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전율,추리소설 20선]<16>원행

입력 2007-07-25 02:44수정 2009-09-2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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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책과 드라마가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단순한 역사적 상상력에서 비롯된 추리물이 아닌 실제 우리와 호흡하는 시대와 인물과 유물이 배경이 되기 때문에, 감춰졌던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물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재미를 선사해 준다.

역사추리소설, 이른바 팩션(faction) 중에서도 오세영 작가의 ‘원행’이 돋보이는 이유는 역사적 사건과 유물과 인물의 이야기가 작가의 상상력과 함께 긴밀하고 세련되게 조화돼 있는 데다 소설의 배경인 1795년 정조의 수원화성 원행(園行)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는 사도세자의 사갑(死甲)을 기념하고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한 행차였다. 하지만 정조는 이 행차를 통해 수구세력을 제압하고 왕권을 확고히 하여 개혁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개혁파와 수구파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가운데 단행된 이 행차는 그 무게의 중심을 한쪽으로 기울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다빈치 코드’에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이 스릴 넘치듯, ‘원행’에서도 과학 지식과 개혁 의지를 바탕으로 정조 시해 음모를 막아 내려는 정약용의 활약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학자 정약용이 아니라, 공역 책임자로서 화성 공사를 지휘하고, 암행어사로서 정조의 행차로를 점검하고, 한강에 배다리를 건설하는 정약용의 거침없는 활약이 긴장감을 더욱 높인다.

정약용과 정조 외에도 역사적인 상상력과 재미를 더해 주는 인물이 있는데, 문인방과 장인형이다. 문인방은 정감록을 토대로 새로운 세상과 개벽을 꿈꾸며 정조를 암살하려 한다. 정조의 군제개혁으로 기총에서 쫓겨난 장인형은 문인방이 말한 ‘소릉운’(오곡이 풍부하고 평등한 곳)에서 사랑하는 연인 소향비와 함께 살기 위해 역모에 가담한다.

작가는 문인방과 장인형과 상단의 모습을 통해 정조시대 신분상의 변화를 더욱 사실적으로 그린다. 여기에 정조의 개혁에 반대하는 신하들과 민초들의 세력이 맞물리고, 정약용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이들의 정체와 음모를 밝혀내면서 줄거리는 어느덧 마지막 고개를 넘는다.

등장인물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상향을 꿈꾼다. 정약용은 실학과 개혁의 나라를, 벽파의 우두머리인 심환지는 선비가 중심인 유학의 나라를, 문인방은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누가 악인이고 선인이라는 관점보다 작가는 그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다각도로 조명해 보려고 한다. 이런 다양한 계층의 삶과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과정이 원행 8일 동안 치밀하고 치열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 소설 ‘원행’으로 격변이 심했던 정조 시대를 한껏 상상해 보시기 바란다.

김도연 CJ미디어 드라마 기획팀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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