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자녀교육 이야기]<8·끝>연세대 의대 신의진 교수

  • 입력 2006년 5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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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와 둘째 아들 홍정모 군. 신 교수는 아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훈육이 아니라 협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사진 제공 신의진 교수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와 둘째 아들 홍정모 군. 신 교수는 아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훈육이 아니라 협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사진 제공 신의진 교수
이런 아이들도 있다.

엄마를 때리고 욕하는 아이들,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빠지고 언어장애가 생긴 아이들, 기절할 때까지 울며 떼쓰는 아이들….

연세대 의대 신촌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신의진(42) 교수를 찾아오는 아이들의 얘기다. 신 교수도 홍경모(청운중 3년) 정모(운현초교 5년) 군 등 두 아들을 두고 있어 부모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문제가 있다”며 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오는 부모에게서 문제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부모가 사랑을 주지 않거나 왜곡된 사랑으로 스트레스만 줬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만약 선천적 문제가 있어도 어릴 때 부모가 잡아주면 조기 치료가 가능하다.

○ 아이에 맞게 교육해야

그는 2001년 저서 ‘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를 통해 한국의 조기 교육 바람을 비판했다.

소아정신과는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치료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뇌의 발달을 다루는 곳이다. 그가 공부한 과학의 원리에 따르면 뇌는 준비가 되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준비가 안 된 뇌에 주입식으로 공부시켜도 효과가 있겠지만, 아이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일곱 살 정도면 몇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한글을 서너살 때 스트레스를 주면서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책에서 “2, 3세의 아이가 한글을 줄줄 읽는 TV 광고를 보면 자본주의의 무자비함에 비애를 느낀다”고 했다.

어린아이에게 하루에 몇 시간씩 영어 비디오를 틀어 주는 엄마들도 있다.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비디오 증후군’이라는 의학 교과서에도 없던 병에 걸려 자폐증상을 보이는 아이들도 나온다.

신 교수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뒤 “우리 아이에겐 숫자나 글자를 가르치지 말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조기 교육을 불신한다.

그는 자신이 계속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힘도 “어릴 때 학교 공부를 하기보다 신문의 부고란까지 샅샅이 읽을 정도로 독서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공부를 강요하지 말고 책을 많이 읽게 하는 것이 아이의 삶을 이끄는 길이라는 것이다.

다만 아이의 뇌가 준비되면 체계적으로 뒷받침해 줘야 한다. 그는 인지 발달의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아이들의 지능지수(IQ)를 검사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보면 찢어버렸던 둘째 정모는 치밀한 비교와 분석을 싫어한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수학 교사와 세세한 계산문제를 지루하지 않게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 훈육 대신 협상을

그는 아이들에게 비싼 것을 사주지 않고 용돈도 많이 주지 않는다.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엄마들이 값비싼 유아용품에 열을 올려 ‘한국판 소황제’가 등장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며 안타깝게 여겼다. 신 교수는 “이것 저것 사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들은 애정결핍인 경우가 많다. 쇼핑 중독인 어른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비싼 장난감을 사 달라며 떼를 쓰는 일은 흔하다. 이럴 때 아이의 욕구를 무시할 게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 ‘협상’이 필요한 것이다.

장난감 로봇을 사 달라고 조르는 아들에게 그는 “좋긴 좋은데 얼마인지 아니?” “엄마 아빠 월급으로 쌀도 사야하고 옷도 사야 하는데 이걸 사도 괜찮을까?” 등 계속 대화를 나누며 타협을 시도했다. 협상이 생활이 된 신 교수의 아들들은 가게에서 물건 여러 개를 집어들지 않는다. 용돈이 필요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3000원이 필요해요”라고 말한다.

○ TV는 뉴스와 다큐만 보게

남편(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소아과 홍수종 교수)과 함께 미국에서 공부할 때 큰아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하도 속상해 체벌을 하기도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는 체벌보다 좋아하는 일을 못하게 하거나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최근 효과를 본 것은 휴대전화 압수”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TV와 인터넷 게임은 제한했다. TV는 평소 코드를 감아 놓고 가끔 뉴스와 다큐멘터리 정도만 보게 한다. TV를 끄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책을 잡는다. TV 안 보기가 습관이 된 이후 아이들은 오락 프로그램을 봐도 “시시하다”고 말한다.

큰아들은 초등학교 때 인터넷 게임에 빠져 신 교수를 걱정시켰다. 그는 출근할 때 모뎀을 들고 나와 버렸다. 이후 게임과 인터넷은 주말에 2∼3시간 정도, 부모 앞에서만 하도록 했다. 그는 무절제한 TV 시청이나 게임은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이런 부모 문제 있어요

▽아이의 감정에 둔감한 부모=가장 심각한 유형이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며 크게 화내고는 아이가 놀란 것보다 자신의 불쾌한 기분만 더 앞세운다. 아이의 수준에 맞춰 놀아 주지 못하고 아이의 행동 통제에만 급급하다. 아이의 감정을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잔소리를 참기 어려워하는 부모=아이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하기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런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부모가 사사건건 자율성을 침해했기 때문에 늘 자기가 하는 일에 확신이 없고 불안감에 시달린다.

▽타이르는 대신 손부터 올라가는 부모=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된다. 자기를 때리고도 감정의 동요가 없는 부모를 본 아이들은 다른 아이를 때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말을 어기는 것을 못 견디는 부모=말대답을 유난히 싫어하고 예의범절을 따지는 부모. 시댁에 꼼짝 못하는 엄마나 직장 상사에게 복종하는 아빠 중에 이런 유형이 많다. 자신이 권위에 엎드리는 것처럼 아이들도 복종하기를 바라면서 이의 제기를 무조건 막는다.

▽자식에게 하소연을 일삼는 부모=자신의 겪는 아픔을 이겨 내기보다 아이를 고통을 나눌 대상으로 여긴다. 이런 부모의 갈등을 고스란히 떠안은 아이들은 일찌감치 ‘애어른’이 된다.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나 매 맞는 아내의 아이들 가운데 특히 많다.

(신의진 교수의 책 ‘현명한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대화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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