용소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했지만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다 ‘자유’를 택하기 위해 다시 용산으로 돌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는 이곳을 떠나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때로 이들의 삶에 더 큰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책에 실린 인터뷰는 최대한 어투까지 살려서 녹취록과 흡사하게 옮겨 놓았다. 인터뷰는 2004년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성 판매 여성들의 전업 문제 등 현안을 위해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을 이해해 보자는 취지에서 진행됐다. 특정한 주장이나 대안 제시는 없지만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살린 글들은 이들에 대한 사회의 몰이해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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