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권지예의 그림읽기]목욕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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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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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Man taking shower in Beverly hills, 1964.
데이비드 호크니, Man taking shower in Beverly hills, 1964.
인터넷에서 본 식인종 시리즈 유머 중에 이런 게 있더군요. 어느 식인종이 정글을 걸어가다가 다른 식인종이 개업한 레스토랑에 다다랐답니다. 시장기를 느낀 그는 자리에 앉아 메뉴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관광객 튀김-5달러, 가이드 회무침-5달러, 삶은 사냥꾼-10달러, 선교사 석쇠구이-10달러, 성폭행범 꼬치구이-20달러, 살인범 전골-30달러, 정치인 찌개-300달러.’

고개를 갸우뚱하던 식인종이 웨이터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왜 정치인은 가격이 이렇게 비싸죠?”

그러자 웨이터는 대답했어요.

“깨끗하게 손질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웨이터의 대답이 업그레이드된 또 다른 버전도 있어요.

“관광객과 가이드는 깨끗해서 그냥 먹어도 되는데 정치인은 세 사람이 하루 꼬박 걸려 속을 뒤집어 씻어내고 닦아내고 소독해야 하니 인건비 포함해서 그렇답니다. 그나마 수입산이라 300달러지 국내산 같으면 부르는 게 값이죠.”

풋, 잠깐 웃음을 터뜨렸어요. 요즈음 신문의 답답한 정치면을 보면 수긍이 가는 유머입니다. 왜 우리는 정치인이라면 대부분 부정을 일삼고 부패한 인간으로 생각하게 됐을까요? 양심의 신선도와 의식의 청결도를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요? 식재료 같으면 깨끗하게 씻고 닦고 손질하면 되지만 말이죠.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신성한 뜻을 되새기며 자주 목욕재계하고 몸과 마음을 스스로 깨끗하게 가다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제가 마치 식인종이나 된 것처럼 그런 관점에서 ‘목욕하는 인간’의 그림을 찾아보았답니다. 그런데 목욕하는 인간은 거의 여자더군요. 그것도 젊은 여자. 그렇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녀들은 목욕을 하는 게 아닙니다. 목욕을 빙자해서 욕실이나 거울 앞에서 ‘폼’을 재며 알몸을 보여주거나 훔쳐보는 시선의 성적 대상물로서 존재합니다. 사실 젊은 여성의 누드화는 ‘씻는 여자’보다 ‘벗는 여자’에 더 중점을 두었죠.

그런데 ‘씻는 남자’를 찾아냈습니다. ‘베벌리힐스에서 샤워를 하는 남자’라는 제목의 이 그림입니다. 여성의 신체가 자세히 아름답게 그려진 여성누드화와 달리 남자의 얼굴과 몸은 뭉개져 있습니다. 그러나 구부린 등에 떨어지는, 샤워꼭지에서 나오는 물줄기만은 제대로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군요. 일상적이고 위생적인 행위인 샤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찍이 그리스 조각에서 남성의 누드는 여성의 누드보다 훨씬 더 대담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인간, 즉 남성을 세계의 중심으로 본 그리스 사람들은 남성의 몸을 완전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여겼지요. 그리스 남성들이 운동을 할 때는 나체였다고 하지요. 그 유명한 ‘원반 던지는 사람’ 같은 그리스 남성 조각상을 보면 육체적으로 강하고 힘 있는 남성의 근육과 힘줄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남성들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가 봅니다.

지금은 그리스 시대처럼 힘, 즉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보여주는 시대가 아닙니다. 정치라는 게 권력을 잡고 사람들에게 으스대고 한 밑천 잡는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민주주의 시대의 정치는 일종의 서비스대행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정치인을 ‘국민의 종’이라고 하니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늘 일상적으로 목욕재계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잘 ‘씻는 사람’이 서비스맨의 기본조건이겠죠.

권지예 작가
#작가 권지예의 그림읽기#베벌리힐스에서 샤워를 하는 남자#데비이드 호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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