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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소통]그림이 없다, ‘대화’를 걸었다

입력 2011-04-05 03:00업데이트 2011-04-0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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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석 ‘평범한 이방인’展 해설자-관객의 대화 퍼포먼스
■ 조현진 ‘…번역서비스 사무소’展 공모참여자의 글 번역해 전시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작가 김홍석 씨(왼쪽)의 ‘평범한 이방인’전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작품이 아니라 말로 이뤄 진 전시다. 작가는 다섯 명의 배우 출신 해설자에게 자신이 쓴 글을 관객에게 말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겼다.(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창성동으로 옮긴 사루비아 다방은 조현진 씨의 ‘무빙 이미지 번역 서비스 사무소’를 이전 후 첫 프로젝트 로 선보였다. 조 씨는 영상작가 10명의 작가노트를 영어로 번역(무료)하는 작업을 진행했다.(오른쪽)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전시장에 들어가도 눈으로 감상할 작품은 없다. 볼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빈 의자에 앉으니 앞에 앉은 여성이 말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저는 물에 관한 미술작업을 설명하겠습니다.” 시각화하기 힘든 물을 미술적 표현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법을 말로 설명해준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2층에서 9일∼5월 1일 열리는 김홍석 씨(47)의 ‘평범한 이방인’전은 말로 이뤄진 전시다. 실재와 허구를 뒤섞고 비틀어 동시대 사회 정치 문화 현상을 탐색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글이 해설자의 말을 통해 완성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02-733-8945).

작가는 의자, 돌, 물, 사람, 개념 다섯 단어를 미술로 전환하는 자신의 구상을 텍스트로 만들어 이를 다섯 명의 남녀 연기자에게 전달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은 해설자로 나서 자신이 이해한 대로 작가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한다. 작가는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텍스트 내용이 아니라 해설자와 관람객의 만남 그 자체”라며 “마음의 문을 연 관객이 이야기에 빠져들고 대화를 이어가면서 매번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6일까지 이어지는 조현진 씨(31)의 ‘무빙 이미지 번역 서비스 사무소’전에서도 말과 텍스트를 중시하는 미술계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02-733-0440).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창성동으로 옮긴 대안공간 ‘사루비아 다방’의 이전 후 첫 행사로 전시와 오픈 스튜디오 형태의 미술프로젝트다. 작가는 전시장을 평범한 사무실처럼 꾸며놓고 공모를 통해 선정된 영상작가 10명의 작가노트를 영어로 무료 번역하는 과정을 진행했다.

○ 귀로 듣는 작품

‘평범한 이방인’전은 텍스트를 쓴 원작자, 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해설자, 이를 듣는 감상자 간 관계와 소통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해설자가 메시지를 일방통행으로 전하는 게 아니라 관객 반응에 따라 대화를 이어가는 즉흥 연극적 요소도 있다. 그래서 정해진 결말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구조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전시의 핵심이다. 말이 중심인 전시에 걸맞게 심보선 시인 등이 자신의 작업을 구술로 설명하는 ‘말 특정적’ 강연 시리즈도 펼쳐진다. 작가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를 통해 의도적으로 미술가의 권위를 축소한다. 그 대신 자신이 작성한 원작에 대한 해설자의 이해와 해석이, 관객과의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매번 새로운 이야기로 발전하는 여지를 남겨놓는다. 작가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 관객들이 남의 이야기를 맘 편하게 귀 기울여 듣는 용기를 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체험의 과정은 전시장에서 접했던 오브제를 통한 간접 소통이 아니라 관람객의 적극적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직접적 소통을 체험하게 이끈다. 작품에 관한 김 씨의 아이디어를 제3자의 구술로 전해 듣는 것이 꽤 흥미롭다.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작품을 전개하는지 그 속내를 들여다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 사무실로 바뀐 전시장

조현진 씨의 프로젝트는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재분석하고 새롭게 이야기하는 현대미술의 특성을 일깨운다. 그는 가상의 사무소를 차리고 작가들과 토론을 거쳐 작가노트의 최종 번역본을 완성했다. 참여 작가의 작가노트와 번역된 결과물, 영상작품이 비슷한 과정을 거쳐 공간을 채우는 과정에서 개인전이면서 그룹전 성격의 특이한 전시가 탄생했다.

번역과 미술프로젝트의 번역은 어떻게 다른가. 조 씨는 답한다. “전문 번역가들이 보기엔 내가 한 달 동안 일한 것은 ‘번역’이 아닌 ‘작업’이다. 실제 번역은 이만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뤄지기 힘든 과정이다. 이 전시는 번역이란 안 보이는 노동에 빛을 부여하면서 작가 노트와 실제 작업과의 연관성을 관객들이 생각해보는 계기를 주기 위한 프로젝트다.”

작가의 이야기를 해설자의 입을 통해 전해 듣고, 영어로 번역된 작가노트는 도록이 아닌 전시장에 걸려 있다. 둘 다 관객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전시지만 완성작이 아닌 제작 이면의 과정에 주목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는 현대미술의 양상을 즐길 수 있는 기회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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