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내가 본 달라이 라마]<1>소탈하고 겸손한 성품

입력 2006-03-31 03:02수정 2009-10-0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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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2000년 7월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4만여 명의 청중이 운집한 가운데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는 “용서는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에게 베푸는 자비”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제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는 올해 72세로 벌써 할아버지 스님이 되었다. 그는 늘 부처의 제자인 비구승일 뿐이라고 자처하는데, 과연 어떤 사람일까? 한국인 청전(淸典) 스님은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20년째 달라이 라마를 보좌하며 수행하고 있다. 청전 스님은 한국에서 수행하던 중 많은 의문점을 풀지 못하다가 1987년 8월 1일 달라이 라마를 찾아가 만나 열서너 가지의 질문을 던진 뒤 비로소 확신과 믿음이 생겨 그를 스승으로서 존경하고 따랐다고 한다. 청전 스님은 세월이 흐를수록 달라이 라마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청전 스님이 개인적 면담과 통역, 법문 등을 통해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느낀 달라이 라마의 진면목과 티베트 불교의 이면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달라이 라마는 참으로 소탈하다. 도대체 꾸밈이 없다.

인도 남부 어느 사회단체에 연사로 초청되었을 때였다. 행사가 끝나고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인도에서는 상식적으로 누구를 초대하는 식사거나 또 좀 잘사는 사람들의 식사는 거의가 채식이다. 이날도 그 단체에서는 당연히 달라이 라마도 채식주의자일 것으로 알고 전통대로 채식 위주로 먹을거리를 장만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만찬장에 들어갈 때 달라이 라마는 ‘Non Veg.’, 즉 채식이 아닌 고기도 먹는 식당으로 들어간 것이다(티베트 불교에서는 육식이 금지돼 있지 않다). ‘Non Veg.’ 쪽의 음식을 ‘조촐하게’ 준비한 주최 측은 적이 당황했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식당에서 “저는 순수한 채식주의자는 아니고, 티베트식으로 가끔 고기도 먹지요”라면서 그 소박하고 평범한 음식을 웃어 가면서 맛있게 들었다. 이튿날 그 지방 신문에 큰 활자로 ‘달라이 라마는 채식가가 아니다’란 표제와 함께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이 상세히 보도되었다.

한번은 달라이 라마가 감기가 들었는지 법문 중에 코를 자주 풀었다. 그런데 그때 마이크 각도가 어떻게 됐는지 코를 풀 때의 힘이 마이크로 들어가는 바람에 밖에서 듣는 이들이 웃음을 자아냈다.

티베트 사람들은 조용했지만 서방에서 온 사람들은 그대로 깔깔대고 웃어 버렸다. 깜짝 놀란 달라이 라마가 시자에게 “아니 왜 이리 웃느냐”고 물으니 “코 푸는 소리에 놀라서 그렇다”고 하자 바로 그는 “Again, one more(한 번 더 해주랴)!” 하면서 더 요란하게 코 푸는 소리를 내었다. 그때는 티베트인이고 서양인이고 간에 배꼽이 빠지도록 큰소리로 오랫동안 웃어 댔다.

이런 단순한 일도 많지만 가끔 외국인들이나 명상가들이 달라이 라마에게 “당신은 깨달았는가” 하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러면 그는 “내가 깨닫다니요. 내가 부처나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니요” 하며 얼른 법상 위의 물을 한 잔 들이켜면서, “보세요, 부처나 보살이라면 이렇게 목이 타서 물을 마시겠습니까” 하고 답한다.

또 고개를 숙여 뒷목 부분을 보여 주며 “요즘 여기에 종기가 나서 잘 때도 불편하고요” 하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그는 끝까지 부처님의 제자일 뿐이며 출가 스님들과 똑같이 매일 경전 읽고 공부하는 한 승려임을 소탈하게 말한다.

필자도 한국 스님들 중 몇 명이 이와 똑같은 질문을 해 통역했던 일이 기억난다.

한 스님은 법문을 듣고 있다가 “그러면 당신은 깨달았습니까” 하고 좀 거북한 질문을 했다.

달라이 라마는 꽤 실망한 모습으로 한참을 계시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얼마 있다가, “예, 상대방이 깨달았는지 안 깨달았는지는 본인이 지혜의 눈을 갖췄다면 알아볼 수 있는 거지요”라고만 답하셨던 게 기억난다.

