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청소년 역사강좌]제10강 ‘박정희 시대와 근대화’

  • 입력 2004년 12월 6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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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강당은 한국현대사의 민감한 주제인 박정희와 그 시대에 대한 강연을 듣기위해 비바람을 뚫고 찾아온 청중들로 가득찼다. 김동주 기자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강당은 한국현대사의 민감한 주제인 박정희와 그 시대에 대한 강연을 듣기위해 비바람을 뚫고 찾아온 청중들로 가득찼다. 김동주 기자
《4일 오후 3시 비바람이 거셌지만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강당에는 ‘2004 청소년 역사강좌’ 제10강 ‘박정희 시대와 근대화’를 듣기 위해 청소년을 비롯해 많은 청중이 모였다. 강사인 김일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정희는 한국 현대사의 모든 문제가 모여 흘러나가는 큰 저수지와 같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민감한 주제임을 반영하듯 강연이 끝난 뒤에도 청중 10여 명이 김 교수를 둘러싸고 20여 분간 질문과 토론을 벌였다. 다음은 강연 요지.》

● 엇갈리는 평가

박정희 정권 아래서 이뤄진 근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는 곧 산업화와 민주화가 병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이 문제는 미시적·일국(一國)적·도덕 규범적 시각이 아닌 좀더 거시적이고 비교사적인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하긴 했지만 국민을 절대빈곤에서 구하고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점은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친일 경력’과 쿠데타 등 정권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 발전전략이 추구한 대외종속, 불균형, 반(反)민중·반민주성을 들어 삶의 질을 퇴행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엇갈린 평가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가 ‘항상’ 같이 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즉 ‘박정희는 경제는 잘 했는데 정치는 못 했다’라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식이 과연 옳으냐는 것이다.

●‘발전국가’라는 성장 메커니즘

박정희는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기본원칙으로, 부국강병이란 목표를 위해 국가가 시장에 장기적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국가주도적 경제성장 전략, 즉 발전국가 전략을 채택했다.

국가는 ‘전략산업’을 결정하고 국내외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의도적으로 이 분야에 집중 배분하며 이를 위해 금융기관을 장악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관치금융, 정경유착, 비효율 등이 발생했다.

이런 발전국가 방식은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으며 대개 후발 내지는 후(後)후발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들에서 많이 나타난다. 발전국가는 민주적 의사결집 과정보다는 지도자의 정치적 결단과 행정적 효율성을 앞세우므로 민주적이 되기는 쉽지 않다.

● 산업화초기 민주-발전 양립사례 없어

역사적으로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양립 가능하지 않았고 ‘선민주화, 후산업화’의 길을 걷는 것도 불가능했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순차적으로 진행한 국가의 ‘보편적 모델’로 여겨지는 영국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19세기 영국은 참정권을 제한했으며 노동자를 탄압했다. 즉 영국도 산업화를 어느 정도 성숙시킨 뒤에야 민주화로 나아간 ‘선구적 사례’다.

결국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민주주의에 따라 경제를 도약시킨 사례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 후발산업화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 또는 최근의 신흥공업국들로 한정한다면 그 예는 더욱 찾기 어렵다.

● 모두 박정희의 탓만은 아니다

박정희 집권기인 1960, 70년대는 산업화 초기 단계였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란 두 가치를 동시에 추진하기 어려웠을 때 박정희는 경제발전이라는 가치를 선택했다.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현실적이고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 첫째, 경험적으로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민주를 선택해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룬 선례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민주라는 가치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빈곤과 배타적 선택 관계에 있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빵(경제발전)은 민주라는 가치를 의미 있게 만드는 전제다. 빵 없는 민주주의는 지탱하기 어렵다. 경제발전이나 산업화 자체를 받아들인다면 그 과정이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희생과 부작용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한국의 산업화 초기 단계인 1960, 70년대의 희생과 부작용의 원인은 박정희 정권과 산업화가 나눠가져야 한다. 산업화는 옳고 그름을 떠나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과정이다. 그런 운명적 과정을 떠맡은 박정희 정권에 그 시대의 모든 문제를 전가시켜서는 안 된다고 본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김일영 교수는:

김일영 교수(44·사진)는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같은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정치사와 한미관계사를 전공했다. 1992년부터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회과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초빙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주한미군’, ‘한미동맹 50년’, ‘한국정치와 헌정사’ 등이 있다.

