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8>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 입력 2008년 12월 19일 03시 00분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한다/김경환 지음/푸른나무

《“화두를 깨쳤다고 해야 할까. 봉사하는 삶, 비로소 삶의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좌절과 방황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 마침내 그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온몸에서 불끈불끈 힘이 솟았다.”》

시각장애인의 눈부신 이웃사랑

전북 김제시 남포리에 사는 1급 시각장애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단지 시각장애인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시각장애인은 남포리에서 활발한 봉사활동으로 유명하다. 김제 남포리의 상록수라 불리는 오윤택(47) 씨.

마을 사람들의 어려운 일에 어김없이 발 벗고 나서는 오 씨의 성품을 저자는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년)의 주인공에 비유했다.

책 기획자인 저자는 그를 만나기 위해 김제시를 방문했을 때부터 그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을 확인한다. 저자가 김제역에 도착했을 때 차로 저자를 마중 나온 목사는 “택시를 타도 되는데 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저자의 말에 이렇게 말한다. “무슨 말씀을. 다른 일도 아니고 윤택이 일인데.” 그 뒤로도 저자는 여러 차례 그런 경험을 한다. 오 씨와 함께 차를 기다리고 있으면 어디선가 택시가 나타나 “윤택이 어디 가는가?” 하고 멈춰 선다. 오 씨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윤택이 왔는가?” 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밥값을 치르고 나갔다.

그는 마을 어린이를 위해 도서관을 설립했다. 이제 도서관에는 1만5000여 권의 책이 가득하다. 컴퓨터 보급을 위해 마을에 정보화센터를 설립했다. 마을의 노인들을 속여 잇속을 챙기는 약장수와 싸워 몰아냈고, 마을 어민들이 잡은 갯지렁이를 1kg만 제값을 쳐주고 나머지는 헐값에 사려고 담합한 중간 상인들의 횡포를 해결했다. 쌀 무게가 적게 나가도록 조작한 농협의 비리를 들춰냈고 마을의 환경을 훼손하는 닭고기 가공업체의 유치 계획을 무산시켰다.

이 모든 일을 1급 시각장애인이 해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자꾸 눈을 비비는 게 이상했던 그의 어머니는 병원에 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거의 없었다. 전국의 병원을 다녀도 고칠 수 없었다. 무면허 의사가 고칠 수 있다 해서 수술을 맡겼다. 어린 오 씨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었다. 의사는 좋아질 것이라 말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붕대를 감은 아이의 눈가가 벌겋게 물들었다. 어머니의 등에 업힌 아이가 어머니의 등에 연방 눈을 비볐다. 아이의 피눈물에 어머니의 저고리가 물들었고 어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오 씨는 가난과 시각장애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버섯공장, 염전,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건설 현장에서 쇠뭉치가 무릎을 치는 바람에 평생 다리를 절고 살아야 했다. 스물네 살 무렵에는 허리를 심하게 다쳐 더는 일할 수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마을 뒷산에 올라가 텐트를 치고 두 달을 살았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늘 남의 신세만 지고 살지 않았는가. 힘겨운 삶이지만 혼자 힘만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다. 내가 남들의 힘이 돼야겠구나.”

이 책의 제목은 남에게서 도움만 받지 않고 이웃을 위해 한평생 봉사해온 오 씨를 은유한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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