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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위크엔드]시선이 머문 찰나, 패션향기에 빠지다

입력 2006-09-15 03:07업데이트 2009-10-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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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빌딩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뉴욕의 하늘은 높고 푸르다.

하지만 뉴욕 남성들의 눈은 하늘이 아니라 다른 곳에 머물러 있다. 하늘을 쳐다볼 겨를이 없다. 175cm가 훌쩍 넘는 늘씬한 미녀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바쁘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여성과 패션에 쏠린 남성의 시선. 뉴욕에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뉴욕의 가을은 세계 5대 패션 컬렉션의 하나로 꼽히는 뉴욕 패션 위크로 본격화된다.

8일부터 시작된 ‘2007년 봄 뉴욕 패션 위크’가 15일까지 열린다. 이 기간 중 브라이언 파크 등 맨해튼 곳곳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패션의 향연이 펼쳐진다. 80여 명의 디자이너들이 봄을 위한 패션 제안을 내놓았다.

첫날 남성복으로 유명한 존 바렛을 시작으로 10일에는 심플하고 가벼운 원피스로 사랑받는 디자이너 필립 림과 세련되고 모던한 실루엣으로 인기를 끄는 태국 태생 디자이너 타쿤이 작품을 선보였다. 림은 이 무대를 통해 그가 단지 로맨틱한 무드에만 강한 것이 아니라 섬세한 재단에도 재능이 있음을 과시했다. 특히 패션에 정통한 여성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11일엔 인기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12일에는 아름답고 섬세한 디테일로 유명한 로다르테의 작품이 공개됐다. 이번 행사는 15일 랄프 로렌, 도나 카렌, 한국계 디자이너 두리 정의 무대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네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간 두리 정은 미국 패션계의 샛별이다. 그는 5월 ‘패션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미국패션협회 패션 어워드’에서 신인 여성복 디자이너 상을 받은 데 이어 이번 무대에 참가해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뉴욕 패션 위크의 경향은 다소 어두운 색을 이용한 디자인이 유행한 2006 가을 패션과 달리 파란색과 노란색, 오렌지색 등 밝고 깨끗한 색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큰 실루엣의 변화 없이 여전히 넉넉한 톱과 스키니 팬츠, 거꾸로 타이트한 톱에 넉넉한 팬츠로 상하의 균형을 맞춘 작품이 강세를 보였다. 드레시한 반바지와 레깅스를 위에 덧입는 짧은 미니 원피스도 자주 등장했다. 반면 주름 장식을 이용한 보헤미안 스타일의 상의는 사라졌다. 허리선을 강조한 짧고 귀여운 재킷들이 많았고, 디자인에 문양이 대거 등장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유명 백화점 ‘바니스 뉴욕’의 한 관계자는 “이번 시즌의 넘버 원 아이템은 심플하고 세련된 원피스”라고 밝혔다. 뉴욕 패션의 전통적인 분위기에 어울리게 무겁지 않은 디자인이 인기를 끈다는 것이다.

무대 밖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행사장으로 사용되는 대형 천막의 앞부분을 투명하게 만들어 메인 로비를 밖에서 볼 수 있게 한 것. 비밀스러운 하이패션의 문턱을 조금이나마 낮추려는 노력이다.

사실 뉴욕 패션 위크는 패션 관련 종사자뿐 아니라 뉴욕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이벤트다.

하지만 이 텐트에 설치되는 좌석은 대개 200석 미만. 초청자 리스트는 잡지나 신문의 패션 관련 에디터, 유명 인사, 연예인, 단골 고객 위주로 짜인다.

유명 브랜드 ‘차도 랄프 루치’의 매니저 딘 테일러 씨는 “좌석이 많지 않기 때문에 명단은 치밀하게 작성된다”며 “일반인이 천막 안에 들어가 쇼를 보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말했다.

패션 위크가 시작되기 2, 3주 전부터 치열한 자리싸움이 벌어진다. 세계 각지의 패션 에디터들도 초대장을 요청하는 팩스를 보내기 시작한다. 이중 50% 이상은 초청이 어렵다는 회신을 받는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공원에 설치돼 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패션쇼의 대형 천막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은 힘껏 발뒤꿈치를 들어 텐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패션 위크가 개막된 뒤 무대에 입장하지 못한 채 텐트 앞에 늘어서서 구경하는 군중의 모습도 또 다른 볼거리다.

뉴욕의 패션은 전통적으로 다른 어느 곳보다 실용성과 대중성을 강조해 왔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인 공원에서 쇼를 연다는 것도 뉴욕 패션의 성격을 보여준다.

하지만 뉴요커의 패션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상상 이상이다. ‘패셔너블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다.

풍요로운 패션의 현장에서 정작 ‘굶주린’ 뉴욕 남성의 시선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뉴욕=박새나 통신원(패션디자이너) sena.park@gm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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