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재발견 30선]<17>헝그리 플래닛

  • 입력 2008년 11월 3일 03시 01분


《“이 책에 실린 24개국 가족들의 이야기와 일주일치 식품 사진을 보면 선진국으로 갈수록 가공된 포장 식품을 많이 먹고 있다는 사실을 대번에 알게 됩니다. 한때 이들 나라에서도 전통적인 식품을 많이 먹었지만 가공 식품이 전통 식품들을 식탁에서 몰아낸 것입니다. 식습관의 변화와 더불어 몸을 덜 움직이고 요리를 덜하고 편리한 포장 식품만 찾으니, 왜 선진국 국민이 건강을 위협받을 정도로 영양 과다 상태가 되었고 심지어 비만과 당뇨 등 각종 성인병까지 걸리게 되었는지 아시겠지요.”》

지구촌 건강 빼앗는 가공식품

이 책은 24개국 30가족의 식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들이 하고 싶은 얘기의 핵심은 서문에 밝힌 대로다. 가공 식품의 범람으로 영양의 균형이 깨진 현대인들의 식습관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그런 비판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는다. 각국의 가족이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하는 것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각각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음식뿐 아니라 각국의 고유한 문화도 들여다볼 수 있다.

호주의 리버뷰에 사는 더그 브라운 씨 가족의 아침식사 주 메뉴는 ‘더그표’ 과일 샐러드다. 과일을 썬 뒤 크림과 설탕을 듬뿍 얹은 것.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샐러드와는 거리가 있다. 브라운 씨는 시리얼도 망고 주스에 말아 크림을 얹어 먹는다. 그 결과 체내 혈당이 높아졌다.

부탄에서 매운 고추는 양념이 아니라 야채다. 부탄 사람들은 끼니때마다 매운 고추를 먹는다. 싱케이에 사는 남가이 씨 가족의 저녁 식사는 붉은 쌀밥과 고추, 시금치 카레가 전부. 불교 신자여서 자신이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가 사고를 당해 죽거나 나이가 들어 자연사하면 그 고기는 먹는다.

라몬 코스타 씨를 비롯해 쿠바 사람들은 1990년대 초까지 마당에서 돼지를 키웠다. 자라면 잡아먹으려고 키운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쿠바에서 돼지를 키우는 집이 거의 없다. 키우지 않더라도 고기를 구하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 근교에 사는 델핀 르모안 씨는 프랑스 젊은이들이 요즘 미국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전통 요리들이 사라질까 봐 걱정이다. 그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시간에 쫓기면 가까운 맥도널드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저자들은 일본의 한 백화점에서 초콜릿 하나를 정사각형 종이로 싸서 앙증맞은 상자에 넣은 뒤 리본으로 묶는 장면을 목격했다. “일본에선 음식이란 먹기에 좋아야 하지만 보기에도 그만큼 좋아야 한다는 믿음이 퍼져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패스트푸드가 범람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크레이그 캐븐 씨 부부는 영양을 고려해 염분이나 지방을 따지면서 장을 본다. 균형 잡힌 식습관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대개 집에서 식사를 한다. 하지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아이들을 맥도널드에 데리고 간다. 옳은 일을 한다는 게 늘 쉽지만은 않은 법이다.

저자들은 각 가족이 일주일 동안 먹는 식품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는 것으로 취재를 마무리했다. 가공 식품이 수북이 쌓인 미국 가정, 직접 기른 야채들을 가지런히 정리한 에콰도르의 가정, 배급받은 곡물 몇 가지만 달랑 내놓은 차드 난민촌의 가족…. 사진 한 장 한 장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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