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문봉선 - 허달재 씨 등 매화 한국화展 잇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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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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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 이긴 꽃에 냉가슴도 풀어지고…

매화의 정갈한 아름다움에 반해 이 땅에서 자라는 매화를 20년간 관찰하고 그려온 작가 문봉선 씨가 선보인 묵매화 대작. 굵은 나무 둥치와 잔가지를 먹의 농담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에서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어온 매화의 품격이 드러난다. 사진 제공 공아트스페이스
매화의 정갈한 아름다움에 반해 이 땅에서 자라는 매화를 20년간 관찰하고 그려온 작가 문봉선 씨가 선보인 묵매화 대작. 굵은 나무 둥치와 잔가지를 먹의 농담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에서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어온 매화의 품격이 드러난다. 사진 제공 공아트스페이스
‘뜰 가운데 거니는데 달이 나를 따라오니/매화 둘레 몇 번이나 서성이며 돌았던고./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설 줄 몰랐는데/향기는 옷깃 가득, 그림자는 몸에 가득.’

퇴계 이황은 매화를 노래한 91수를 모아 시첩을 펴낼 만큼 매화를 지극히 아꼈다. 매란국죽(梅蘭菊竹), 사군자 중 첫손에 꼽힌 매화를 사랑한 선비는 그만이 아니었다. 이덕무는 매화에 완전히 미친 바보란 뜻에서 호를 매화탕치(梅花宕癡)라고 지었고, 박지원은 “군자의 도는 담박하되 싫증나지 않고 간결하니 문채가 난다고 했는데, 이 말은 바로 매화를 위한 칭송인 듯하다”고 말했다.

■ 문봉선 ‘문매소식’전

선인들에게 매화는 단순한 꽃나무 이상의 존재다. 온갖 꽃이 봄이 와야 피어나지만 매화는 혹한을 견디고 잔설 속에서 꽃망울을 터뜨려 그윽한 향기를 퍼뜨린다. 그 멋과 기상은 선비에겐 세상의 부침에 연연하지 않고 뜻을 곧게 지키는 정신을, 민초에겐 쓰라린 고통과 역경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강인한 의지를 깨우쳐 주었다.

유독 매서웠던 추위에 꽁꽁 언 마음을 매화 향기로 녹여주는 한국화 전시가 풍성하게 펼쳐진다. 문봉선 씨의 묵매화 ‘問梅消息(문매소식)’전은 우리 산하의 이름난 매화를 찾아가 사생해온 20년 세월을 총결산하는 자리다(9∼27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공아트스페이스). 이호신 씨의 ‘花信(화신)’전도 담백한 필묵으로 매화를 비롯해 이 땅에 피는 꽃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한다(15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토포하우스). 서울 명동 롯데갤러리 본점에선 24일∼3월 20일 허달재 씨의 ‘心造畵 畵造心(심조화화조심)’전이 열린다. 옥션 ‘단’의 경우 ‘매화광’으로 알려진 조희룡 등 옛 화가의 작품 60여 점을 선보이는 ‘매화소품전’을 마련했다(9∼15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옥션단 3층).

○ 매화의 정신을 찾아서

서른 즈음에 전남 순천 선암사의 홍매 사진을 보고 곧장 매화를 만나러 짐을 꾸렸던 화가 문봉선. 그의 ‘문매소식’전에는 해마다 2, 3월이면 어김없이 되풀이된 매화 순례가 오늘로 이어지는 흔적을 오롯이 담고 있다.

광양 매화농원, 구례 화엄사, 장성 백양사, 김해농고 앞 매화나무 등 전국 곳곳을 돌아본 것은 물론이고 중국 난징(南京)의 매화 산, 일본 오사카(大阪) 성 매원까지 내로라하는 고매(古梅), 명매(名梅)를 찾아 나선 행로가 지하부터 2∼4층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소품에서 5m 길이의 대작까지 60여 점의 매화는 얼추 비슷해 보이지만 각기 개성이 있다. 어떤 가지 하나도 쉽게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윽한 달빛 아래 피어난 꽃의 우아함, 용처럼 꿈틀거리는 웅장한 둥치를 따라 쭉쭉 뻗은 가지들이 만든 공간의 구성미, 찬 눈을 머리에 얹은 꽃봉오리의 의연함, 기와 담장과 이웃한 나무의 살가움 등.

때론 대범하고 거칠게, 때론 섬세하고 부드러운 필치로 변주된 매화그림과 더불어 현장에서 사생한 화첩도 전시된다. ‘먹’을 끈질기게 연구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표현해온 작가의 내공을 확인할 수 있다. 한지와 함께 천 위에 그린 작품도 있고, 수묵화지만 아크릴 물감을 손톱에 묻혀 꽃잎을 표현하는 등 새로운 시도가 눈길을 끈다. 화가가 20년간 공들인 매화나무 숲을 돌아본 한양대 정민 교수는 ‘발 공부의 결정판’이라며 “아무 손댄 것 없는 자연산 매화들로 기상이 없는 게 없다”고 평했다.

■ 허달재 ‘心造畵畵造心’ 전
○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찾아서

홍차 물을 들인 한지 위에 홍매와 백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매화를 주제로 한 허달재 씨의 그림은 만개한 꽃으로
가득 찬 화면과 그 틈새의 여백으로 구성돼 비움과 채움의
미학을 느끼게 한다. 사진 제공 롯데갤러리
홍차 물을 들인 한지 위에 홍매와 백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매화를 주제로 한 허달재 씨의 그림은 만개한 꽃으로 가득 찬 화면과 그 틈새의 여백으로 구성돼 비움과 채움의 미학을 느끼게 한다. 사진 제공 롯데갤러리
허백련 화백의 손자로 남도 문인화의 계보를 잇는 직헌 허달재 씨의 개인전도 도심 한복판에서 활짝 만개한 매화를 즐길 수 있는 자리다. 전시 제목은 ‘마음이 그림을 닮고 그림이 마음을 닮는다’는 뜻이나 화가는 ‘마음이 붉으면 매화도 붉고, 마음이 희면 매화도 희다’는 의미로 풀어낸다. 홍차물을 옅게 들인 한지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은 감각적이면서도 격조가 느껴진다. 비움과 채움, 정과 동, 전통의 존중과 현대적 해석의 신중함이 어우러져 만든 여운이다.

매화를 소재로 한 전시들은 서구 매체가 ‘대세’로 자리 잡은 화단에서 우리의 전통적 양식과 그 새로운 변용에 대한 관심을 일깨운다. 또 시공간을 뛰어넘어 옛 대가와 현대 화가의 붓끝에서 태어난 매화의 각기 다른 매력을 견주어볼 만하다.

봄을 가장 먼저 전한다는 매화. 밖은 아직 쌀쌀해도 전시장을 맴도는 맑은 향기 속에서 봄의 기운이 맴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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