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재발견 30선]<28>음식의 역사

  • 입력 2008년 11월 19일 02시 59분


《“문명화된 인간에게는 곡식이 육류를 대신해 식사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수메르인의 주된 식재료는 보리, 밀, 수수, 콩류, 순무, 양파, 부추, 신선한 녹색상추, 겨자 등이었다. …쇠고기는 그것을 사먹을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편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는 그 노동가치가 다 없어졌을 때에만 도살되었기 때문에 고기는 몹시 질기고 힘줄이 많았을 것이다. 기원전 2400년경의 궁중 물품명세서에 따르면 사실상 ‘늙은 수소들’은 종종 ‘개의 사료’가 되었다.”》

신대륙 발견은 절인 쇠고기 덕?

음식을 중심으로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본 책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저명한 역사가인 저자는 음식이 어떻게 역사에 영향을 미쳤는지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했다.

선사시대 불을 사용해 요리를 하게 되면서 인간은 전에는 소화할 수 없었던 여러 식품을 먹게 됐다. 굽고 끓이는 방식을 익히면서 조리에 필요한 용기도 사용하게 됐다. 토기와 청동기가 발명되기 전 인간이 널리 이용한 조리용기는 동물의 위(胃). 불을 지핀 뒤 음식재료를 집어넣은 동물의 위를 그 위에 매달아 익혔다. 유목민인 스키타이족은 기원전 5세기에도 솥이 없을 때는 이 밥주머니에 음식을 요리했다.

인간이 수렵만이 아니라 동물 사육을 시작한 것은 기원전 8920년경이었다고 한다. 처음 길들인 동물은 야생곡식 들판에서 번식하기 시작한 양과 염소. 그 다음으로 기원전 7000년경 돼지가 농가의 헛간에 등장했다. 주요한 식용동물 중 가장 늦게 사육된 것은 사납고 날랜 야생의 소였다. 소는 터키와 마케도니아의 일부 지역에서 기원전 6100∼5800년 키우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대별 음식에 대한 소개도 흥미롭다. 기원전 4세기경 돈 많은 아테네인들은 과식으로 죽은 돼지를 진미로 여겼고 젖은 곡식을 먹여 살찌운 거위를 즐길 정도로 맛의 쾌락에 탐닉했다. 고대 로마도 그에 못지않았다. 색다른 외국 식품이 유행하면서 로마인들은 절인 야채는 스페인, 햄은 갈리아, 굴은 영국, 향신료는 인도네시아로부터 수입했다.

중앙아시아 초원인 스텝지대 유목민들이 새로운 방목지를 찾아 유럽과 중국, 인도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동물의 피와 말 젖을 식량으로 이용했기 때문. 동물 피와 말 젖은 불을 피워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외부 적의 눈을 피하는 데도 용이했다.

선사시대 이래 장기여행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휴대식품의 발명이었다. 중국인들은 2000여 년 전부터 말린 뱀을 즐겼고 인도인들은 여행할 때 말린 생선을 가지고 다녔다. 페루인은 육포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또 유럽의 선원들이 장거리 항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소금에 절인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휴대식품의 도움으로 향신료와 금을 찾아 신대륙에 닿은 유럽인들은 그곳에서 접한 옥수수와 감자, 고추, 토마토 등을 전 세계로 전파했다.

19세기 중후반 영국에서 ‘피시앤드칩스(fish-and-chips·생선튀김과 감자튀김)’가 등장해 번성한 배경에는 증기트롤선 개발과 철도, 냉동·냉장기술의 발달이 있었다. 어부가 생선을 얼음에 채워 빠른 배와 철도를 이용해 도시로 실어 보낼 수 있게 되면서 영국의 대표 음식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

저자는 “음식은 상업의 영역을 확대하고 침략전쟁을 초래했으며 신세계의 발견을 촉진했다”며 “음식 없이는 역사도 인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