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권지예의 그림 읽기]그들만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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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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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언어, 정종기. 아트블루 제공
그들만의 언어, 정종기. 아트블루 제공
며칠 전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요즘 학교의 여러 문제가 계속 이슈가 되니, 중학생 아들을 키우는 그녀가 걱정이 되어 몰래 아들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들여다봤던 모양입니다. 언제부턴가 컸다고, 엄마와는 말이 안 통한다고 말을 안 하려는 아이. 하지만 아이가 친구와 대화한 문자를 봐도,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말투성이라고 친구는 푸념을 하더군요.

“얘, 넌 작가니까 혹시 알지 모르겠다. 엄크가 뭔지 아니? 어제 엄크 떠서 쥐쥐 했다는데.”

엄크? 모르는 단어였어요. 친구와의 전화를 끊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어요. ‘엄크’란 엄마와 영어인 크리티컬의 합성어로, 친구가 물어본 그 문장은, 엄마가 갑자기 들어와서 치명적으로 방해를 받아 게임을 끝냈다는 뜻인가 보더군요. 이리저리 웹서핑을 하다 보니 청소년의 은어에 정말 소통 불가한 것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혹시 여러분은 인터넷에서 발췌한 이 두 청소년의 문자 대화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아이 1: 야, 지금 김천 앞에서 애들이 웬 찐찌버거 때리는 거 봤냐?

아이 2: 알아. 안여돼 주제에 노페 입고 설쳤다며?

요즘엔 ‘청소년은어사전’이라는 앱도 생겼다는군요. 외국어도 아니고 외래어도 아니고, 그야말로 통신상에서 난무하는 이런 말들을 이름하여 ‘외계어’라고 한다지요. 청소년이 마치 신인류라도 되고, 기성세대는 원시인이라도 되는 듯 말이 안 통하는 우리는 지금 어느 별에서 살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이런 세대 간의 소통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은어로 뭉쳐진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또래문화는 예전에도 있었으니까요. 문제는 또래문화 안에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소통 부재의 문제입니다. 사실 요즘 대놓고 상대를 안 해주는 ‘왕따’나 손찌검, 발길질, 주먹질 같은 위험한 ‘보디랭귀지’가 더 큰 문제지요. 그런 폭력이 학교 안이든 밖이든 어디에서든 성행하고 있잖아요.

왕따의 두려움과 소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은 ‘빵셔틀’과 ‘게임셔틀’을 하더라도 그룹에 끼고 싶어 하고, 가정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교복이라 불리는 값비싼 브랜드의 옷을 남들에게 꿀리지 않게 걸치고 싶어합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의 세계에도 약육강식의 생존원리는 존재합니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당하고, 약한 아이는 강한 아이에게 폭력을 당합니다. 그런데 더 큰 불행은 아무도 우리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마음 편히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SOS 신호조차 보낼 수 없는 현실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느끼고 생을 포기했고요.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느꼈을 아이들의 고독과 고통스러운 마음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픕니다.

그래서인지 화가가 그린 이 그림을 바라보는 것도 고통스럽군요. 또래에서 벗어나 홀로 자신의 그림자 위에 고개를 떨구고 외롭게 앉아있는 사춘기 소년의 모습이 안쓰러워 등이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습니다. 존재의 불안을 앓고 있는 어린 영혼들에게 어떡하면 다가갈 수 있을까요? 그들만의 언어, 즉 그들만의 세계와 영혼을 이해하려고 애써 보는 어른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참! 위의 퀴즈의 정답을 알려드릴게요. 불완전하고 저속한 언어지만 일단 알아두는 게 좋겠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니까요.

아이1: 야, 지금 김밥천국 앞에서 애들이 웬 찐따 찌질이 버러지 거지 같은 애 때리는 거 봤냐?

아이2: 알아. 안경 쓴 여드름 돼지 주제에 노스페이스 점퍼 입고 설쳤다며?

권지예 작가
#권지예#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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