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청소년 심리]성 정체감 그린 ‘천하장사 마돈나’

  • 입력 200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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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한 아빠 싫은 동구 “여자가 될래요”

‘천하장사’와 ‘마돈나’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단어다. 근육질 남성인 ‘천하장사’와 자애로운 성모마리아 또는 섹스 심벌로 알려진 미국 팝가수 마돈나라니.

하지만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에선 이 두 단어가 한 인물을 가리킨다.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동구는 어릴 적부터 립스틱을 바르고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이란 노래를 따라 부른다. 동구는 고등학교 씨름부에 들어간다. 씨름 대회에서 우승하면 그 상금으로 성전환 수술을 할 작정이다.

청소년들은 사춘기를 지나며 2차 성징을 보인다. 남자 아이들은 남자답게, 여자아이들은 여자답게 신체 변화가 일어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변화에 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남자(혹은 여자)라는 것은 알지만 자신의 남성성(혹은 여성성)이 불편하고 반대의 성이 되고자 하는 소망이 강하게 지속되면 ‘성 정체감 장애’가 생긴다. 마치 치마를 입고 화장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동구처럼…. 아버지는 동구를 마구 때리지만 여자가 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된 건 동구의 선택이 아니다. 부모와 갈등 관계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런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성 정체감 장애는 생물학적인 요인이 관련되어 있다는 연구도 있지만 일반적으론 부모 자녀 관계에서 느끼는 갈등과 이를 해결하려는 무의식적인 욕구와 관련이 있다.

술을 달고 살며 툭하면 고함을 지르고 때리는 아빠는 동구에게 두려운 존재다. 이 때문에 동구에게 남성이란 곧 공격성, 폭력성을 뜻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남성의 역할을 동일시하지 못했을 수 있다.

권투선수 출신으로 겉으로는 폭력적이고 센 아빠는 실은 부상으로 권투를 그만둔 뒤 늘 술에 의존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연약해 보이지만 가출한 뒤 자신이 하고 싶어 하던 공부를 하며 나름대로 만족하는 엄마가 동구의 눈에는 더 강하고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이었을 것이다.

청소년의 건강한 성 정체감을 위해선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거나, 설령 있다 하더라도 적절한 성역할 모델이 되어주지 못할 때 자녀들은 성 정체감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엄마와 분리된 경험이 있는 남자 아이는 엄마와 재결합하고 싶은 무의식적인 욕구 때문에 여자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혹은 몸집이 커지고 힘이 세어지면서 폭력적인 아버지 대해 억눌러 왔던 분노가 표출될까봐 두려워 무의식적으로 여자처럼 연약하고 부드럽게 행동할 수도 있다.

이제는 TV 드라마에서도 동성애를 다룰 정도로 전통적인 성 역할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동성애는 비주류다. 비주류는 언제나 외롭고 힘들다.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동구와 같이 고통받는 자녀를 행여 부모가 만들어서는 안 된다.

신민섭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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