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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소통]종교와 예술, 멀어졌던 인연을 다시 맺다

입력 2010-10-26 03:00업데이트 2010-10-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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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 들어앉은 전시공간… 광주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
광주 무각사 경내에 자리한 로터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원로화가 황영성 씨(왼쪽)와 주지 청학 스님이 전시장에서 만났다. 청학 스님은 사람과 동물, 꽃과 나무가 한가족처럼 어우러진 황 화백의 그림을 보며 “살아있는 모든 것을 존중하는 불교적 세계관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광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전시 개막 전에 혼자 그림을 보는데 참 행복하더군요. 사람과 동물을 차별 없이 동등하게 끌어안은 작품들이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가치를 똑같이 존중하는 불교적 세계관과 맥이 닿아 있음을 느꼈습니다.”(청학 스님)

“사찰 안에 전시공간이 생겼다는 소식에 놀랐어요. 이 땅의 불교와 미술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훌륭한 유산을 남겼으나 전통이 단절되면서 각기 딴 길을 갔죠. 이제 다시 교류할 시점이 됐다는 생각으로 전시를 열게 됐습니다.”(황영성 화백)》
광주 서구 치평동 무각사에 자리한 로터스 갤러리에서 만난 주지 청학 스님(57)과 호남화단을 대표하는 황영성 화백(69). 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스님과 뿌리 깊은 나무처럼 묵묵히 고향을 지켜온 원로화가는 반갑게 인사하더니 대화를 술술 이어간다. 청학 스님이 “누구나 절에 쉽게 들를 수 있도록 만든 갤러리인데 이번 전시는 미술을 모르는 사람들도 즐겁게 감상해 뿌듯하다”고 말하자 화가는 “내 그림이 종교와 예술 사이의 멀어진 거리를 잇는 다리가 되면 좋겠다”고 답했다.

1971년 군 법당으로 출발했던 무각사는 광주 상무대 이전 후 5·18공원이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절이 됐다. 2007년 8월 13일 주지로 취임한 뒤 1000일 기도를 시작한 청학 스님은 5월 8일 기도를 마무리하면서 절의 울타리를 낮추는 작업으로 문화공간을 마련했다. 개관전으로는 재프랑스 화가 방혜자 씨의 전시가 열렸고, 11월 15일까지 향토적 감성을 세계인이 공감하는 색채와 형상으로 옮겨낸 황 화백의 초대전이 이어진다. 062-383-0070

○ 가족과 고향은 하나다

일주문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무각사 문화관에 갤러리와 북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115m2(약 35평) 남짓한 아담한 전시장에는 화가가 천착해온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 20여 점이 걸려 있다. 옹기종기 어깨를 맞댄 가족, 웃는 표정의 소 호랑이 사슴 돼지, 산과 논밭이 흥겨운 색채로 어우러진다. 평화롭고 아름답다. 황 화백은 “가족 이야기를 20여 년 했는데 고향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둘 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기에 맥이 통하는 이야기다”라고 소개했다. ‘출연진’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기존 작업과 차별화되는 변화가 엿보인다. 촘촘했던 격자의 형태와 크기가 자유롭고 느슨해졌다. 노란 색조의 캔버스에 한 줄기 바람처럼 흰색 선이 가로질러 가는 대작에선 구상과 추상의 융합이 돋보인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황 화백의 작품에는 불교미술의 지문이 스며 있다. “해외 전시를 할 때 큐레이터가 당신 작품은 어디서 영향을 받았냐고 묻더군요. 그때 광주 증심사가 떠올랐어요. 땔감을 줍거나 소풍 갈 때 들렀던 곳인데 전쟁 때문에 오백 나한을 모신 곳만 덩그러니 있었죠. 문구멍으로 그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태어난 곳도, 부모도, 성장과정도 다 다른데 한결같이 미소를 지은 채 앉아 있는 오백 제자의 이미지가 격자 형식의 내 그림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황 화백)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 자연스레 불교와 접하고 영향을 받은 것처럼 로터스 갤러리도 종교와 상관없이 많은 시민에게 마음의 휴식을 전해주면 좋겠습니다.”(청학 스님)

○ 너와 나는 하나다

도심 속 절을 영혼을 치유하는 도량으로 가다듬고 싶다는 원(願)을 세우고 2013년까지 두 번째 1000일 기도를 시작한 청학 스님. 사람도 꽃도 동물도 하나로 뭉뚱그려 가족이라 이름붙인 그림을 통해 포근하고 따스한 위로를 전하는 화가. 그 길은 다르지만 생명에 대한 존중이란 지점에서 하나로 통한다.

“숱한 사람을 만나고 많은 체험이 쌓이면서 모든 대상이 다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털어놓는 황 화백. 그러자 청학 스님이 한마디 덧붙인다.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음에도 담을 쌓고 산다. 너 따로 나 따로, 인간 따로 자연 따로. 그런 분별심 없이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그림을 보며 불가에서 말하듯 너와 내가 남이 아님을 알게 된다.”

대웅전 등 뒤로 야트막한 여의산이 보이고, 절 마당엔 목백일홍과 붉은색 맨드라미가 피어 있다. 갤러리가 자리한 문화관 뒤편으로 푸른 대나무가 도열해 번잡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게 한다. ‘마음의 쉼표’를 찍듯 고즈넉한 공간에서 만난 전시여서 그 울림이 깊다.

광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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