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풍경 20선]<13>경성 트로이카

  • 입력 2008년 9월 12일 02시 44분


◇경성 트로이카/안재성 지음/사회평론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경성의 아침은 노동자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경전회사 운전사와 차장을 실은 전차가 새벽 공기를 뚫고 달리며 경성의 아침을 알렸다. 밝아 오는 하늘을 등지고 동대문 옛 성문이 윤곽을 나타내면 텅 비었던 네거리에 일을 찾아 나선 막일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작업복 입은 사람들부터 양복쟁이와 한복 입은 여자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전차를 타고 일터로 향했다.”》

어느 사회주의 혁명가의 ‘불꽃 투쟁’

이 책은 영화 같은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혁명가의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활동하던 노동운동 조직이 있었다. 이들은 주로 서울 동대문 일대 방직공장에서 파업을 주도했다. 당시 수많은 노동운동 조직이 있었다. 대부분 노동자협의회, 무산자동맹 같은 건조한 정치적 용어로 이뤄진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 조직의 명칭은 경성 트로이카. 지도자는 이재유(1903∼1944)였다. 그는 일제의 검거망을 번번이 뚫어 일제로부터 ‘신화적 인물’로 불렸던 혁명가다. 일제에 체포된 뒤 변절을 거부하다 광복을 1년 앞두고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재유는 3년간 70번이나 일본 경찰에 체포당했는데도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감시하던 일본 경찰을 감화시켜 서대문경찰서를 두 번이나 탈출했다. 탈출 뒤 반 평 지하 공간에 40여 일 숨어 있다가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기도 했으며 2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비밀 활동을 했다. 다시 그를 잡은 일본 형사들이 이재유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할 정도였다.

‘트로이카’는 삼두마차라는 뜻. 이 조직을 이끌었던 나머지 2명은 광복 후 빨치산 총대장을 지낸 이현상, 남로당 총책을 지낸 김상룡이었다.

저자는 ‘경성 트로이카’의 여성 조직원이었던 생존자를 만나고 방대한 자료를 뒤져 찾아낸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이 명멸해 간 한국 근현대사에서 의미 없이 잊혀졌던 영화 같은 이야기를 문학으로 복원해 냈다.

이 소설은 계란형의 곱상한 얼굴에 적당히 활달한 성품을 가진 아이 이재유가 1919년 3·1운동 이후 사회주의자로 커가며 일제에 맞서는 과정을 그렸다. 경성 트로이카는 1930∼1940년 해외에서 무장투쟁을 주도한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달리 한국 땅에서 일제에 저항하고 고문과 폭력, 투옥 위험을 감수했다.

이 소설은 이재유의 일생을 재구성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여기저기 공장이 생겨나고 일제의 부당한 착취에 반발하는 파업이 빈발할 수밖에 없었던 1930년대 경성의 모습을 생생히 그렸다.

화려한 일본인 거리나 조선인 부촌과는 거리가 먼 경성의 비참한 빈민촌을 자세히 묘사한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 영화가 유행한 당시 문화상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1930년대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며 그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주의라는 노선을 택한 운동가들의 일상도 흥미롭다.

활동가들은 지금의 을지로 충무로 거리에서 일제의 감시를 피해 몰래 접선하거나 위장 결혼식을 올렸다. 또 일제에 고문을 당하면서도 하루 동안 아지트를 발설하지 않아 동료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기도 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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