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권지예의 그림읽기]폭풍 속으로

  • Array
  • 입력 2012년 4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눈보라’. 윌리엄 터너.
눈보라’. 윌리엄 터너.
무슨 봄 날씨가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4월인데 눈이 오고 한파에 강풍까지 몰아치네요. 19년 만의 ‘4월 눈’이라네요. 이제나 저제나 눈치를 보며 꽃눈을 터뜨리려던 꽃들이 눈을 찔끔 감고 숨을 죽이고 있겠어요. 이건 뭐 꽃이 피는 걸 시샘하는 정도의 ‘꽃샘추위’가 아니라 ‘꽃심술추위’라 부를 만합니다. 꽃들에게는 잔인한 4월입니다. 바다에도 풍랑특보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이런 날은 따뜻한 집안에 있으면서 밖을 내다보면 훨씬 더 안온함과 포근함을 대조적으로 느낄 수 있지요. 하지만 폭풍우 부는 날, 바다에서 배를 타 본 사람은 알 겁니다. 목전에서 죽음이 파도처럼 너울거리며 순식간에 목숨을 집어삼킬지 모른다는 극한의 공포를 말입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말입니다. 여기 이 그림은 인상파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영국 풍경화의 거장 윌리엄 터너의 ‘눈보라’라는 그림입니다. 밤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났을 때의 바다의 모습과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웅장하고 스케일이 큰 그의 그림은 대자연의 압도적인 풍경을 그린 것이 많은데, 특히 폭풍우나 눈보라치는 바다의 광경을 그린 그림들이 압권입니다.

그림을 큰 화면으로 보면 흔들리는 증기선과 회오리치는 눈보라와 폭풍우, 파도에 곧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위태로운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이렇듯 절박한 느낌을 주는 것은 화가의 극한 체험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터너는 폭풍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몸소 폭풍을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무시무시한 폭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 밤, 그는 바다로 나가 어부에게 부탁했습니다.

“갑판 돛대에 제발 나를 묶어주시오. 그러고 날이 밝을 때까지 절대로 나를 풀어주지 마시오.”

밤새도록 그는 돛대에 매달려 사나운 짐승처럼 포효하는 폭풍에 자기 자신의 몸을 내주며 처절하게 고통을 감수해냈다고 합니다. 몸으로 느낀 그 고통을 화폭에 옮긴 것이 바로 이 그림이지요. 그저 멀리서 바라본 풍경이 아니라, 그의 온몸에 밤새도록 각인된 고통과 대자연의 위력이 그대로 살아있는 위대한 그림입니다. 후에 화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진짜 바다의 폭풍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돛대에 몸을 묶은 다음 폭풍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는 네 시간 동안이나 묶여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폭풍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림에 스민 화가의 무서운 화혼(畵魂)과 치열한 열정에 작가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객관적 거리감이라는 미명하에 너무도 ‘안전거리 확보’에만 신경 쓰며 살고, 또 작업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살다보면 폭풍우를 만나는 이런 시기도 있겠지요. 삶이 일기예보처럼 예상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폭풍전야란 말도 있듯이 대체로 우리는 너무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일상에서 이런 일을 당하게 되지요. 그럴 때 폭풍을 피할 수 없다면 폭풍 속으로 뛰어드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것을 견디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믿음을 갖는 것, 그것이 폭풍을 극복하는 길이라면 말이죠.

그것은 또한 잔인한 4월의 한파와 강풍을 메마른 몸으로 견디며 소생의 희망을 꿈꾸고 있을 꽃나무들이 몸을 뒤흔들며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권지예 작가
#작가권지에의그림읽기#봄#폭풍#눈보라#윌리엄터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