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360>子貢은 反하여 築室於場하여 獨居三年然後에 歸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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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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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陳相(진상)이 스승 陳良(진량)을 배반한 것을 꾸짖고,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별세 후에 행한 일을 이야기했다. 공자가 별세했을 때, 제자들은 삼 년의 喪期(상기)가 지난 뒤 짐을 챙겨 돌아갔는데 그때 그들은 子貢(자공)에게 읍례를 하고 서로 마주하여 목이 쉴 만큼 통곡하고는 돌아갔다. 자공은 홀로 다시 돌아와 묘 마당에 집을 짓고 삼 년을 산 뒤에 돌아갔다는 것이다.

反은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築室於場은 묘 마당에 廬幕(여막, 임시 거처)을 지었다는 말이다. 場은 묘 앞에 제사를 행하는 壇場(단장)을 가리킨다.

공자가 문하의 제자들을 가르친 네 개의 전공을 孔門四科(공문사과)라고 한다. 곧, 德行(덕행) 言語(언어) 政事(정사) 文學(문학)의 넷이다. 각 분야마다 성취를 이룬 제자들이 있었다. 덕행에는 顔淵(안연) 閔子騫(민자건) 염伯牛(염백우) 仲弓(중궁)이요, 언어에는 宰我(재아)와 子貢(자공)이요, 정사에는 염有(염유)와 계로(季路)요, 문학에는 子游(자유)와 子夏(자하)이다. 이 열 명을 孔門十哲(공문십철)이라고 한다. 이들 하나하나가 훌륭하지만 특히 자공은 스승 공자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논어’에는 그가 스승과 대화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자공은 衛(위)나라 출신으로 본명은 端木賜(단목사)이다. 외교에 수완이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성공했다. ‘사기’ ‘貨殖列傳(화식열전)’에 보면, 자공이 제후들을 방문하면 가는 곳마다 제후들이 대등한 예로 대했다고 한다. ‘논어’ ‘學而’편에 보면 자공이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그것도 괜찮다. 하지만 가난해도 즐기고 부유해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다. 공자는 자공에게 부유해도 예를 좋아하라고 강조한 것이라고 한다. 공자가 별세했을 때 자공은 6년 상을 치렀다. 공자의 무덤이 있는 산둥 성 曲阜(곡부)에는 자공의 여막이 있었다고 전하는 터에 후대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공자의 묘를 향하여 왼쪽에 위치해 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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