어쩌다 한국에 가면 이와 대조적으로 스님이나 신도들도 깨달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즉 자기는 깨달아서 부처, 조사(祖師)라는 것이다. 수행상의 문제가 스스로의 표현에서 자가당착에 빠짐을 본다. 심지어 깨달았다고 여기 인도까지 와서 자기 자랑을 하기도 하는데 기가 찰 노릇이다.

한 사람은 깨달음을 점검 받으러 왔다면서 달라이 라마를 만나 보겠다고 했다. 달라이 라마는 해외 출타가 잦아서 이곳을 비울 때가 많은데 지금 안 계시다고 했더니 세상에! “바빠 기다릴 수가 없다”면서 그냥 가 버린 사람도 있다. 아니 최고의 근본 문제를 논하러 온 사람이 시간이 없다며 가 버린다면 그런 ‘깨달은 자’가 과연 바르게 깨달았다는 말인가.

또 한 스님은 나를 보자마자, “이곳에 많은 스님이 저리 공부도 않고 허송세월을 하는데 빨리 화두 하나씩 가르쳐 주어 공부하도록 하지 뭐 하는가”라는 말까지 했다. 모든 종교와 사상은 자기 문화에 맞게 발전되고 익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것이 옳다고 해서 어찌 다른 종교인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할 수 있을까. 황새가 뱁새 보고, ‘네 다리는 왜 그리 짧은가, 나처럼 길게 빼 주마’ 하는 식이 아니겠는가.

달라이 라마는 참 바쁘게 지낸다. 세계 곳곳을 방문하며 인종과 종교, 국가를 초월해 이 시대에 맞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선 부처의 제자인 한 스님으로서 꼭 불교만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당신 표현대로 ‘인간성의 향상과 종교 간의 화합이 나의 보편적인 가르침의 목적’이라고 한다. 이 시대에 과학이 있고, 다 열린 세상에서 꼭 어느 한 종교만이 진리라고 말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특히 유럽의 불교단체에서 법문할 때는 보리심(菩提心·이웃에 헌신하는 마음)과 공성(空性)에 기반을 두고 말하며, 불교인으로서의 삶은 연기(緣起)법에 의거한 비폭력의 삶임을 강조한다.

대승불교의 큰 스승 용수(2∼3세기) 보살이 수행하던 곳으로 일컬어지는 인도 남부 아마라바티에서 올해 1월에 열린 칼라차크라 행사에는 한국에서도 200여 명이 참석했다. 여기서도 달라이 라마는 용수 보살의 ‘중론(中論)’ 강의를 통해 세계 평화를 강조했다.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인 법회 장소에서 12일간 내내 보리심의 사상과 실천을 법문했다.

달라이 라마가 전 세계의 국가를 다 방문한다고 했는데, 초청받고도 못 간 나라가 유독 한국뿐인 것 같다.

북미, 남미, 유럽은 물론 러시아, 몽골 등 구 공산권에서 독립한 나라들, 아프리카,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초청 받으면 다 갔다. 올해 2월에도 이스라엘을 또 방문했고 11월엔 일본을 열두 번째 방문할 예정이며, 이미 대만도 두 차례나 방문했다.

필자는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을 간절하게 희망한다. 그의 방한은 우리나라에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淸典 스님은 누구?▼

달라이 라마와 청전 스님(왼쪽). 사진 제공 청전 스님

53세. 전주교대 재학 중이던 1972년 10월유신 후 자퇴했다. 1973년 대건신학대(현 광주가톨릭대)로 편입학해 다니던 중 송광사를 방문했다가 노스님에게서 큰 가르침을 얻어 1977년 학교를 자퇴하고 송광사로 출가했다. 1987년 남방불교와 티베트불교 수행을 경험하기 위해 순례를 떠나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의 여러 수행처를 방문했다. 인도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나 나눈 많은 문답을 통해 수행 중의 의문점을 풀고 이후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에 따라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지금까지 20년 동안 수행하고 있다. ‘입보리 행론’(2004년·하얀연꽃), ‘깨달음에 이르는 길(람림)’(2005년·지영사) 등 티베트 원전들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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