▼제10강서 쏟아진 질문들▼

김일영 교수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나의 박정희 평가가 최고의 진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동의하듯 강연 뒤 질의응답 시간에는 김 교수의 평가에 대한 반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일윤 군(18·전남 순천고 3년)은 “장면 정부가 계속 집권했다면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도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 병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장면 정부가 수립한 것을 훔친 거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절반만 맞다”고 밝혔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은 기간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장면 정부의 경제계획을 가져다 썼지만 처음 2년 동안 경제는 엉망이 됐다. 그래서 1964년 경공업 중심의 수출 지향적 발전계획으로 수정한 뒤에야 성장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따라서 장면 정부였다 하더라도 그 계획대로는 경제성장이 어려웠을 것이며 설령 수정을 했어도 산업화 초기 단계에 필요한 금융 장악이 어려워 오히려 기업에 휘둘렸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의 병행 추진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혜지 양(15·경기 발산중 3년)은 “박정희 대통령은 민심을 잡았기 때문에 그 바탕에서 경제가 발전했다고 본다”며 “이에 비춰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질문했다.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은 1963년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 후보를 15만 표 차로 간신히 이겼다. 그러나 4년 뒤 선거에서는 150만 표 차로 압승했다. 부정선거도 아니었다. 그 까닭은 1964년 이후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민심을 잡아 경제가 발전했다기보다는 그 반대였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민심을 잡으려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답했다.

▼연속수강 이순성-혜미 남매 대화▼

청소년 역사강좌를 매주 빼놓지 않고 들어온 이순성(17) 이혜미(15) 남매가 4일 강연이 끝난 뒤 얘기를 나눴다.

이순성 군(17·서울 잠실고 2년)과 동생 혜미 양(15·서울 성내중 3년)은 청소년 역사강좌를 첫 주부터 거의 빼놓지 않고 들었다. 남매는 4일에도 강연시간 15분 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강당에 도착해 강연에 열중했다. 강연이 끝나고 남매는 서로 소감을 나눴다.

▽혜미=아직 학교의 ‘국사’ 학습 진도가 이승만 대통령까지밖에 안 나가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 처음 들은 셈이야. 엄마한테서 “경제개발은 했지만 독재자였다”는 얘긴 들었어.

▽순성=나도 예전 라디오 드라마에서 박 대통령이 경제개발에 아주 노력했다고 들었는데 요즘 학교에서 배우는 근현대사 교과서는 그의 독재와 인권탄압을 더 강조하는 것 같아. 책을 봐도 그 시대에 ‘전태일 분신’ 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이 그렇고….

▽혜미=오늘 강연에서 새로 들은 것이 많았어. 박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처음부터 경제발전이 잘된 줄 알았는데 처음 2년 동안은 제대로 안 됐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 유신에 대해 들은 것도 처음이야.

▽순성=민주주의와 경제가 병행 발전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되는데 그 시대를 살지 않아서 그런지 잘 모르겠더라. 이분이 말씀하시면 이분 말이 맞는 것 같고, 저분이 말씀하시면 저분 말이 맞는 것 같고…. 좀 혼란스러워.

▽혜미=학교에서 ‘국사’ 공부시간이 1주일에 2시간인데 그나마 진도를 나가는 데 바빠서 아쉬워. 교과서뿐 아니라 다른 자료도 보고 여러 선생님 말씀도 듣고 했으면 좋겠어.

▽순성=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역사를 좋아했는데 요즘 너무 서로만 옳다고 싸우는 것에 환멸을 느껴. 그래서 지금은 명확한 진리가 존재하는 자연과학 쪽으로 더 끌려.

▼이번 주 토요 역사강좌 안내(제11강)▼

▽일시=11일 오후 3시∼4시반

▽장소=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강당

▽주제 및 강사=‘1980년대 탈냉전과 한국’ (강규형 명지대 교수·냉전사)

▽제10강의 이해를 돕는 책

△20세기의 역사 3∼5부(마이클 하워드 외·이산·2000년)

△Five Rings over Korea: 88 서울올림픽, 그 성공 비화 (리처드 W 파운드·예음·1995년)

△<논문>한국과 냉전: 제2 냉전 성립기의 KAL기 격추사건과 그 종식기의 서울올림픽이 냉전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강규형·‘정신문화연구’ 2003년 여름호)

■강좌에 관한 사항은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02-920-7089)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수강료 없음.

■지금까지의 내용은 동아닷컴(www.donga.com)'2004 청소년 역사강좌' 코너에 실려 있습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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